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3일 화요일 묵상 I'd rather have Jesus than anything. 오늘의 성서일과 시편 3편, 시편 137편, 하박국 2:5-11, 예레미야 애가 2:13-22, 요한일서 5:1-5, 13-21 꽃물 (말씀 새기기) 요한일서 5:4-5 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냐 마중물 (말씀 묵상) 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어야 세상을 이기는 것일까? 나는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다는 것을 그냥 맹목적인 믿음이라고 결코 정의하지 않는다. 요한일서가 기록된 주후 1세기 末은 그야말로 초대 교회 공동체가 풍전등화와 같은 운명의 나락으로 빠질 수 있는 위기의 시기였다. 교회의 최대 암적 요소였던 영지주의가 초대 교회가 잠식하고 있는 종교적 판세를 뒤집어엎을 정도로 노도와 같이 일어나고 있는 상태였기 때문이다. 더불어 로마의 속주로 있었던 식민지 체제 아래에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임을 믿는 것은 유일한 主인 로마 황제 외에 또 다른 ‘주’(큐리오스)를 인정하는 불온분자로 낙인찍히는 일이었기에 그 위험성은 가중된다. 이런 영적 기상도 하에서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하고 시인하는 것은 맹목적 믿음이나 신앙고백이 아닌 것이 명명백백하다. 순교적 믿음이 있을 때만 고백할 수 있는 것이다. 세상(코스모스)으로 대변되는 세속의 영역과 맞서는 것 자체가 대단히 부담스럽고 위험천만의 정황이었던 시대, 그 어떤 것보다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사수하기가 녹록하지 않았던 시대였기에 요한일서 저자는 이렇게 강하게 토로한 것 같다.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믿음이라고. 그 믿음은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이라고. 이 땅에서 벌어지고 있는 비상식의 극치는 점입가경(漸入佳境)이다. 개그 콘서트를 방불 하는 촌극이 연출되고 있다. 그러기에 예수께서 주군이시며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에 조금이라도 천착하는 일을 게을리 여기면 그 몰염치라는 사탄의 견고한 공격에 강타당하는 시대다. 정신을 차려야겠다. 오직 소망하고 바라보아야 할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되심에 한 눈 팔지 말아야겠다. 하기야 목사에게 이것보다 더 소중한 일이 어디에 있겠나. 섬기는 교회에서 몇 주 후에 살피게 될 히브리서 12:2절이 크게 다가오는 아침이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두레박 (질문) 목사가 해야 할 일인 믿음으로 세상을 이기는 일보다 더 분주하게 여기는 일에 나는 한 눈 팔고 있지는 않은가? 손 우물 (한 줄 기도) 주님, 목사의 정체성을 사수하는 일에서 정신줄을 놓는 일이 곧잘 있습니다. 그러지 않게 하옵소서! 약하고 약한 믿음을 강하게 하옵소서.
나비물 (말씀의 실천) 주군이신 예수를 지워버리고 그 자리를 인간이 대신하는 호모데우스라는 21세기 판 영지주의는 1세기 판 영지주의보다 훨씬 더 두렵고 강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내가 믿는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그 일체의 것들이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분명한 믿음보다 강하지 않다는 것이다. 결코 흔들리지 않는 로드십(Lordship)을 다시 한 번 새기는 날이 되자. 하늘바라기 (중보기도) 주님, 이 땅에 존재하는 그 어떤 것도 주님보다 소중하지 않습니다. 주님이 가장 귀하고 귀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만족한 내가 되도록 나를 쳐 복종케 하옵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