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2월 19일 수요일 성서 일과 묵상 요시야인가, 여호아하스인가? 오늘의 성서 일과 시편 120편, 예레미야 22:11-17, 누가복음 11:37-52 꽃물 (말씀 새기기) 예레미야 22:15-17 네가 백향목을 많이 사용하여 왕이 될 수 있겠느냐 네 아버지가 먹거나 마시지 아니하였으며 정의와 공의를 행하지 아니하였느냐 그 때에 그가 형통하였었느니라 그는 가난한 자와 궁핍한 자를 변호하고 형통하였나니 이것이 나를 앎이 아니냐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러나 네 두 눈과 마음은 탐욕과 무죄한 피를 흘림과 압박과 포악을 행하려 할 뿐이니라 마중물 (말씀 묵상) 예레미야 예언자가 행한 구 유명한 성전 왕궁(궁전) 설교의 한 대목이다. 여호아하스에 대해 경고한 예레미야 예언자의 고발이 서늘하다. 아버지 요시야가 행했던 선정을 뒤엎고 악행을 자행해 3개월이라는 아주 짧은 재위를 기록한 불명예의 대명사로 자리매김한 여호아하스에 대한 예레미야는 그의 악행을 여러 가지 문장을 동원해 지적하지 않고 단 한 가지 팩트로 그를 비난했다. 미슈파트(공의)와 체다카(정의)의 실종이다. 아버지 요시야는 가난한 자와 궁핍한 자들의 변호자가 되었는데, 너는 아버지와 달리 그 반대의 길로 치우쳐 하나님이 그토록 원하신 공의와 정의를 깔아뭉갠 죄악을 저질렀다고 단호하게 예언자의 소리를 전했다. ‘여호아하스’ 즉 ‘야훼께서 붙드셨다’라는 참 좋은 이름의 주인공은 역설적으로 붙들어 주신 야훼를 버렸다. 배은망덕의 처사를 보인 그의 치세는 불과 3개월이었다. 그는 애굽의 바로에 의해 폐위당하고 포로로 끌려가 그곳에서 생의 마감한 비극적 삶으로 마감된 자로 역사가는 평가했다. 하나님이 나에게 요구하는 것은 단순하다. 공의와 정의로운 삶을 상실하지 않는 것이다. 목사라는 직으로 거의 전 인생을 살아온 나에게 남은 사역의 기간, 감당할 것은 미슈파트와 체다카의 실천이다. 예언자는 오늘 내게 이 교훈을 다시 선포한다. 마음으로 다잡이해 본다. 잃지 않도록. 상실하지 않도록, 무감각해지지 않도록. 두레박 (질문) 목양의 현장에서 공의와 정의를 실천하고 있는가? 손 우물 (한 줄 기도) 하나님, 요시야가 실천했던 영적 지도력에 천착하고 여호아하스가 선택했던 패착을 경계하도록 은혜를 주십시오. 나비물 (말씀의 실천) 목사이기에 더더욱 공의와 정의에 눈감는 어리석은 사역자가 되지 않도록 경성하자. 하늘바라기 (중보기도) 하나님, 이 땅에서 지금도 힘들게 살아가는 가난한 자, 궁핍한 자들을 위해 중보와 지원의 끈을 놓지 않으며, 바로 저들이 살기에 좋은 나라가 되도록 이 나라를 지켜 주옵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