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17일 월요일 묵상 사람인가? 하나님인가? 오늘의 성서일과 시편 57편, 시편 129편, 사무엘상 25:2-22, 예레미야 38:14-28, 고린도전서 6:1-11 꽃물 (말씀 새기기) 예레미야 38:14 시드기야 왕이 사람을 보내어 선지자 예레미야를 여호와의 성전 셋째 문으로 데려오게 하고 왕이 예레미야에게 이르되 내가 네게 한 가지 일을 물으리니 한 마디도 내게 숨기지 말라 마중물 (말씀 묵상) 김훈의 하얼빈을 읽다가 조선의 마지막 왕이었던 순조를 생각해 보았다. 유명무실했던 왕, 왕조의 마지막을 보았던 비극적인 왕, 목숨 하나를 구걸하기 위해 일제에 무기력했던 왕을 다시 복기했다. 시드기야를 생각해 보았다. 남 유다의 최후를 맞이했던 왕, 본인 스스로도 나라를 빼앗기고, 눈까지 적들이 적출 당하는 수모를 당한 끝에 비참한 생을 마감한 왕이 시드기야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둘 다 공통분모가 있어 보여 후대 사람인 나는 그들이 측은해 보인다. 순조는 무력했다. 혼자도 무력했지만, 참모들은 절망적인 친일분자들이었기에 더 더욱 그랬다. 그의 주변에는 제대된 인간이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러니 무력할 수밖에. 하지만 시드기야는 달랐다. 그래도 옆에 예레미야가 있었기에 말이다. 문제는 예레미야의 말이 아니라, 여론에 밀렸다는 치명적인 결함이 그에게 있었다. 결국 그는 여론의 손을 들어주었다. 환언한다면 사람의 소리에 민감했다. 그러니 하나님의 소리에 귀를 닫을 수밖에 없었다. 갈라디아서 1:10절은 주후 1세기나 21세기나 그리스도인들에게 시금석이다.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들의 기쁨을 구하였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 목사로 산 나는 여론을 택하지 않아 여론에게 처절하게 깨졌다. 그냥 깨진 정도가 아니라 만신창이가 되도록 깨졌다. 하지만 그렇게 깨진 나에게 하나님이 오셨다. 동시에 나를 안으셨다. 나는 창세기 13:14절 말씀을 전율하며 믿는다. “롯이 아브람을 떠난 후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북쪽과 남쪽 그리고 동쪽과 서쪽을 바라보라” 롯이 떠날 때까지 하나님은 아브라함에 오시지 않았다. 떠나니까 오셨다. 시드기야는 예레미야에게 말씀하신 신탁을 들었지만 거절했다. 그리고 그는 유다의 여론에 떠밀렸다. 그는 하나님을 버리고, 사람을 택했다. 철저하게 반면교사를 삼아야 하는 레마다. 두레박 (질문) 묵상 그대로 사람인가? 하나님인가? 손 우물 (한 줄 기도) 하나님, 나를 떠나지 마소서. 하나님, 하나님이 아닌 대세를 선택하지 않게 하소서. 하나님, 사람은 더 더욱 아닙니다. 사람에게 함몰되지 않게 하소서.
나비물 (말씀의 실천) 네이버, 다음, 유트브에 지지 않게 하옵소서. 하늘바라기 (중보기도) 항암 치료 중에 있는 자매의 2차 치료가 이번 주에 있습니다. 주님, 살펴주시고 안아주십시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