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주기 4월과 5월 들어 타 교회 행사들이 잦아졌습니다. 아마도 따뜻한 계절이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임직식을 비롯하여, 담임목사 취임식, 장례 예식까지 생각지도 않았던 교회 예식들이 많아지다 보니 본의 아니게 전국 꽃 배달 업체에 조화, 축하 란까지 의뢰하는 일들이 많아졌습니다. 다른 교회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우리 교회는 꽃 배달을 하는 업체를 정해 놓고 거래를 합니다. 업체 쪽에서 볼 때는 저희 교회는 단골인 셈이지요. 지난 달 말에 꽃집에서 영업 실적을 좋게 해 준 우리 교회에 화사하게 핀 소국 화분 두 개를 감사의 표시로 보내주었습니다. 소담스럽게 핀 소국을 교회 출입구에 배치해 놓고 교우들이 교회를 들어오기 전에 화사하고 아름답게 핀 소국을 감상하도록 해서 예배당에 들어오기 전부터 기분이 좋아졌으면 하는 바람으로 저 또한 소국을 정성스레 잘 돌보고 있습니다. 아시는 분은 이미 잘 알고 계시겠지만 소국은 매일 물을 흠뻑 먹는 꽃입니다. 해서 소국이 교회 출입구에 놓여 진 이후, 제가 항상 긴장이 됩니다. 매일 물을 주지 않으면 곧바로 시들어 있는 추한 소국을 보기 때문입니다. 아침에 출근하면 소국에 흠뻑 물주기라는 사역이 한 가지 더 저에게는 주어진 셈입니다. 물을 주면서 놀라운 일을 봅니다. 말 못하는 소국도 물에 굶주려 있을 때 아파하는 신음소리를 낸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알고 물을 주고나면 소국은 저에게 아주 반갑게 인사를 합니다. “감사해요. 목마름을 해결해 주어서.” 앗시시의 성 프란시스가 동식물과 대화를 했다는 것은 이런 마음일까? 식물도 목마름의 갈증에 고통스러워하고 있음을 알고 그것과 대화를 했다는 것이... 생각이 여기에 이르자 또 다른 감동의 저에게 임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날마다 우리들에게 물주기를 원하고 계시는데 우리들이 그 물을 공급받지도 않고 버팅기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자책이 말입니다. 사마리아 수가성에 물을 뜨기 위해 나온 여인이 살아왔던 그 굴곡의 삶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우리도 살고 있는 것이 분명한데 우리는 여인이 사모하며 받기를 기대했던 것과는 달리 말씀하신 샘물을 공급받지 않고도 끄떡없이 살 수 있다고 고집을 피우는 것은 아닐까 하는 황송함이 소국을 볼 때마다 저를 엄습했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요 4:12-13) 요 며칠, 날씨가 눈이 부시도록 좋아 교회 화단들이 싱그럽게 푸르디 푸른 자태를 뽐내고 있지만 그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는 자양분이 수분인 것을 알기에 적어도 내가 볼 수 있는 식물들에게 고통이 오기 전에 충분한 수분을 공급하는 일을 잊지 말아야 하겠다고 다짐해 봅니다. 꽃이 만발한 교회 정원은 우리들의 시선을 즐겁게 하고, 예수님의 샘물이 차고 흘러넘치는 교회는 우리들의 영을 은혜로 충만하게 해주어 영혼을 즐겁게 해줍니다. 우리 교회는 이 두 가지의 만족함이 있는 교회이기를 소망해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