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0일 목요일 묵상 아는 것이 죄가 되는 역설 오늘의 성서일과 시편 98편, 이사야 12장, 사무엘상 28:3-19, 이사야 57:14-21, 로마서 1:18-25 꽃물 (말씀 새기기) 로마서 1:21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마중물 (말씀 묵상) 제임스 패커가 했던 말이 생각났다. “신학에 대한 관심, 하나님에 대한 지식, 기독교 주제들에 대해 명료하게 생각하고 말 잘할 수 있는 능력은 결코 하나님을 아는 것과 같지 않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서) 패커는 여기까지 이야기를 했지만, 곰곰이 생각했다. 이런 자들이 더 위험할 수 있다고. 왜? 하나님에 대해 아는 것을 갖고 역이용할 수 있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바울이 말한 이 구절이 그래서 더 깊이 와 닿는다.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지도 않는다는 지론 말이다. 아는 게 병이 된 셈이다. 이 구절은 내게도 철저한 경계 대상이다. 나도 당연히 이 위험에 노출되어 있고, 공격당하기 십상이기에 말이다. 그래서 고 옥한흠 목사께서 이렇게 말했나 보다. “말씀 앞에서 부들부들 떨어야 한다. 말씀 갖고 장난질 치지 말아야 한다.”고.
두레박 (질문) 나는 하나님의 말씀 앞에 머물러 설 때, 부들부들 떨고 있는가? 손 우물 (한 줄 기도) 말씀으로 성육신 하신 하나님, 오늘 하루를 살아감에 있어서 말씀보다 앞서지 않게 하옵소서. 정녕 하나님의 말씀을 아는 것을 싳런하게 하옵소서. 말씀을 악용하는 죄악에서 나를 건져 주옵소서. 나비물 (말씀의 실천) 성서적 앎을 실천적 삶으로 연결하는 하루기 되게 하옵소서. 철저하게.
하늘바라기 (중보기도) 존귀하신 하나님, 나라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모를 정도로 랜덤 그 자체입니다. 상식은 사라지고 공의는 물거품이 되었습니다. 주여, 어디에 계십니까? 이 민족의 찢어진 상처를 싸매 주십시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