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월 3일(화요일) 묵상 말씀인가? 아브라함인가? 오늘의 성서일과 시편 20편, 창세기 12:1-7, 히브리서 11:1-12 꽃물 (말씀 새기기) 창세기 12:4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칠십오 세였더라 마중물 (말씀 묵상) 때론 고전적인 해석이 다시 들춰봐도 감동을 준다. 그래서 고전, 고전하는 것 같다. 오늘 성서일과도 새로운 해석보다 고전적인 해석이 복기해도 늘 새롭다. 아브람이 따른 것은 여호와의 말씀이었다. 반면 롯이 따른 것은 아브람이었다. 말씀을 따른 자와 사람을 따른 자가 동급일 수는 없다. 아니, 동급이면 신앙의 정체성이 흔들린다. 고향에 있는 출신 교회에 내 동기들이 약 40명 정도가 된다. 후배들의 지론에 의하면 40여 명의 내 동기들 중에 지금까지 신앙의 테두리 안에 있는 친구들은 손가락으로 셀 정도로 거의 전멸했다. 특히 고 3시절, 고향 교회 담임목사님은 부흥사 스타일의 목회자이셨다. 설교는 대단히 역동적이었지만, 감정적인 면을 상당수 많이 건드리셨다. 내 동기들 중 상당수는 당시 대유행이었던 방언, 투시, 심지어 방서(이게 어디에 근거를 두고 있는 불투명하지만 아마도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이 효시인 듯)까지 받은 친구들이 있어 나 같은 날라리(?)는 대단히 세속적이고, 은혜 받지 못한 자로 밀려 있었다. 하지만 50년이 지난 지금, 그렇게 뜨겁게 신앙생활을 하던 친구들은 교회 공동체에서 사라졌다. 도대체 어떻게 해석을 해야 할까? 어렸을 때에 입도 벙긋하지 못했지만, 이제는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말씀에서 배제된 그 어떤 종교적 행위는 미신과 다르지 않다. 말씀이 밑힘이 되지 않은 기독교적인 신앙의 행위 역시 매일반이다. 그래서 그런지 아브라함은 말씀을 따라갔고, 롯이 아브라함을 따라갔다는 성서일과는 오늘도 나에게는 큰 울림과 가르침으로 다가온다. 두레박 (질문) 나는 여전히 말씀을 따라가고 있는가? 그리고 섬기는 공동체가 말씀을 따라가게 하고 있는가? 손 우물 (한 줄 기도) 하나님, 세인 공동체의 밑힘이 말씀이게 하옵소서. 나비물 (말씀의 실천) 2023년, 말씀 묵상을 전 교인들에게 적용하는 스케줄을 짰다. 녹록하지 않겠지만 최선을 다해보자. 하늘바라기 (중보기도) 하나님, 오늘 척추 시술을 하는 지체가 있습니다. 현장에 함께 가셔서 지체를 보호해 주십시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