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은 기독교 최고의 교리 대서사시인 로마서를 썼습니다. 목회를 하는 거의 모든 목사들의 로망은 그래서 로마서를 강해해 보는 것입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종도 2007년 10월 7일 주일부터 2009년 9월 20일 주일까지 약 2년에 걸친 대장정을 통해 이 사역을 감당했습니다. 열심히 기도하고 공부해서 로마서를 끝냈을 때의 영적 보람은 목사만이 느끼는 기쁨입니다. 사역을 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구절을 발췌해보라면 저 역시 많은 선배들이 그랬던 것처럼 주옥같은 8장 사역을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더불어 한 부분을 또 선택하라하면 마지막 16장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 중에 한 구절을 나누고 싶습니다.
“내가 겐그레아 교회의 일꾼으로 있는 우리 자매 뵈뵈를 너희에게 추천하노니 너희는 주 안에서 성도들의 합당한 예절로 그를 영접하고 무엇이든지 그에게 소용되는 바를 도와줄지니 이는 그가 여러 사람과 나의 보호자가 되었음이라”(롬 16:1-2)
지난 소아시아 성지순례 기간 동안 그리스에 있는 고린도를 방문했을 때 지근에 있었던 ‘겐그레아’ 항구를 스쳐 지나갔습니다.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겐그레아’ 라는 선입관을 갖고 있어서일까 나름 무언가를 기대했는데 기대와는 달리 스쳐지나간 그곳은 을씨년스러울 정도로 조용하고 적막한 느낌이었습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성경도 겐그레아가 그리 크지 않고 네임밸류가 있는 곳으로 소개되지 않았던 이유가 바로 이런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상념에 빠져보았습니다. 헌데 그 초라한 어촌 출신의 자매 뵈뵈가 누가보아도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로마서라는 대작을 로마 교회의 지체들에게 전달하라는 바울에게 위임을 받았다는 것은 충격적이지 않을 수 없습니다. 덧붙여 바울은 편지 말미에 쓴 사족에서 이 자매를 맞이하는 로마지체들에게 당부했던 그 당부는 또 한 번 독자들을 놀라게 합니다.
“성도들의 합당한 예절로 그를 영접하고 무엇이든지 그에게 소용되는 바를 도와줄지니”
최대의 예를 갖추어 자매를 영접하라고 권하는 바울의 부탁은 사뭇 비장하기까지 하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최고의 예의를 다해 그녀를 돕고 맞이하라는 말에서 저는 뵈뵈를 향한 따뜻한 바울의 사랑을 느낍니다.
지난 주간, 강영자 권사님을 심방했습니다. 이제 구순이 되셔서 귀도 어둡고, 말도 어눌하고, 제대로 걸을 수 있는 기력도 없으시고, 우울증의 증세도 조금 보이신다 하여 찾아뵈었습니다. 갑자기 들이 닥친 담임목사의 방문에 손을 붙잡고 눈물을 흘리시면서 반갑게 종을 맞아주셨습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당신의 모습을 느끼셨던지 권사님을 돌보는 요양 보호사께 겉옷을 가져오라고 하셨습니다. 나시 티셔츠를 입고 계셨던 것을 인지하신 것입니다. 이제는 연로하셔서 제대로 많은 부분에서 인지능력도 떨어지고, 감각적인 부분에서 둔감하실 수 있는 상태이신데도 불구하고 아들 벌의 담임목사가 갑자기 들이 닥쳐 미리 옷을 제대로 입지 않고 있었던 당신을 발견하고 겉옷을 입으시며 예의를 차리시는 권사님의 옷매무새 고치기를 보면서 목사로서 다시금 감동의 여운이 몰려왔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예의 갖추기’ 이것은 우리들이 항상 긴장하며 따라가야 할 성도의 기본적인 도가 아닐까 싶습니다. 요양보호사가 권사님께 옷을 입혀드리며 웃으며 이렇게 한 마디를 했습니다.
“아무리 나이가 드셨어도 여자라서 이렇게 조신하려고 합니다.”
이야기를 듣다가 인정했지만 권사님의 예 갖춤을 보면서 종은 다른 면을 보았습니다.
“여자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것은 성도의 기본적인 삶이기 때문이라는.”
최후의 만찬 때 제자들의 발을 씻기기 위해 겉옷을 벗었다가 다시 입으시고 다락방 강화를 하셨던 주님의 그 예의가 무척이나 그리워지는 것은 세상 사람들은 물론 그리스도인들까지 무례한 시대를 살고 있는 이 때이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풀러 신학대학의 총장을 역임한 리처드 마우 박사는 자기 책 ‘무례한 기독교’ 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무례하지 않다는 것은 더 온유하고 흠모할 만한 인격이 되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오늘따라 그의 말이 귓가에 쟁쟁히 들려오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