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23일 금요일 묵상
주군 앞에 앉아 질문하는 삶.
오늘의 성서일과
누가복음 1:46b-55, 사무엘하 7:18, 23-29, 갈라디아서 3:6-14
꽃물 (말씀 새기기)
사무엘하 7:18
다윗 왕이 여호와 앞에 들어가 앉아서 이르되 주 여호와여 나는 누구이오며 내 집은 무엇이기에 나를 여기까지 이르게 하셨나이까
마중물 (말씀 묵상)
아침에 출근해 보니 살이 떨리게 춥다. 언제나 제천은 +α 다. 오늘은 영하 15도를 가리켰지만, 내일은 영하 19도라는 예보다. 새벽송을 해야 하는 날인데 적지 않게 걱정이다. 감기 몸살에, 눈 치우느라 허리까지 정상이 아니다 보니 컨디션 난조다. 급기야 오늘은 새벽예배를 인도하지 못했다. 약을 먹고 가사 상태에 빠져 몸살을 앓고 나니 조금 회복되어 묵상에 임했다.
다윗이 하나님께 질문한 내용을 들여다보니 존재론적인 자아를 묻고 있음을 알았다. 결국 인간이 질문하는 존재론적인 질문은 ‘나’라는 존재에 대한 원초적인 물음이다. 이게 어찌 다윗만의 질문일까 싶다. 나는 누구일까? 인간이 철학을 시작한 이래, 지금까지 계속해서 이어온 질문이다. 많은 철학자들이 이렇게 일갈했다.
나는 누구인가를 묻는 인간은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와 어떻게 죽을 것인가에 대해 질문하며 사는 존재라고.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하지만 오늘 묵상 중에 눈에 띤 구절이 보인다.
“여호와 앞에 들어가 않아서”
그리스도인들이 묻는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은 철학적 질문과 차별성을 가져야 함을 알게 해준다.
주군 앞에 앉아 질문하는 삶.
바로 이 명제 아래에서 나는 누구인가? 에 대한 답을 찾는 사람들이 그리스도인들이다. 그러니 관건은 하나다.
내가 주군 앞에 앉아 있는가? 바로 이거다. 난 이 차별성을 존중한다, 아니 존중하고 싶다.
그래서 오늘도 묻는다.
나는 주군의 면전 앞에 앉아 있는가를.
두레박 (질문)
주 여호와여 나는 누구이오며 내 집은 무엇이기에 나를 여기까지 이르게 하셨나이까?
손 우물 (한 줄 기도)
나는 나를 참 모르겠습니다. 아니, 조금 더 솔직하게, 나는 나를 믿지 못하겠습니다. 그래서 몸부림을 치는 것이 있습니다. 주님의 면전 앞에서 떠나지 않게 해주십시오. 주님 앞에서.
나비물 (말씀의 실천)
사무총회를 준비 중에 있다. 후미진 곳을 더 살피는 2023년의 계획이 되도록 노력해 보자.
하늘바라기 (중보기도)
하나님, 여름이 겨울보다 낫다는 이유는 적어도 얼어 죽는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을 極强의 한파가 몰려온 날입니다. 얼어 죽는 우리 이웃이 없게 해주십시오. 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