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함께

제목그렇게 인생은 이야기가 된다.2024-06-11 10:25
작성자 Level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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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지은이 제임스 R, 해거티
ㆍ출판사 인플루엔셜
ㆍ작성일 2023-09-15 10:45:37

 

제임스 R, 해거티의 『그렇게 인생은 이야기가 된다.』, 정유선역, 인플루엔셜, 2023년.


아내와 결혼을 하고 포천에 모셔져 있던 장인어른의 묘에 첫 번째 방문했을 때, 아버님의 비석이 눈에 들어왔다.
“하나님의 일은 돈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신실함으로 하는 것임을 실천한 〇〇〇집사 여기 잠들다.”
그랬다. 하나님의 부름을 받으신 장인어른은 피택 장로셨는데 임직을 하지 못하고 갑작스럽게 소천하셔서 안타까운 마음을 갖고 있던 당시 영등포성결교회 담임목사께서 직접 문장을 만들어 비석을 세웠다는 후담을 들었다. 돌아가신 장인어른은 당신이 섬기시던 교회에 재정적인 부분도 상당수 감당하셨고, 분에 넘치는 헌신을 하셨다고 들었다. 그런 어른을 동역자로 둔 담임목사가 이런 비문을 새겨 비석에 담았다면, 장인어른이 얼마나 교회를 순결하게 섬겼는지는 재론의 여지가 없다.
사람의 인생이 아름다웠던 삶이었는지, 악한 삶의 노정이었는지는 남아 있는 후세들의 평가에 달려 있다. 목회의 여정을 많이 닮으려고 했던 이재철 목사께서 현직에 있었을 때, 이런 문장을 그의 책안에 담아 놓은 것을 본 적이 있다.

“한 사람의 삶의 이력서는 단 한 줄의 문장으로 남는다.”
 
전적으로 동의한다. 후세는 나의 삶의 이력을 단 한 문장으로 평가할 것이 분명하다. 그래서 조심스럽고 또 조심스럽다. 
지난 달에, 월 스트리트 저널의 부고 전문기자인 해거티의 책을 만났다. 그는 전 세계가 주목하는 유명 언론의 기자로 활동하며 수많은 지인들의 부고 글을 작성했다고 보고한다. 저자에 의하면 유고를 달리한 고인들의 부고 글 요청을 받을 때마다 세 가지에 집중했다고 토로한다.(13쪽)

⓵ 인생에서 무엇을 이루고자 했는가? ⓶ 그 이유는 무엇인가? ⓷ 목표는 이루었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이 부고 글의 줄거리이고, 결국 이것을 요약한 단문이 비석에 새겨질 문장의 내용이 된다고 설명한다. 책에서 저자는 자신에게 부고의 글을 써달라고 의뢰한 참 많은 사람들을 소개한다. 이들 요청을 받고 예외 없이 앞에 언급한 세 가지의 질문을 추적하고 그 답에 근거한 결론을 내서 비문에 새기는 과정이 저자의 일과요 삶이었다. 이것을 전제하다보니 저자에게 임한 두 가지의 확신이 있었다고 한다.

ⓐ 누구든지 나보다 내 부고를 더 잘 쓸 수 있는 사람은 없다.(22쪽)
ⓑ 살아 있는 내내 삶의 내용들이 부고의 근거가 된다. (258쪽)

아주 오래전에 급진적 제자도(radical discipleship)를 실천하는 목회자 중에 한 명인 카일 아이들먼의 걸작인 『not a fan』을 읽다가 멈칫했던 글을 만났다. 예일 대학교와 프린스턴 대학원을 졸업한 수재, 더불어 수십 억 달러의 가치에 해당하는 낙농회사의 상속자이기도 하기에 기대가 촉망되던 젊은이 윌리엄 보든(William Borden)의 이야기였다. 그는 세속의 모든 가치를 버리고 이슬람 선교를 위해 이집트로 건너갔다. 하지만 이해할 수 없게도 그곳에서 척수막 염에 걸려 25세의 아까운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남은 자들은 그를 추모하여 그의 유품들을 정리하는 중에 그의 성경책 안에 보관되어 있었던 메모지에서 세 개의 문장을 발견했다.

“남김없이(no reserves), 후퇴없이(no retreat), 후회없이(no regrets)” (카일 아이들먼, 팬인가? 제자인가?, 두란노, 291쪽)

윌리엄 보든의 신앙적 족적이었다. 그리고 이 세 가지는 그의 비문이 된다.
해거티는 본서에서 기억에 남는 인물들에 대한 그들 삶의 마지막 문장들을 남긴다. 읽다가 내 남은 여생에 대한 나침판을 삼아야 하겠다는 결심도 해 보는 귀한 책 읽기의 시간을 가졌다. 기억에 남게 했던 두 사람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미국 화장지 업계의 선두주자인 조지자 퍼시픽의 CEO인 PETE CORRELL의 부고를 저자는 이렇게 썼다.

“이제 저는 경기장을 떠날 때가 되었습니다. 여러분 모두에게 축복을 빕니다.”(269쪽)

본서에서 코렐은 윌리엄 보든의 말처럼 결코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았다고 가족들과 일체 지인들에게 보고하는 내용을 포함하여 자신의 장례식에서 조문객들에게 꼭 하고 싶은 메시지를 직접 써서 그의 딸에게 읽어주며 녹취할 것을 부탁했다고 전한다. 그의 글은 265-268쪽에 기록될 정도로 장문이다. 저자가 남긴 보렐이 하고 싶었던 메시지를 요약하면 이렇다.
“나는 불우했던 과거를 이겼다. 그런데 이렇게 이길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의 삶에 대한 일체 계획이 하나님의 프로젝트 안에 있었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이런 믿음에 대한 긍정성을 갖고 삶을 마감한 나는 내 장례식장에 온 조객들에게 두 가지를 전하고 싶다.
“나는 이제 경기장을 떠날 때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을 축복한다.”
이 땅에서 경기하는 자 중에 경기장에서 영원히 머물 자는 단 한 사람도 없다. 반드시 떠나야 한다. 그런데 경기장을 떠날 때, 자신의 삶의 현장에서 자신을 있게 해 준 일체의 사람들을 축복하며 떠날 수 있다면 그의 삶은 후회 없는 삶을 살았다고 평가해도 되지 않을까 싶다.
천상병의 말대로 소풍 같은 삶이었다고 보고할 수 있다면 경기장을 떠나면서도 외롭거나 힘들지 않을 수 있음을 나 또한 동의한다.
또한 떠날 때가 언제인지 준비하고 사는 삶을 살았다면 그 삶은 산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다.
또 한 사람은 저널리스트 톰 바타베디안(TOM VARTABEDIAN)의 묘비명에 이렇게 쓰여 있다.
 
“살면서 우리가 남겨야 하는 진정한 기념비는 ‘묘비’가 아니라 ‘행동’이다.”(216쪽)

언론인의 정필, 정론, 정서가 바탕이 된 명문이 아닐 수 없다. 글을 읽다가 행동하는 신앙인, 조금 더 외연을 좁혀서 행동하는 목회자가 남겨야 하는 비문의 글로서 이 문장이 더 없이 적절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렇지 않을까? 목사로 평생을 살았는데 남긴 행동이 없다면 잘못 산 것이다. 
내가 살고 있는 제천시의 가장 번화한 거리에 지금 정권을 잡고 있는 정당 소속 국회의원이 다가올 내년 선거를 의식하여 자기 홍보와 정당을 자랑하는 플랜카드를 주마다 바꾸어 걸며 플랜카드 정치를 하고 있다. 얼마 전에 내건 플랜카드는 광복절 기념 문구였는데 이렇게 적혀 있었다.
“2023년 다시 진정한 광복의 기쁨을 맛보다. 국민의 힘 국회의원 〇〇〇”

문구를 보다가 이런 생각이 들었다.
진정한 광복의 기쁨이 뭘까? 다시 일본의 치하로 들어간 제 2의 국치(國恥)를 경축한다는 말인가? 도대체 이들은 최소한 일말의 양심적 지성과 인격도 완전히 버린 자들이란 말인가? 뭐가 부끄러운 지를 정녕 모르는 자들이란 말인가? 별의 별 생각이 다 치밀어 올랐다.
작금, 목사로 살고 있는 ‘나’는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하는가를 놓고 내 마음 안에서 치열하게 싸우고 있음을 더 많이 느낀다. 침묵인가? 분노인가? 분명한 것은 행동의 결과물을 남기는 것이다. 후세에 부끄럽지 않게.
『덕의 상실』의 저자 앨래스데어 매킨타이어 교수의 정말로 의미 있는 일갈을 읽었다.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은 나는 어떤 이야기, 혹은 어떤 이야기의 일부로 존재하는가? 라는 보다 앞선 질문이 해명될 때만 비로소 대답될 수 있다.”(김기석, 『등불을 밝히며』, 꽃자리, 424쪽)

기막힌 성찰이다. 나 역시 내 부고장에 반드시 나는 어떤 이야기의 존재로 살았는지 답한 삶을 적고 싶다. 물러서고 싶지 않은 고백이다. 그게 제정신이 박혀 있는 목사이기에 그렇다. 할 수만 있다면 이렇게 말이다.
“예수를 가장 소중한 가치로 여기며 산 이강덕 목사, 여기에 묻히다.”
아브라함 죠수아 헤셀이 남긴 이 말은 오늘도 나를 흥분시킨다. 이 목마름이 결코 끝나지 않기를 간절히 소망하기에.

“사람들의 가슴은 석면이요 방화벽이다. 그러나 예언자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속이 타는 자이다.”(아브라함 죠수아 헤셀, 『예언자들』, 삼인, 306쪽)
 

부고의 글을 쓸 날이 조금씩 더 가까이오고 있는 나이기에 하나님을 위한 행동을 남기고 싶은 마음 간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