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30일 금요일 묵상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사이 오늘의 성서일과 시편 20편, 이사야 26:1-9, 고린도후서 4:16-18 꽃물 (말씀 새기기) 고린도후서 4:18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 마중물 (말씀 묵상) 첫 번째 안식년을 맞이했던 수 년 전에 아내와 함께 터키에 있는 소아시아 7개 교회 성지순례를 다녀왔다. 소 아시아 7개 교회는 거리적으로 각각 장거리에 위치해 있었기에 버스로 이동했던 지루함이 기억에 있다. 하지만 반면 그 버스 안에서 느꼈던 잊을 수 없는 감동도 오롯하다. 에어컨 시설이 잘 되어 있고, 승차감도 꽤 괜찮은 32인승 리무진 버스가 성지순례 내내 우리 일행의 도우미였다. 장거리였기에 육체적인 피곤함도 어느 정도 일소해 주는 정말 고마운 친구였다. 성지 순례 기간, 남부 안탈리야에서 콘야로 넘어가는 여정에 험하기 짝이 없는 타우르스 산맥을 넘어야 했다. 안락한 리무진 버스에 기대어 산맥을 넘을 때, 멀미를 하는 팀원이 있을 정도로 길이 험했다. 가이드가 이렇게 말했다. 바울은 이 산을 도보로 넘었을 것이라고, 순간, 울컥했다. 나는 이 산맥을 시원한 바람이 나오는 리무진에 탑승하여 관광하며 넘고 있는데, 이 길을 도보로 넘었다니! 고린도후서 4:18절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고백이 아님을 나는 그때 절감했다. 학자에 따라 바울에 대한 평가가 호불호로 갈린다. 부정적 평가를 하는 학자들은 바울이 역사적 예수의 삶을 가장 잔인하게 찢어 발린 원흉이라고까지 혹평을 서슴지 않는다. 신학적 스펙트럼은 학문적인 성향에 따라 얼마든지 갈라질 수 있다고 나 또한 믿는다. 하지만 반대를 위한 반대, 혹은 비평자가 갖고 있는 불완전함으로 호도된 비평은 도리어 천박하다. 적어도 타우르스 산맥을 도보로 넘어보지도 않은 자들이 이론적으로 바울을 폄훼하는 것은 비겁하다. 그런 자들이 고린도후서 4:18절을 믿을 리 없고, 그런 자들이 고린도후서 4:18절을 고백할 리 없다.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 바울이 이 고백은 현장 목회자인 내게는 적어도 눈물 흘리며 고백하는 영혼의 시금석이다.
두레박 (질문) 눈에 보이는 것에 혈안이 되어 목회한 나는 나의 잘못에 대해 냉정한 판단을 하고 있는 목사인가? 손 우물 (한 줄 기도) 하나님, 바울의 영성은 목회자로 살고 있는 나에게 중요한 바로미터이기도 합니다. 바울이 나를 본받으라고 선언했던 그 무시무시한 영성을 나도 본받게 하옵소서. 그런 영력의 사람으로 조각되게 하옵소서. 나비물 (말씀의 실천) 눈에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무감각이 나를 옥죄지 않도록 영적 분별력에 눈감지 않는 지혜를 찾는 날이 되자. 하늘바라기 (중보기도) 하나님, 암 투병 중에 있는 지체에게 좋은 소식이 도착했습니다. 암 수치도 정상, 유전자 변이도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면역 억제제를 복용하지 않아도 되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이제는 재발하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 지체를 끝까지 인도하셔서 완치 판정에 이르도록 도우시옵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