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의 달력을 넘기며 이제 팔십을 바라보고 있는 연로하신 권사님 한 분이 오래 전에 제게 이렇게 말했던 적이 있습니다. “목사님, 60대에 들어섰더니 시속 60km로 달리는 느낌이 확 들었어요. 그런지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자고 일어났더니 이제는 70km로 더 빠르게 달리네요.” 연륜이 주는 교훈은 결코 경박하거나 얇지 않다는 것을 알기에 저는 교훈해 준 말씀을 알고 새겼습니다. 어제 환갑을 보낸 것 같은데 저 역시 육십 중반에 다다랐다는 것을 인식할 때마다 소소하지만 살이 떨릴 때가 있습니다. 이 땅을 마감할 때,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았다고 선언할 수만 있다면 그보다 더 아름다운 나날이 어디에 있겠나 싶어 완벽할 수는 없지만 오늘을 잘 살아야겠다고 다잡이 하며 옷깃을 여미고 또 여밉니다. 지난 주간, 1월 달력을 넘겼습니다. 바로 엊그제, 송구영신예배를 드리며 한 해를 마감하고, 한 해를 맞이한 것 같은데 벌써 한 달이 지났다니! 이게 육십 중반에 느끼는 세월의 체감 속도인가 싶어 두렵기까지 합니다. “영화의 속편 같은, 지루한 그 속편의 속편 같은 이생은 왜 좀더 생생한 것이 되지 못하는 건지…” (손택수, 『호랑이 발자국-十月, 내 몸속엔 열 개의 달이 뜬다』 중에서, 창비, 97쪽) 나도 지금이라는 소중한 시간을 좀더 생생하게 살아내고 싶은데 뒤돌아보면 여전히 아쉬움이 있고, 후회가 있는 나를 발견하면서 손택수 시인의 시집에 담겨 있는 시말(詩昩)에 공감하는 것은 아마도 나이 듦이라는 여백을 경험하고 있는 자만이 느낄 수 있는 공감의 고백이 아닐까 싶어 한편으로 위로를 받습니다. 하지만 여지없이 내게 다가오는 소회는 ‘남은 날’이라는 압박감입니다. 해서 바짝 긴장해 봅니다. 내 남은 날이 얼마나 될까? 여전히 오리무중이고 계산할 수는 없지만 분명한 것은 이런 사유함과 성찰의 은혜를 느낄 수 있는 시간이 오늘이라는 하루를 살면 또 그 시간이 준다는 사실일 것입니다. 그래서 또 정신줄을 다잡아 봅니다. 2월을 알리는 탁상용 달력에 지난 해 말 사무총회를 준비하며 세워놓은 스케줄을 기입하고, 교우들의 이런 저런 정황에 따른 기도 제목도 삽입하고, 내게 주어진 불가피한 또 다른 제반 사역의 내용들을 정리하다보니 2월 역시, 제 목양의 현장은 숨가쁘게 돌아갈 것 같습니다. 설상가상으로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에 동참해야 하는 사순절이 시작되는 절기까지 포함되어 있는 2월이다 보니 빼곡한 사역의 내용들은 나를 긴장하게 하고 옥좨기도 합니다. 그러나 늘 그렇게 주어진 시간을 살아왔기에 나는 또 잘 살아낼 것을 압니다. 실수하지만 않는다면 내 삶의 시계는 또 그렇게 분침과 초침이 흐를 것임을 압니다. 그렇게 또 나의 2월은 지나가겠지요. 이런 삶의 정황 속에서 부대껴야 하는 것이 목사가 해야 할 당연한 일이기에 주일을 맞이한 오늘은 한 가지 소박한 기도를 주군께 드리고 싶습니다. 사랑 자체이신 하나님, 나도, 교우들도, 지인들도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웃는 날이 우는 날보다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더불어 부족한 종인 저는 주어진 내 천로역정의 길을 그렇게 순명하며 60km로 달리는 2월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렇게 달리고 또 달려 후회하지 않는 2월의 마지막날에 3월 달력을 펼치기를 두 손 모아 화살기도 해봅니다. 내가 아는 모든 이가 행복한 2월이었으면 좋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