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3일 목요일 묵상 小勢이지만 쪽(?) 팔리지 않는 그리스도인으로 살자. 오늘의 성서일과 시편 17:1-9, 시편 145:1-5, 17-21, 신명기 25:5-10, 스가랴 1:1-17, 사도행전 22:22-23:11 꽃물 (말씀 새기기) 사도행전 23:1-3 바울이 공회를 주목하여 이르되 여러분 형제들아 오늘까지 나는 범사에 양심을 따라 하나님을 섬겼노라 하거늘 대제사장 아나니아가 바울 곁에 서 있는 사람들에게 그 입을 치라 명하니 바울이 이르되 회칠한 담이여 하나님이 너를 치시리로다 네가 나를 율법대로 심판한다고 앉아서 율법을 어기고 나를 치라 하느냐 하니“ 마중물 (말씀 묵상) 실세가 누구인가에 따라 정세는 바뀐다. 그게 세속의 생리다. 예루살렘에 들어온 바울은 바울을 죽이지 않으면 먹지도 않겠다는 열혈 유대인 40여 명과 더불어 같은 마음을 품고 있는 유대인들이 대세를 이루고 있는 예루살렘에 올라가자마자 예상대로 성전에서 체포되었다. 예루살렘의 치안을 맡고 있었던 천부장이 로마의 형법에 의거하지 않고 바울을 죽이려는 소요가 있다는 듣고 살해 시도와 무차별 폭력을 금지하고 자신의 영내 수용시설로 바울을 옮긴다. 천부장이 이렇게 교통정리를 한 것은 다분히 정치적인 의도가 깔려 있는 행동이었지만, 하나님이 개입하셔서 로마의 시저 앞에 서야 하는 바울의 신변을 보호하신 셈이다. 바울을 죽이려고 이미 마음에 결심한 유대인들은 천부장의 영내로 몰려가 바울을 죽일 것을 압박하기에 이른다. 천부장은 집단적 소요를 벌일 태세인 유대인들의 마음을 달래기 위해 적절한 린치를 가하려고 하자 바울은 본인이 로마의 시민권을 가진 자임을 천명하여 물리적 위기에서 벗어나는 것은 자신의 변론 기회마저 얻는다. 마침 그 영내에는 산헤드린 공회의 종교적 기득권자들이 다 몰려들어 바울을 죽이려는 기회를 엿 본다. 공회 앞에 선 바울은 그 위기의 시간에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하는 절호의 기회로 삼고 자신의 정체성을 밝힌다. 이 이야기를 듣고 있었던 종교적 실세 대제사장 아나니아가 분에 못 이겨 바울의 입을 치라고 명하자. 바울이 조금도 물러서지 않고 곧바로 반격에 나선다. “회칠한 담이여 하나님이 너를 치시리로다” 계란이 바위에게 명한 셈이다. 잠잠하라고. 마치 이 소리를 듣는 듯하다. “돌들이 소리 지르리라” 나는 오늘, 전율하는 감동을 받는다. 조금도 물러서지 않는 主尊感으로 무장한 바울 때문에. 대세와 실세에 밀리지 않는 바울, 그들의 물리적인 힘, 보이는 권력의 무자비함에 조금도 주눅 들지 않는 바울을 만나며 오롯이 크리스티아노스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지 거울삼는다.
두레박 (질문) 나는 돌들이 소리를 지르도록 동기를 부여하는 비겁한 자로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손 우물 (한 줄 기도) 大勢가 小勢들을 무시하고 있습니다. 더 치명적인 것은 소세들이 대세의 두려움 때문에 말 한마디를 내놓지 못하는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는 무기력입니다. 하나님, 버거운 싸움이지만 바울의 길에 서게 하옵소서. 대제사장의 부류에 편입되어 하나님의 길이 아님에도 그 안전한 길을 가려는 일체의 불의한 시도와 비상식의 공격과 대세 편리주의에 맞서게 하옵소서.
나비물 (말씀의 실천) 나 역시, ‘나비’(예언자)가 해 왔던 말씀을 조명으로 받아 시대의 대세들에게 편승하지 않고, 하나님이 주신 불편한 상황에서도 레마를 그대로 전하는 삶을 고집해 보자.
하늘바라기 (중보기도) 하나님, 예수를 믿는다는 의미는 불편하게 살기로 결단했다는 뜻이며, 그 삶의 길을 나도 가겠다는 선언인 줄 압니다. 종은 물론, 일체의 그리스도인들이 이런 영적 정체성에서 흔들리지 않는 믿음의 여정을 걷게 하옵소서. 특히 이 땅에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으로 살아가는 자들은 더 더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