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낮예배

제목조각되는 그리스도인2024-02-26 15:58
작성자 Level 10

2018년 9월 30일 주일 낮 예배 설교

 

제목조각되는 그리스도인

본문에베소서 2:21-22

 

서론)

 

지난 추석 연휴 기간에 가족과 함께 영화 안시성을 관람했습니다.

이미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이 영화는 지금은 중국의 땅으로 편입되어 있는 만주 요령성(遼寧省) 지역에 있었던 것으로 추측되는 안시성의 성주로 당 태종의 50만 군사의 엄청난 공격에도 불구하고 일치단결된 군과 민의 지략과 지혜로 그들을 막아낸 고구려의 명장으로 알려져 있는 양만춘 장군의 안시성 전투를 영화화 한 작품입니다.

220억이 들어간 작품이라는 자본주의적인 물량 공세가 이루어낸 작품이라는 비난도 있지만 가족과 함께 관람한 이 영화를 보면서 경제역학적인 차원이 아니라 단순히 영화의 스토리를 중심으로 평을 한다면 저는 개인적으로 주인공인 양만춘이 안시성 사람들을 이끌어가는 리더십의 부분에서 대단히 중요한 요소가 있음을 보았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것은 민초들을 강력한 리더십을 기초로 강하게 만들어 갔다는 점입니다.

자기를 죽이려고 온 적대적인 사람마저도 조급하게 대하지 않고 자기의 사람이 되도록 기다려주면서 삶의 모습을 보여줌으로 그 사람을 자기의 사람으로 만들어갔다는 데에서 많은 공감을 표시하였습니다.

이런 면에서 탁월한 리더는 팔로워들을 만들어가는 사람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베드로는 소개하겠습니다.

갈릴리 출신의 전형적인 어부였던 베드로는 주님이 부르셨습니다.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시겠다는 당신의 계획도 알려주셨습니다.

헌데 그렇게 부름을 받은 베드로는 이후 사람을 낚는 어부는 고사하고 자기 스스로도 영적인 사람으로 건져 내지 못하는 그냥 그런 사람으로 살았음을 성경이 증언합니다.

예수님은 항상 그를 1순위 제자군에 포함시켜 큰일들을 보게 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언제나 말이 앞서는 다혈질적인 기질로 인해 실수와 낭패를 경험하기 십상이었습니다.

갈릴리 바다에서 물을 빠지기도 했고가이사랴 빌립보에서는 사탄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자가 되기도 했고겟세마네 동산에서는 말고의 귀를 칼로 자르는 폭력도 행사한 자였고예수님이 가야바의 뜰로 압송당할 때는 멀찍이 따라가는 회색적인 제자였고결정적으로 주님이 심문을 당하던 장소에서는 주군을 배신하는 추락을 경험하기도 한 자였습니다.

부활의 주님을 여인들에게 전언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부활을 확신하지 못하던 자였습니다.

주님이 부활하셔서 만나기전까지 낙향하여 고기를 잡던 옛 사람으로 살던 장본인이 바로 베드로였습니다.

그런데 이런 베드로는 주님은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디베랴 바닷가에서 고기를 잡으며 옛 생활로 돌아가 있었던 베드로에게 다시 미션을 주시면서 그에게 양들을 치고 먹이라는 위탁까지 하셨습니다.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베드로처럼 주님의 철저한 계획처럼 만들어진 사람이 또 있을까?

다혈질적이고순간적이고감정적인 성격의 소유자였던 베드로는 그 다혈질적인 기질과 깊이 생각하지 않는 감정의 폭마저도 주님으로부터 제거되는 영적인 수술로 인해 드디어는 이런 사람으로 거듭나게 되었음을 성경이 증언합니다.

베드로전서 4:7-11절을 읽겠습니다.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서로 대접하기를 원망 없이 하고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여러 가지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 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 같이 하라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그에게 영광과 권능이 세세에 무궁하도록 있느니라

오늘 저는 교우들과 조각되는 그리스도인이라는 제목으로 본문 설교를 나누려고 합니다.

베드로가 그랬던 것처럼 주님으로부터 철저하게 나의 비 신앙적인 요소들이 제거되는 그리고 조각되는 은혜가 설교를 통하여 전해질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본론)

 

본문을 읽어보겠습니다.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저는 개인적으로 이 구절을 만날 때마다 적지 않은 위로를 받곤 합니다.

어느 구절이 특별히 위로가 되는지 아십니까?

21절에 기록된 성전이 되어 가고와 22절의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입니다.

특히 22절을 영어성경 NLT 번역으로 읽겠습니다.

“Through him you Gentiles are also being made part of this dwelling where God lives by his Spirit.”

직역을 하면 이렇게 번역할 수 있습니다.

주님을 통하여 당신과 같은 이방인들도 성령에 의하여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한 부분으로 또한 만들어져가고 있습니다.”

에베소 교회는 이방 교회의 대표적인 지역 교회였습니다.

이방 선교에는 앞장서는 교회로서 위상이 대단한 교회가 에베소 교회였지만 유대적인관점에서 볼 때 어쩔 수 없는 이방적인 태생의 교회였습니다.

그러기에 음으로 양으로 적자라는 자존감이 있는 유대적인 그리스도인들이나 예루살렘 교회의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는 업신여김을 당하거나 폄훼를 당하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데 이방인들을 위해 부름을 받은 바울 사도를 통하여 그렇게 위축되어 있는 에베소 교회의 지체들은 대단히 감동적인 위로의 메시지를 전달받은 것입니다.

어떤 내용입니까?

주눅 들지 말라는 메시지였습니다.

위축되지 말라는 격려의 메시지였습니다.

오늘의 언어로 바꾸어 보겠습니다.

에베소 교회의 형제들아너희들은 지금 완벽하지는 않은 상태의 교회이다설상가상으로 기득권층에 있는 사람들로 인하여 깔봄을 당하거나 업신여김을 당하기 때문에 많이 힘이 들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주눅이 들거나 위축되지 않기를 바란다왜냐하면 너희 에베소 교회 성도들은 참 괜찮은 하나님의 백성들이다너희 에베소교회는 하나님이 기뻐하는 교회이다지금 너희들은 그 어려움 속에서도 서로 긴밀하게 연결하여 도와가며 하나님이 거하시는 거룩한 성전이 되도록 노력하고 있고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하나님이 거하실 수 있는 처소를 만들기 위해 지금도 만들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의 언어로 바꾸니 조금은 본문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셨을 것으로 믿습니다.

그렇습니다.

에베소교회가 그랬던 것처럼그리고 그 공동체 안에 있었던 성도들이 그랬던 것처럼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세인 공동체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완벽한 교회도 아니고완벽한 사람들도 아닙니다.

그런데도 주눅이 들면 안 됩니다.

위축이 되어서는 더 더욱 안 됩니다.

왜 그렇습니까?

만들어져 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어져 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공동체로 조각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령 하나님의 전적인 도움으로 인해 주님이 머리가 되시는 건강한 교회건강한 성도들로 조각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정신이 우리 교회를 휘감고 있기 때문입니다.

적어도 내가 성령의 은혜로 인하여 주님이 거하시는 처소로 만들어져 가고 있는 한 나는 건강한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페이스북 친구 한 명이 가을을 맞이하는 단상을 하나 본인의 타임 라인에 올려놓았습니다.

읽다가 글말이 참 대견스럽고 아름다워 퍼 왔습니다.

안녕나의 가을나쁜 습관과 생각은 낙엽과 함께 떨어져 귀하고 귀한 거름이 되어

다시 나를누군가를 살리는 도구가 되길. 2018나의 가을이 토실토실한 도토리처럼 성숙하게 익어가길.”

제가 대견스럽다고 표현한 것은 이 친구에게 불과 3-4년 전에는 이런 영성을 찾아보려 해도 볼 수 없었던 친구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3-4년이 지난 지금 이 친구는 글을 하나 써도 모두가 영적인 기초가 든든한 가운데 글을 쓰는 것이 느껴지는 믿음의 진보가 느껴지기에 너무 감사할 따름입니다.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로 만들어져 가고 있는 지체를 보면서 오늘 본문이 떠올랐습니다.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그렇다면 우리는 오늘 본문을 통해 함께 공유해야 할 영적 교훈을 쓸어 담아 보겠습니다.

 

1) 나에게 유리한 하나님으로 하나님을 조각해서는 안 됩니다.

 

아이든 토저가 쓴 세상에 무릎을 꿇지 말라에 보면 대단히 도전적인 글이 있습니다.

인간 안에는 세 사람이 있다옛 사람새 사람당신이라는 사람(THE YOU-MAN)이다. 회심하기 전에는 이세 사람이 모두 존재하지만 회심한 이후에는 한 사람만이 존재하고 그 사람이 나의 주도권을 쥐어야 한다그 사람은 새 사람이다.”(,p,245)

토저의 글을 읽다가 이런 생각이 묘하게 들었습니다.

내 안에 나를 주관하고나를 통제하는 사람이 새 사람이라면그것이 진실이라면 적어도 이것만은 하지 말아야 한다는 확신 말입니다.

내 취향에 맞는 대로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취향에 맞게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증거라는 것 말입니다.

제 책에서 밝혔듯이 오늘 우리가 보고 있는 한국교회와 그 속해 있는 우리들이 출애굽기 32장에 기록된 시내 산 난장과 너무 닮아도 닮았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출애굽기 32:1-6절을 읽습니다.

백성이 모세가 산에서 내려옴이 더딤을 보고 모여 백성이 아론에게 이르러 말하되 일어나라 우리를 위하여 우리를 인도할 신을 만들라 이 모세 곧 우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사람은 어찌 되었는지 알지 못함이니라 아론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의 아내와 자녀의 귀에서 금 고리를 빼어 내게로 가져오라 모든 백성이 그 귀에서 금 고리를 빼어 아론에게로 가져가매 아론이 그들의 손에서 금 고리를 받아 부어서 조각칼로 새겨 송아지 형상을 만드니 그들이 말하되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의 신이로다 하는지라 아론이 보고 그 앞에 제단을 쌓고 이에 아론이 공포하여 이르되 내일은 여호와의 절일이니라 하니 이튿날에 그들이 일찍이 일어나 번제를 드리며 화목제를 드리고 백성이 앉아서 먹고 마시며 일어나서 뛰놀더라

겉모양으로는 전혀 이상하지 않았던 아론의 종교는 너무나 한국교회와 닮았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여전히 부르고제단을 쌓아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고 식탁공동체 까지 함께 행하는 아론의 종교는 오늘날 우리 교회와 다를 바 없습니다.

그러나 그 다음이 문제였습니다.

금송아지를 만든 시내산 공동체는 하나님께 드릴 것 다 드리고행할 것 다 행하고모양새에 있어서 최고의 종교적 갖춤을 다 갖춘 그들은 이렇게 행하고 다음과 같이 협박했습니다.

애굽에서 우리를 인도하여 낸 하나님이제는 우리가 만들어냈고 조각했으니 우리가 말하는 대로 순종하고우리가 무엇을 하든 눈감고우리가 무엇을 요구하면 즉각적으로 만들어야 합니다만에 하나 그렇게 하지 않으면 당신인 금송아지를 가장 하찮은 피조덩어리로 만들어 버릴 수 있습니다.”

새벽에 성서일과로 읽었던 지난 분량 중에 너무나 아쉬웠던 단편을 다시 재론하고자 합니다.

마가복음 5:14-17절을 복기하겠습니다.

치던 자들이 도망하여 읍내와 여러 마을에 말하니 사람들이 어떻게 되었는지를 보러 와서 예수께 이르러 그 귀신 들렸던 자 곧 군대 귀신 지폈던 자가 옷을 입고 정신이 온전하여 앉은 것을 보고 두려워하더라 이에 귀신 들렸던 자가 당한 것과 돼지의 일을 본 자들이 그들에게 알리매 그들이 예수께 그 지방에서 떠나시기를 간구하더라

이 기사는 우리가 잘 아는 거라사 지방에 살고 있었던 귀신들린 자를 축귀하시면서 그에게 들어가 있는 군대 귀신을 돼지 떼에게로 들어가게 하신 후 그 돼지들이 바다로 달려가는 바람에 몰사하게 된 것을 묘사한 마가의 기록 뒤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요점만 말씀드린다면 거라사 지방에 살고 있었던 사람들 중에 돼지를 사육하던 자들 애매한 재산상의 피해를 보았고 이로 인하여 이 일을 야기 시킨 예수에게 거라사 지방을 떠나라고 압박한 내용입니다.

바로 이 대목에서 참 유감스러운 점이 보입니다.

돼지 떼의 몰살은 돼지를 사육하는 자들에게는 분명 재산상의 불이익입니다.

그러나 더 심각한 재앙은 그 돼지에게로 흉악한 귀신들을 들어가게 한 예수님을 쫒아 낸 일입니다.

우리는 가끔 내 욕심과 내 유리함의 여부에 따라 예수를 내 지경에서 쫒아내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바로 이것을 고발하는 것이 거라사 광인에 얽힌 기사입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내 삶의 지경에서 예수를 떠나보내는 어리석은 일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려면 내 욕심에 따라 주님을 조각하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2) 철저하게 하나님이 내주하고 싶어 하시는 거룩의 집으로 만들어져 가야 합니다.

 

에베소 교회 지체들을 향하여 바울은 이렇게 권고합니다.

본문 22절입니다.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이 구절에서 주목해야 하는 단어가 있다면 처소입니다.

헬라어 카테이케네리온을 번역한 우리말로 처소를 선택했습니다.

크게 벗어나지 않은 단어입니다.

그런데 문자적인 의미에서는 조금은 아쉬운 번역입니다.

문자적으로 직역을 이 단어는 이 더 가깝습니다.

처소는 사람이 임시적으로 거주하는 방편의 의미가 있지만 집은 영주한다는 의미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내주하기를 원하시는 집의 모양으로 만들어져 가야 합니다.

그렇게 조각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내주하신다는 것은 머무신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떠나시지 않겠다는 하나님의 의지가 담겨 있습니다.

우리는 이미 기본적으로 알고 있는 지식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속성 중에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속성이 바로 거룩성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머무시는 대 전제는 거룩한 곳이라는 전제가 있습니다.

공식에 대입하여 하나님이 머무시는 집이 되려면 반드시 내 안에 만들어진 집이 거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내 집에 영주하시려면 내가 거룩해야 합니다.

말씀 그대로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는 말 그것입니다.

바로 이 대목에서 저와 여러분은 또 하나의 본문을 통해 받아야 할 영적 교훈을 발췌해야 하겠습니다.

도대체 내가 거룩하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하나님이 내 집에 머물도록 하시기 위해 내가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을 의미하는 말일까요?

이렇게 교통정리 하여 설명하겠습니다.

이 땅에서 살면서 하나님이 기뻐하실 만한 일들을 내 삶의 전 인생에 조각해 나가는 것입니다.

이 정의는 일전의 설교에서 인용한 김기석 목사의 글을 차용하겠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갈 꿈을 꾸는 이들에게 나는 말한다. ‘하나님나라에 가는 길을 이 땅에서 잘 익혀두지 않으면죽어서는 영 그 길을 못 찾는 거 몰라요.’ 그러면 그들은 묻는다. ‘그 길을 어떻게 익혀야 하나요?’ 나는 서슴없이 대답한다. ‘당신의 삶의 자리에서 천국에 가면 이것은 없을 것 같다는 것을 제거하며 사세요또 천국에 꼭 있었으면 좋겠다는 것이 있으면 삶 속에서 그것을 구현하면서 사세요.” (오래된 새 길,p,106)

기가 막힌 통찰입니다.

거룩함이란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만들어가는 과정입니다.

거룩함이란 하나님의 마음을 뜨겁게 하는 그것을 이루어가는 조각의 과정입니다.

지난 9월 24일 유엔 총회 산하에서 실시하는 제너레이션 언리미티드 행사’ (10~24세 청소년과 청년들에 대한 투자와 기회를 확대하자는 취지로 마련된 글로벌 파트너십 프로그램)에 방탄 소년단원 중에 한 명인 김남준 멤버가 영어로 연설을 한 것을 유트부 영상을 통해 보았습니다.

약 7분 정도의 그의 연설을 들으면서 갑자기 한 문장에서 귀가 솔깃해졌습니다.

“What excites you and makes your heart beat?”

당신을 흥분하게 만들고 당신의 심장을 쿵쾅거리게 만든 것이 무엇입니까?

듣고 있다가 이런 생뚱맞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지금 BTS 라는 한국이 낳은 남성 아이돌 그룹에 속해 있는 7명의 준수한 청년들이 전 세계에 있는 젊은이들의 심장을 쿵쾅거리게 만들었습니다.

거의 열광의 수준입니다.

그렇게 만든 장본인이 유엔에서 행한 연설을 통해 당신을 흥분하게 만들고심장을 쿵하게 만든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 질문에 맞서니 이런 오기가 생기는 것 말입니다.

당신은 오늘도 하나님 때문에 심장이 멎을 것 같은 감동으로 살고 있습니까?

그 분이 내 안에 있는 집(카테이케네리온)에서 영원히 머무실 수 있도록 그 삶을 실천하고 있습니까?

완벽하지는 않지만 그런 집을 만들고 조각해 가며 살고 있습니까?

나는 우리 세인 교회의 지체들이 그런 하나님의 사람들로 조각되기를 기대합니다.

 

결론)

 

이제 저는 말씀을 맺으려고 합니다.

유진 피터슨의 메시지 번역으로 22절을 읽어드리고 기도하겠습니다.

우리는 날마다 그 집의 모양이 잡혀가고 있는 모습을 봅니다그 집은 하나님이 세우시는 성전우리 모두가 벽돌처럼 쌓여 이루어지는 성전하나님이 머무시는 성전입니다.”

사랑하는 세인 지체 여러분!

오늘도 하나님이 만족함으로 거하실 수 있는 집의 모양으로 조각되어 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소망합니다.

 

 

찬양하겠습니다.

 

예수 가장 귀한 그 이름

예수 언제나 기도 들으사

오 예수 나의 손 잡아주시는

가장 귀한 귀한 그 이름.

 

예수 찬양하기 원하네

예수 처음과 나중 되시는

오 예수 날 위해 고통당하신

가장 귀한 귀한 그 이름.

 

예수 찬양하길 원하네

당신의 끝없는 사랑

오 예수 목소리 높여 찬양해

가장 귀한 귀한 그 이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