얼마 전, 텔레비전 드라마에서 어떤 배우가 던진 말 때문에 많이 웃었다. “엊그제가 전생 같은데 나한테 뭘 물어보지 마세요!” 이런 표현을 생각해 내다니 방송 작가들의 필채(筆彩)가 대단하다. 배우의 말이 낯설지 않게 들린 이유는 나 또한 이순(耳順)의 연륜을 넘기다 보니 현실적으로 엊그제 했던 말이 잘 기억나지 않는 게 사실이기 때문이다. 얼마 전, 아내에게 무언가를 질문했더니 분위기 ‘싸’ 하게 이렇게 답변했다. “여보, 내 이름도 잘 기억이 안 나는데 이젠 뭔가를 묻지 말아요.” 객담으로 들으면 뭐 그렇게 들리는 게 당연하다. 젊은 시절의 기억력을 육십을 넘긴 나이에도 그대로 갖고 있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기에 그렇다. 개인의 기억력은 날이 갈수록, 달이 갈수록, 해가 갈수록 퇴화해 가는 게 맞다. 하지만 모든 일이 다 그런 것 같지는 않다. 특히 사람에 대한 좋은 기억은 아무리 세월이 흘렀다고 해서 퇴색되지 않고 오히려 더 절절해지는 것을 보면 좋은 사람과의 인간관계는 기억력의 퇴보와는 반비례하는지도 모르겠다. 지난 주말, 진해에서 사역할 때 부족한 사람을 위해 정말 아름답게 동역해 준 집사 내외가 제천에 방문했다. 젊은 날의 초상을 들먹인다면 이런저런 목양의 서투름이 있었던 40대 초반의 젊은 목회자를 담임으로 만난 것을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믿고 정말 계산하지 않고 헌신하며 목양을 도왔던 동역자 부부께서 교회를 방문했다. 이제 칠십 성상을 훨씬 넘긴 노부부를 만나면서 만감이 교차했다. 종이 사역했던 기간, 같은 마음을 갖고 웃고 울었던 지체들이었다. 조금도 이해타산적으로 유불리를 따져 계산하는 얄팍한 신앙인이 아니라, 때론 과감히 손해 보고, 불리한 것이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주의 종이 선택한 사역을 예비하신 하나님의 뜻으로 믿고 예외 없이 응원해 주었던 고마운 이들이었다. 특히 교회학교 부장을 맡아 다음 세대의 젊은 영혼들을 위해 불철주야 기도하며 엎드렸던 아름다운 동역자들이었다. 무엇보다 나이가 10년 정도 연하인 담임목사임에도 불구하고 최선을 다해 예의를 지키며 영적 권위를 존중해 주었던 지체들이었다. 진해에서 사역한 지 20년이라는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기억하며 중보의 끈을 지금도 놓지 않고 기도해 주는 기도의 동지이기도 한 지체들을 만났는데 놀라운 일을 경험했다. 수많은 시간이 지났는데도 마치 엊그제 같은 공간에서 동역했던 바로 그 시간으로 시계추를 돌려놓은 듯한 따뜻한 만남, 스스럼없는 동질감, 영적인 소통을 절절히 느낀 감동 말이다. 20년은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닌데 그 20년은 온데간데없고 마치 엊그제 같은 공간에서 단 한 명의 영혼을 위해 같이 눈물 흘리며 동역했던 그날로 돌아간 착각을 할 정도로 따뜻했다. 사랑했던 이들과 함께 한 짧은 만남을 통해 좋은 사람들과의 관계는 시공간을 초월하여 지속된다는 것을 실감했다. 내 땅에 들어오는 것을 결코 허락할 수 없다는 극단의 님비주의에 빠진 좀비들이 교회 안에도 우글거리는 오늘, 20년 전의 사랑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을 아름답게 증명한 최관규 집사님과 신정순 권사님이 건강하시기를 화살기도 해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