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2일 수요일 묵상 울음바다 오늘의 성서일과 시편 50편, 시편 142편, 아모스 5:12-24, 하박국 3:17-19, 누가복음 19:11-27 꽃물 (말씀 새기기) 아모스 5:16-17 그러므로 주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사람이 모든 광장에서 울겠고 모든 거리에서 슬프도다 슬프도다 하겠으며 농부를 불러다가 애곡하게 하며 울음꾼을 불러다가 울게 할 것이며 모든 포도원에서도 울리니 이는 내가 너희 가운데로 지나갈 것임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마중물 (말씀 묵상) 누군가가 이렇게 한탄했다. 전 세계에서 합동 분향소가 제일 많이 차려진 나라가 대한민국이라고. 이 읍소를 듣고 있노라니 딱히 변명하거나 부인할 거리가 생각나지 않았다. 역사적으로 가장 많은 울음을 울었던 나라가 이스라엘(?), 아니면 대한민국(?) 유대인들이 울어야 했던 울음을 아모스는 자업자득의 개념으로 해석했다. 하나님이 정하셨던 正路에서 벗어난 것에 대한 심판이 울음이었기에 주어진 울음이었으니. 진도 앞바다에서 터진 세월호의 울음이 전국을 강타한지 8년 만에 이번에는 대한민국의 심장부에서 터졌다. 둘 다 총체적인 난국의 기형아로 태어난 울음이다. 8년 전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마치 무정부적 난맥상이 여지없이 드러난 기형의 절정 모드가 보인다는 점에 매우 유감천만이다. 설상가상으로 이번 경우에는 사사 시대를 능가하는 신 사사 시대의 랜덤이라 할 수 있는 막 살겠다는 좀비들의 모습까지 오버랩 되어 더 더욱 참담하다, 무언가를 말하면 꼰대들의 주둥이는 입 닥치라는 난장들에게 더 무엇을 기대하랴! 오래 전, 길벗이자 글벗인 동역자 선배 목사의 글에 인용된 송기숙 선생의 『마을, 그 아름다운 공화국』에 소개된 다섯 부류를 소개받고 무릎을 쳤던 기억이 생생하다. “동네 사람들에게 존경 받는 동네 어른, 늘 말썽만 부리거나 버릇없는 후레자식, 일삼아서 이 집, 저 집으로 말을 물어 나르는 입이 잰 여자, 틈만 있으면 우스갯소리로 사람들을 웃기는 익살꾼, 좀 모자란 半偏이라 몸이 부실한 장애인” (김기석, 『길은 사람에게로 향한다』, 청림출판, 54.) 후레자식은 무슨 말을 해도 용인되어야 하고, 동네에서 존경받은 어른은 존재하지 말아야 함을 강요받는 시대야 말로 진짜 말세라고 말해야 하지 않을까! 나도 이유 없이 죽어간 이들에 대해 비난하는 것에 대해 동의하지 않는다. 하지만, 시대의 총체가 영적 랜덤이라는 집단적 광기라고 해석하는 다름에 대해 입 닥치라고 말하는 후레자식들의 버릇없음에 분노한다. 완전히 자기 신념이 우상화된 자들 때문에 그냥 운다. 목사가 할 딱히 다른 시위(Demonstration)가 없기에. 그렇게 아작 난 마비된 인격과 무슨 대화가 필요할까 싶어서다. 이래저래 작금의 대한민국 광장과 거리는 울음바다다. 그런데… 아모스가 말한 이 선언에 오금이 저려온다. “이는 내가 너희 가운데로 지나갈 것임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울음바다 한 복판으로 지나가시는 하나님, 그래서 나는 또 운다. 뜨겁고 뜨거운 서늘함 때문에.
두레박 (질문) 2022년 대한민국 광장에서 나는 이명준이 된 느낌이다. 어떻게 해야 할까? 손 우물 (한 줄 기도) 아모스의 신탁 예언이 대한민국에서 그대도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하나님, 울고 싶지 않은데 어떻게 해야 울지 않을까요? 그 방법 좀 알려주세요. 나비물 (말씀의 실천) 우는 자와 함께 하라는 바울의 권면에 민감 하자. 하지만 랜덤의 시대가 강요하는 계층 간의 폭력에도 민감 하자. 그 폭력에는 한 발자국도 물러서지 말자.
하늘바라기 (중보기도) 존귀하신 하나님, 육십 평생을 넘어 살면서 지금처럼 막 된 시대는 없었습니다. 그래도 최소한의 예의는 있는 나라에서 살았습니다. 나는 정말로 이럴 때 이렇게 기도하고 싶습니다. 키리에 엘레이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