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총회에 발표했듯이 펜데믹이 끝난 두 해 째를 맞이한 금년에 담임목사와 함께 떠나는 독서여행을 4회로 늘려보기로 했습니다. 분기에 읽을 독서 텍스트를 정했는데 정말로 죽기 전에 꼭 읽어야 할 기독교 고전들 중에 몇 가지입니다. 1분기에 크로닌의 『천국의 열쇠』, 2분기는 아베 피에르의 『단순한 기쁨』, 3분기 때는 토마스 아켐피스의 『그리스도를 본받아』, 그리고 마지막 4분기에는 C.S. 루이스의 『스크루테이프의 편지』를 함께 여행할 예정입니다. 교우들에게 선정한 책들을 서고에서 꺼내 짬이 날 때마다 다시 들쳐보고 있습니다. 『천국의 열쇠』를 만났을 때가 신학교에 입학해서 얼마 되지 않았던 시기라 동기들의 분위기는 조용기, 김삼환 닮기 신드롬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때였습니다. 그래서 그랬는지 치셤을 만나고 나서 나는 오기같은 결기를 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하나님, 밀리가 아니라 이 땅에 존재하는 수많은 탈록을 위한 치셤으로 살겠습니다.” 『그리스도를 본받아』를 통해 목회자가 얼마나 철저하게 고독해야 하는지, 더불어 나를 쳐서 복종하는 길을 걸어야 하는지를 배우며 벌벌 떨었던 감회가 아직도 나를 감싸고 있습니다. 대학원시절에 만난 『스크루테이프의 편지』를 읽다가 눈이 번쩍 띄어지는 영적 혜안이 노도와 같이 밀려오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통쾌했습니다. 루이스가 얼마나 천재적인 지성적 그리스도인지를 되새기며 그의 지성을 본받기 위해 공부에 목을 걸었던 터닝 포인트가 되었습니다. 프랑스인들이 역사적으로 가장 사랑한다는 아베 피에르의 걸작인 『단순한 기쁨』을 여행하면서 성직자로서 걸어야 하는 이타적 교회 만들기를 더 천착하게 해준 오아시스 같은 선물을 받았습니다. 피에르는 내게 환대와 포용이라는 기독교적인 영성을 가르쳐 준 선생님이었습니다. 독서한지 수 십년도 더 된 고전들을 다시 섭렵하면서, 육십 중반에 다다라 이제 막 노년에 접어든 목사가 느끼는 소회는 젊은날의 초상과는 전혀 다른 농익은 성숙이라는 익어가는 감동을 주고 있어 행복합니다. 치셤을 알려준 크로닌, 아베 피에르, 아켐피스, 그리고 루이스가 다른 모습으로 다가왔습니다. 언젠가 읽은 책에서 이 글을 보았습니다. 십자가의 성 요한에게 오신 주님이 물으셨습니다. “요한아, 내가 네게 무언가를 주고 싶은데 뭘 받고 싶니?” “모욕과 멸시오.” 저처럼 이 글을 읽은 공지영 작가도 이 문장을 읽는 순간, 들고 있는 책을 떨어뜨릴 뻔했다고 술회했는데, 그래서 읽고 난 뒤에 마치 주문을 외치는 것처럼 ‘미쳤어, 미쳤어!’를 연발하며 넉다운 된 자기를 발견했다는 그 무시무시한 감동을 재삼 다시 든 고전에서 느끼고 있어 감사하기 그지 없는 주간을 보냈습니다. “힘 있는 이름의 그늘에 들어가거나 많은 사람들과 어울리려고 애쓰지 말라.” (토마스 아켐피스, 『그리스도를 본받아』, 브니엘, 144쪽) 이런 메가톤급 촌철살인들이 있는데 어찌 고전을 등한시할 수 있겠습니까? 아주 오래 전, 박경리 선생의 『토지』를 다 읽고 난 뒤에 감동의 폭풍이 너무 커서 한 동안 호흡하기가 어려워 숨을 가쁘게 쉰 적이 있었습니다. 같은 맥락으로 나는 기독교고전과 연애하면서 나의 영혼을 적셔 준 감동 때문에 세속적 숨통을 끊어버리는 나만의 변화산상 체험기를 경험했던 기억이 오롯합니다. 그런데 이게 웬 은혜입니까? 그 아름다운 감동의 기억을 다시 경험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세인 교회 독서 여행반은 하나님이 허락하신 축복의 장입니다. 나는 2024년에 세인 지체들에게 위로부터 내리시는 기름 부음이 쏟아지기를 소망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