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옆에 무당 집이 들어섰습니다. 근래 들어 굿을 의뢰하는 사람들이 많아져서 그런지 주중에 제법 빈번한 굿 판 소리가 들려옵니다. 교회 근처에 굿 소리는 어찌했든 별로 하모니가 되지 않는 소리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소음이기 때문입니다.
지난 수요일, 저녁 예배 시간에 시내산 밑에서 금송아지를 만들어 놓고 그 형상을 애굽에서 우리를 인도하여 낸 여호와 하나님이라고 천명한 뒤, 번제와 화목제까지 드렸던 아론의 공동체를 고발한 적이 있습니다. 모세의 부재 속에 일어난 광야 이스라엘 신앙공동체 굿판의 압권은 그렇게 만들어놓은 하나님 같은 신 앞에서 벌어진 ‘짜하크’(뛰놀더라)의 난장(亂場)이었습니다. 분명히 그들이 하나님이라고 천명한 하나님 아닌 가증의 우상 앞에서 마음대로 살기를 결의했던 이스라엘 영적인 일탈은 시내 산 광야에서만 보는 아득히 먼 과거의 일이 아니었습니다.
우리는 얼마 전 눈으로 이 땅에서 벌어진 현대판 시내 산 난장을 선명하게 목도하였습니다. 도무지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 비교적 테러 안전국이라는 대한민국 이 땅에서 백주에 일어났습니다. 미국 대사가 공격을 받은 충격의 사건이 발생한 것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런 일이 일어날 때마다 20세기 위대한 설교가인 마틴 로이드 존수 목사가 지적한 일갈이 생각납니다.
“전쟁의 원인이 되는 맹목적 애국주의(JINGOISM)를 비롯하여 일체의 침략전쟁을 거부하십시오. 그리스도인들은 이러한 사탄적인 행태에 대하여 거부해야 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로이드 존스의 갈파에 전적으로 동의하기에 단순히 맹방이라고 많은 사람들이 말하는 미국 대사이기 때문이 아니라 전 세계적인 최 빈민국이라고 동의하는 에티오피아나 방글라데시의 대사라 해도 이 일은 마찬가지이며 더불어 비무장 되어 있는 상태의 민간인을 폭력의 도구를 사용하여 물리적인 가해를 가하는 것은 그것을 시작하게 된 진의(眞意)와 상관없이 비난받아야 마땅한 대단히 야만적인 범죄라고 인정하는데 조금도 주저하지 않습니다.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시에 백 번, 천 번을 양보해도 미국 대사의 쾌유를 비는 의미에서 서울의 한 복판에서 행해진 한 군소교단의 미국 대사 쾌유 집회는 대단히 유감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변화산상에서 ‘주여 하나는 주님을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또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초막 셋을 여기에 짓겠다는 베드로의 고백이 있은 뒤 그 영광은 사라지고 오직 예수만 보였다는 복음서의 증언을 보면서 율법의 대가인 모세도, 선지자의 대변인 엘리야도 추앙의 대상이 되거나 경배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영적 지침을 선명하게 받습니다. 성경의 가르침이 이럴 진대 백주 대낮에 그것도 교회의 한 단체가 한 나라의 대사가 테러를 당했다고 그를 위한 부채춤 및 난타 공연 그리고 심지어 그에게 올리는 큰 절의 기괴함을 보면서 나는 광야 시내 산에서 벌어진 금송아지의 굿판이 연상되었습니다. 교회가 정치적인 기득권 세력에 야합하거나 타협하게 될 때 얼마나 천박해 질 수 있는지의 극치를 보면서 예레미야와 미가 예언자가 남 유다의 영적 지도자들과 종교 집단의 기득권 패거리 화를 보면서 울었던 그 울음들이 가슴에서 솟구쳤습니다. 제발인데 교회가 박정희, 김대중 노무현 서거 ◯주년 추모 예배, 박근혜 대통령 당선 감사 예배 같은 천박함을 저지르지 않기를 기도해 봅니다. 이 땅에서 주 예수 그리스도 이외 그 어떤 존재도 경배와 찬양의 대상이 되지 않기를 두 손 모아 봅니다. 이 땅에서 교회 이름으로 낸 굿판들이 사라지기를 소망해 봅니다. 이 땅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빌미로 벌어지는 교회의 정치적 난장들이 갈라디아서 1:6-9절에서 강력하게 선포된 그리스도 예수의 복음 돌 판으로 부수어지기를 중보해 봅니다. 이 땅에서 교회 이름으로 벌어지는 백주의 굿판들이 사라지기를. 제발, 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