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명절 연휴, 부교역자를 고향에 보내야 했기에 교회를 지켰습니다. 목회를 하는 동안 이런 일을 한두 번 경험한 것이 아니기에 명절에 고향에 가지 못하는 것에 대한 섭섭함은 이제 무감각해 진 것 같습니다. 제천에서 명절을 보내다 보니 자연히 서울에서 사역하고 있는 아들이 고향인양 제천으로 내려왔습니다. 아들이 제천으로 내려오는 것에 대한 좋은 속마음을 털어놓으면 아내가 팔불출이라고 지청구를 줄까봐 내색하지 않았지만 오래 시간동안 아들과 함께 할 수 있다는 생각에 행복했습니다. 아들과 대화를 할 때 이전 보다는 훨씬 더 대화의 깊이 깊어졌습니다. 아들이 저의 걸어왔던 길을 걷고 있기 때문입니다. 공감대가 형성되다 보니 더욱 아들과 연대되는 느낌이 있어 저는 개인적으로 앞으로 아들이 헤쳐 나아가야 할 목회의 현장이 제 사역의 현장과는 비교할 수 없는 녹록하지 않고 참담하고 기막힌 현장이겠지만 그래도 그 길을 가주는 아들이 못내 미덥고 든든합니다. 이 사역은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가장 보람된 길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오랜 만에 만난 아들과 목욕탕 데이트를 했습니다. 손가락을 다쳐서 그 동안 제대로 세신(洗身)도 못했는데 아들이 때를 밀어주는 목욕탕 데이트는 참 행복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외피이고 정말로 아들과 목욕탕 데이트가 행복했던 이유는 아들과 함께 진솔한 대화를 나눌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몇 주 전, 지방회 인사부, 심리부에서 전도사 시취를 위한 면접을 하는 자리에서 선배 목사님들이 아들에게 다음과 같이 물었답니다. “이 전도사는 대학원 M-div 과정을 마치고 나면 공부를 더 할 건가? 아니면 목회 현장에서 사역을 할 건가?” 질문을 받은 아들이 대답한 말이 에비 입장에서 참 감사했습니다. “일단은 최선을 다해 대학원 석사과정을 마치고 냉정하게 제 능력을 검증하겠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목회를 하고 싶은데 하나님께서 혹시 더 진보된 공부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다면 학위 취득도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하지만 박사 학위를 도전한다고 하더라도 학위 취득을 위한 공부가 아니라 목회 현장에서 바른 신학을 토대로 한 영혼 구원 사역에 최선을 다하고 싶은 마음으로 그 다음 공부도 도전하려고 합니다.” 그 면접 현장에는 저를 잘 아는 선, 후배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제 아들의 답변을 듣고 꽤 만족해했다는 아들의 보고를 듣고 이런 응원을 나름 보냈습니다. 지금 그 생각하고 있는 초심이 흔들리지만 않는다면 만만치 않은 세속의 물결과 종교를 하나의 문화로 취급하는 그래서 더 이상 헌신을 말해도 들으려고 조차 하지 않는 가장 영적으로 암담한 시대에 아들이 목회를 해야 하는 무거운 부담은 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마도 주님은 바닥을 친 한국교회에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않은 7,000명의 의인을 붙여 주실 것이라고 믿기에 아들의 길을 격려하려고 합니다. 목욕탕에서 나오면서 아들이 아주 의미 있는 한 마디를 종에게 던져주었습니다. “아버지, 제가 세상에 이강덕 목사의 아들로 태어난 것은 내 인생에 최고의 복이라고 믿지만 그 아들로 살아가야 한다는 부담감이 얼마나 큰지를 아버지는 잘 모르실 거예요.” 미안하고 또 미안했지만 사랑하는 아들이 옆에서 목회의 길을 가고 있다는 것이 저에게는 최고의 자산이자 큰 축복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