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 사역

제목2024년 1월 10일 (둘째 주) 지역 셀 사역2024-04-23 18:07
작성자 Level 10

2024년 1월 10일 (두 번째 주) 지역 셀 사역

 

1. 얼음깨기 (WELCOME)

 

내 믿음의 전성기는?

 

2. 찬양 (WORSHIP)

● 찬송가 357장: 주 믿는 사람 일어나 ● 복음성가: 한없이 크신 주의 사랑을

 

3. 말씀 읽기와 적용 (WORD)

 

​ 본문 : 창세기 42장 26-38절

​ 제목 : 성장하지 않으면

 

 

1) 야곱이 성장하지 않은 이유를 아들들과 관련하여 설명해보자

 


⓵ 요셉과 베냐민

 

⓶ 8명의 형들이 행한 독백(28절)

2) 그리스도인이 성장하지 못하는 최대의 원인이 무엇인지 산상수훈과 관련하여 설명해 보자.

 


⓵ 마태복음 17:1-7

 

⓶ 성장하지 못하는 이유는?

 

3) 적용하기

 


⓵ 내가 추구하는 안일함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충돌하고 있는가?

 

⓶ 나는 자녀들에게 선한 영적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부모인가?

 

⓷ 하나님, 밑힘이신 주님의 말씀에 의지하여 2024년 내가 성장하게 하옵소서.

 

 

4) 사역하기

 

 셀 예배 순서 

 

※ 찬양하기 : 찬송가 부르기

※ 얼음 깨기 나누기 

※ 찬양하기 : 복음성가 부르기

※ 예배기도 : 맡은 이 

※ 말씀 증거와 문제 내용 나누기 

※ 적용하기

※ 기도제목 중보하기 

※ 헌금 봉헌

※ 헌금 기도: 셀 리더

※ 피선교지 중보하기: 다 같이 

※ 폐회 : 주기도문 

※ 교제하기 

 

중보 및 사역하기

 

1.  태신자 반드시 선정하여 다음 주에 발표하기

2. 2024년 내가 섬기는 지역 셀 예배에 부흥이 있게 하옵소서.

3. 내가 섬기는 지역 셀의 피선교지와 목회자를 위하여 중보하기.

4. 16-22일에 실시되는 사업체 심방 관련 해당지체 독려하기.

5. 매일 새벽 묵상 독려하기  

6. 담임목사의 목양을 위해 중보하기 


● 설교요약 (SUMMARY)

본론) 요셉의 형 8명은 요셉에게 대단히 부담되는 미션을 하명 받고 아버지 야곱이 있는 가나안으로 복귀합니다지난 설교를 통해 나누었던 것처럼8명의 요셉 형들이 가나안으로 복귀하는 과정은 엄청난 부담을 짊어진 괴로운 복귀였습니다애굽에 볼모로 시므온이 억류되어 있습니다설상가상으로 가나안 복귀 중에 중간에 머문 여관에서 그들이 가지고 온 짐 보따리를 풀어보니 자기들의 자루에 애굽으로 떠날 때 곡식을 사기 위해 가져갔던 돈 뭉치가 그대로 발견되었기 때문입니다이 사실을 알게 된 8명의 형들은 혼비백산합니다28입니다.

그가 그 형제에게 말하되 내 돈을 도로 넣었도다 보라 자루 속에 있도다 이에 그들이 혼이 나서 떨며 서로   돌아보며 말하되 하나님이 어찌하여 이런 일을 우리에게 행하셨는가 하고

표준 새 번역으로 다시 28을 읽어 보겠습니다.

그는 이것을 자기 형제들에게 알렸다. "내가 낸 돈이 도로 돌아왔다.나의 자루 속에 돈이 들어 있어!"이 말을 들은 형제들은,얼이 빠진 사람처럼 떨면서,서로 쳐다보며 한탄하였다. ‘하나님이 어찌하여 우리에게 이런 일을 하셨는가!’”


  형들이 얼이 빠진 이유는 애굽의 총리가 자신들이 다시 애굽으로 돌아왔을 때 정탐꾼 정도가아니라 돈을 빼돌린 도적으로 몰 것이 분명하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이미 형들은 이전에 요셉을 팔았을 때 미디안 상인들에게 받았던 돈을 나누어갔고 아버지에게로 돌아갔던 경력을 갖고 있었기에 느끼던 상쇄적 죄책감이었습니다이미 엎질러진 물이니 주워 담을 수도 없고 가나안에 도착한8명의 형들은 아버지에게 애굽의 여정 중에 있었던 일들을 소상히 설명합니다아들들의 설명의 요점은 베냐민을 데리고 가야 억류되어 있는 시므온도 방면되고,곡식도 살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아직 흉년이 끝나려면 5년이라는 세월이 더 지나야 하는 긴박한 상황이었기에 아들들의 요청은 대단히 절박한 것이었습니다하지만 아버지 야곱이 자식들의 요구에 대해 싸늘한 반응을 보입니다.

 

본문 36입니다.

그들의 아버지 야곱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나에게 내 자식들을 잃게 하도다 요셉도 없어졌고 시므온도   없어졌거늘 베냐민을 또 빼앗아 가고자 하니 이는 다 나를 해롭게 함이로다

  단호하게 베냐민을 데리고 애굽으로 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은 것입니다아버지의 완고함에 부딪친 장남 르우벤이 아버지를 설득하기 위해 고뇌에 찬 내기를 겁니다그것은 만에 하나,베냐민을 데리고 애굽으로 갔다가   베냐민을 다시 데리고 오지 못하면 자신의 아들들 둘을 죽이라고 압박합니다세상에 이런 살벌한 가정이 야곱의 가정이라니 아연실색할 정도입니다야곱의 가정이 어떻게 이 지경이 되었을까요거의 반 협박과도 같은 강한 반응을 보인 르우벤이었지만 아버지 야곱은 끝내 허락하지 않습니다이어지는 마지막 38을 나누어 보겠습니다.

야곱이 이르되 내 아들은 너희와 함께 내려가지 못하리니 그의 형은 죽고 그만 남았음이라 만일 너희가 가는 길에서 재난이 그에게 미치면 너희가 내 흰 머리를 슬퍼하며 스올로 내려가게 함이 되리라

  이 구절은 유진 피터슨 목사의 메시지번역으로 읽어보겠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거절했다. “내 아들을 너희와 함께 내려보낼 수는 없다.그 아이의 형은 죽었고,내게 남은 것은 이제 그 아이뿐이다.길에서 그 아이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너희는 백발이 성성한 채 슬퍼하는 나를 땅에 묻어야 할 것이다.”


  조금도 양보하지 않는 야곱의 고집을 고스란히 보고해 줍니다다음 주에 살피겠지만 이런 고집불통의 아버지 야곱을 끝내는 설득하여 베냐민을 데리고 극적으로 애굽으로 함께 내려가게 되지만 오늘 본문만 국한해서 볼 때,야곱은 난공불락의 요새처럼 그 고집이 철옹성이었습니다여기까지 42장을 살폈습니다오늘 저는 이 본문을 통해 접근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영적 교훈 중에 한 가지에 집중하고자 합니다그것은 야곱이 갖고 있었던 전혀 변하지 않는 구태에 대한 가르침입니다다시 거슬러 올라가 보십시다야곱이 왜 요셉을 잃었습니까철저한 편애 때문입니다.

 

이미 살핀 것처럼12명의 아들들 중에 유독히 요셉에게만 채색옷을 입혔다고 했습니다야곱이 요셉에게만 입혔던케토넷 파심’ 즉 채색옷은 그 상징성이 있는 옷이었습니다.

이것은 막 입는 옷이 아니었다.형들이 입었던 것과 같은 양치기 옷도 아니었다.공주나 제사장이 입었던 옷과 같은 특별한 옷이었다.야곱의 편애가 드러나는 옷이었다.요셉은 이 옷을 형들을 찾아갈 때도 입고 간다.따라서 요셉은 이 옷을 평상시에도 입은 것으로 보인다.그만큼 요셉은 고된 육체 노동과는 동떨어진 생활을 했으며,아버지의  사랑과 신뢰를 받으면서 형들의 안부를 묻고 살피며 알리는 아버지의 전령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하경택,『정경적 관점에서 본 창세기2, 314-315)

  야곱은 이런 무분별한 극단적 편애 때문에 요셉을 잃어버렸습니다그렇게 편애했던 아들을 잃은지13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습니다충격적인 것은 그렇게13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는데 야곱은 바뀐 게 없었다는 점입니다요셉을 편애했던 그대로 이번에는 자신이 사랑했던 아내 라헬의 두 번째 소생인 베냐민을 품에서 놓아주질 않습니다.

  지금 여타 아들들은 상황이 비상상황입니다베냐민을 데리고 가지 않으면 시므온의 생명이 끝날 수도 있다는 비장한 시기였기에 그렇습니다그러기에 애굽 총리에게 신의를 지키기 위해서,그리고 다른 형제인 시므온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베냐민과 동행해야 했던 절박한 시기였습니다그런데도 아버지 야곱은 자기가 사랑하는 아들만을 품에 안고 싶어했습니다여타 다른 자식들의 안위에는 터럭의 관심도 없고 염려하지도 않습니다.

  시므온도 자기 자식이고,베냐민도 자기 자식인데 이렇게 눈에 보이는 차별을 한 야곱은 어떤 아버지였습니까?

13년 전이나 지금이나 조금도 변하지 않은 구태를 유지하려는 해로운 자였습니다그렇다면 왜 야곱은 137년이라는 노구의 시기였음에도 불구하고 조금도 변하지 않았을까요?

 

※하나님과의 관계 단절로 인해 성장을 멈췄기 때문입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주목할 구절 하나를 소개하려고 합니다28을 주목하십시오.

그가 그 형제에게 말하되 내 돈을 도로 넣었도다 보라 자루 속에 있도다 이에 그들이 혼이 나서 떨며 서로   돌아보며 말하되 하나님이 어찌하여 이런 일을 우리에게 행하셨는가 하고

  이 구절에서 눈여겨 보아야 할 단어는하나님이입니다요셉의 형들은 가나안에서 애굽으로,애굽에서 다시   가나안으로 오고가는 과정 중에 그들의 노정 안에서 하나님이라는 단어를 처음으로 꺼낸 시기가 바로 이 장면입니다.

  적어도 요셉의 형들 안에 내재하는 하나님은 존재하지 않았다는 증거입니다반면 요셉을 보십시다.

창세기42:18입니다사흘 만에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나는 하나님을 경외하노니 너희는 이같이 하여 생명을 보전하라


  형들을 삼일 동안 억류한 뒤에3일 만에 다시 형들 앞에 나타난 요셉이 형들 면전에서 선언한 메시지입니다요셉이 뭐라 형들에게 선포했습니까나는 하나님을 경외하노라” 본문 내증에는 이렇게 간단히 기록하여 더 이상 진전하지 않지만,아마도 형들은 자신들의 아버지에게서나 들을 법한 메시지를 요셉에게 듣고 나서 나름 놀랐을 것입니다이방의 땅인 애굽에서 그것도 그 나라의2인자의 입을 통해 선언된나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라는  선언을 적지 않은 충격이었을 것입니다요셉이 형들에게 선언한 멘트가 상투적인 립 서비스였습니까그럴 리가 있습니까?

  요셉은 애굽에서 거하였던17년이라은 인고의 세월 동안 단 한 번도 하나님의 전인격적인 존재 의식에서 벗어난 적이 없었습니다보디발의 집에도,보디발의 사설 감옥안에서도 하나님의 전 존재의식에 대해 눈감은 적이 없었습니다도리어 그는 위기 때마다하나님 면전에서의 생생한 기억으로 오롯이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반면 형들은 요셉에 비해 하나님에 대한 의식 전무였습니다앞에서 언급했던 가나안으로 회귀하는  과정에서 알게 된 돈뭉치 다발을 보고 얼이 빠진 사람들처럼 주문 외우듯이 토해낸 말이하나님이 어찌 이렇게 하셨단 말인가!’의 탄식은 생생한 신앙의 고백이 아니라 습관화된 탄식의 소리였습니다요셉 형들이 왜 이렇게 하나님에 대한 불신앙적인 면면을 그대로 갖고 있었을까답은 생각보다 쉽습니다아버지 야곱의 답보 때문입니다.

 

아버지 야곱이 성장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아버지 야곱이 침체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가부장적인 족장 시대였던 이 시기에 신앙의 공급은 당연히 아버지를 통해 이루어집니다하지만 베냐민만을 손에 쥐고 안이하게 살던 야곱에게 신앙의 성장은 요원한 일이었습니다성장하지 않은 야곱은 하나님과 단절되었고,단절된 그에게 아들들이 신앙적인 진보를 갖는다는 것은 사치스러운 낭만의 일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오늘 야곱가에 일어난 불행의 단초는 야곱이 성장하지 못한 데서 비롯된 불행이었습니다교회 공동체의 성장은 절대적으로 하나님의 일입니다그것이 질적 성장이든 양적 성장이든 공히 그렇습니다왜냐하면 하나님의 교회는 주님의 것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하지만 아무리 그렇다손 치더라도 하나님의 교회 공동체가 성장할 수 있는 또 다른 요소는 담임목사의 성장에 달려 있다고 말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교회의 수준이 강대상을 넘어서지 못한다.”

  우찌무라 간조의 갈파는 그래서 옳습니다목사가 기도하는 만큼 성도는 기도합니다목사가 묵상하는 만큼  성도는 묵상합니다목사가 몸부림치는만큼 성도는 몸부림칩니다이게 영적 공식입니다그래서 뼈가 녹아지는 고통을 감내하면서 목회자는 성장하려고 몸부림칩니다. 


  누가 성장하지 않습니까우리는 그 답을 변화산상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헬몬으로 추론되는 변화산상으로 주님이 베드로,야고보,요한을 데리고 올라가셨습니다마침 산 정상에 섰을 때,주님이 놀라운 모습으로 변화되셨습니다좌우에 모세와 엘리야가 주님을 보필하는 장면이 제자들에게 보입니다이 황홀한 광경에 도취된 베드로가 주님께 이렇게 요청합니다마태복음17:4입니다.

베드로가 예수께 여쭈어 이르되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만일 주께서 원하시면 내가 여기서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님을 위하여,하나는 모세를 위하여,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리이다

  베드로는 자기 눈 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환상적인 광경을 유지하고 싶었습니다그래서 이렇게 주께 요청한 것입니다베드로의 이 요청이 있자마자 또 다시 급잡스러운 일이 벌어집니다이어지는 마태복음17:5입니다.

말할 때에 홀연히 빛난 구름이 그들을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이르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하시는지라


  황홀했던 광경이 사라지고 맙니다베드로의 요청이 묵살된 것입니다왜 베드로의 요청이 거부된 것입니까?  주님의 뜻은 안주함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줍니다주님의 뜻은 황홀한 곳에서서 초막집을 짓고 안주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대로 살아내는 것이라는 교훈입니다왜 성장하지 않습니까누가 성장하지 않습니까주님이 행하신 말씀에는 조금도 관심을 갖지 않고 눈에 보이는 유익과 영적 카타르시스에 만족하려는 안일함이 우리를 영적으로 성장하지 못하게 하는 원흉입니다마틴 로이드 존스 목사는 일찍이 이렇게 갈파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이란 전인격을 취하고 바쳐서 영광스럽고 온전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마틴 로이드 존스,『영적 침체와 치유』,기독문서선교회, 81-82)


  로이드 존스가 말한 전인격을 취한다고 했을 때,전인격은 지..의를 아우르는 말입니다적어도 하나님이 나를 창조하실 때 주신 지정의를 다 동원하여 하나님이 기뻐하는 삶을 살아내려면 결코 내가 생각하는 안이함에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하나님이 원하시는 뜻에 합당하게 살아내야 지정의를 통해 하나님을 위한 온전한 헌신을 감당할 수 있는 것입니다내 만족을 위해 안일한 자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됩니다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는 순간,영적 성장은 꿈도 끄지 말아야 합니다하나님의 공급이 끊어진 자에게 무슨 희망과 영적 비전이 있겠습니까?

 

사무엘상 3:1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시는 무서운 경종입니다아이 사무엘이 엘리 앞에서 여호와를 섬길 때에는 여호와의 말씀이 희귀하여 이상이 흔히 보이지 않았더라

  야곱에게서 영적 진보가 멈춘 것은 자신이 사랑하는 아들만을 편애한 지극히 어리석은 침체에 빠졌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산 야곱에게 하나님의 말씀은 공급되지 않았고,결국 그 은혜의 단절은 아들들에게도 영적인 단절로 이어진 악순환 고리기 된 것입니다.

 

결론저는 이제 말씀을 맺으려고 합니다. 10년 전, 20년 전의 나와 오늘의 나는 다릅니까단 한 발자국이라도 보폭의 거리와 속도가 달라졌습니까그렇다면 희망이 있습니다하지만 단 일보의 변화가 없다면 심각하게   고민해야 하고 두려워해야 합니다이미 그런 자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입니다.

나희덕 시인의 시어 중에 이런 시절(詩節)이 있습니다.

번개가 가슴을 쪼개고 지나간 흔적을 안고도 저렇게 눈부신 잎을 피워내다니” (나희덕,『사라진 손바닥-성느티나무 중에서』,문학과 지성사,95)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누구에게나 시련이 있고시험도 있으며고난도 있습니다문제는 하나님이라는 밑힘을 내 신앙의 저력으로 믿고 주님과의 교제와 단절이 없이 살아내고 있는가입니다주님이 밑힘인 교우들은 죽지  않습니다하나님의 말씀은 나를 성장하게 하는 영적 동력임을 기억하고 주님의 말씀 밑에서 지속적으로 성장해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소망합니다찬양하고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