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5일 토요일 묵상
학개가 여호와의 말씀을 위임받아
오늘의 성서일과
시편 17:1-9, 시편 145:1-5, 17-21, 출애굽기 3:13-20, 학개 1:1-15a, 누가복음 2:1-8
꽃물 (말씀 새기기)
학개 1:12-14
스알디엘의 아들 스룹바벨과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와 남은 모든 백성이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의 목소리와 선지자 학개의 말을 들었으니 이는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를 보내셨음이라 백성이 다 여호와를 경외하매 그 때에 여호와의 사자 학개가 여호와의 위임을 받아 백성에게 말하여 이르되 여호와가 말하노니 내가 너희와 함께 하노라 하니라 여호와께서 스알디엘의 아들 유다 총독 스룹바벨의 마음과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의 마음과 남은 모든 백성의 마음을 감동시키시매 그들이 와서 만군의 여호와 그들의 하나님의 전 공사를 하였으니
마중물 (말씀 묵상)
제 2성전 스룹바벨 성전이 재건되지 못한 채로 중단된 총 기간은 16년이었다.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는 것은 제 1차 포로귀환자들을 이끌고 예루살렘으로 제일 먼저 입성한 자가 스룹바벨, 여호수아라는 걸출한 정치, 종교지도자들이었다. 이들은 누가 보더라도 손색이 없을 정도의 포로 귀환 공동체를 이끌만한 지도자들이었다. 하지만 이들은 르흠과 심새를 중심으로 한 사마리아 거민들의 조직적인 방해와 정치적 공작으로 제 2성전 공사를 포기했다. 그렇게 16년이 흘렀다. 하지만 추측하기로 80-90세의 연령으로 추측되는 선지자 학개의 추상같은 명령에 의거하여 1차 포로공동체는 다시 힘을 내 스룹바벨 성전 건축을 완공했다. 무기력했던 스룹바벨과 여호수아 지도층이 중단했던 성전 건축 재개가 약 3주 만에 다시 시작되었다고 학개 예언서를 보고하는데 어떻게 이렇게 급진적인 변화가 임했을까? 나는 이렇게 진단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공급받았던 학개, 그렇지 못했던 스룹바벨, 여호수아였기 때문이라고 말이다.
공급받음과 공급받지 못함의 무시무시한 차이가 이 차이다.
주전 6세기의 영적 상황과 21세기의 영적 상황도 매일반이지 않을까 싶다. 하나님의 말씀을 레마로 받는 자와 받지 못하는 자의 차이는 영적 승리와 그렇지 못함으로 갈라진다는 점 말이다.
나이가 중요하지 않다. 주님의 말씀을 공급받고 있는가? 그렇지 않은가가 승부수다.
두레박 (질문)
주군께서 오늘 나에게 주신 말씀은 무엇인가?
손 우물 (한 줄 기도)
하나님, 나도 학개처럼 주군의 말씀을 위임받는 일에 결코 소홀하지 않게 하옵소서.
나비물 (말씀의 실천)
‘흥분시키다’와 ‘감동시키다’가 같은 맥으로 번역되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맞는 것 같다. 감동받은 사람은 흥분한다. 선한 흥분. 나도 이 흥분으로 살아야겠다.
하늘바라기 (중보기도)
하나님, 애도기간이 끝나갑니다. 아픔은 잊어버리게 마련인데 아픔을 제공한 것은 잊지 않게 하옵소서. 그래야 다시 울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