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18일 주일 묵상
믿을 놈이 따로 있지!
오늘의 성서일과
이사야 35:1-10, 시편 146:5-10, 누가복음 1:46b-55, 야고보서 5:7-10, 마태복음 11:2-11
꽃물 (말씀 새기기)
시편 146:5
야곱의 하나님을 자기의 도움으로 삼으며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자기의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
마중물 (말씀 묵상)
시인의 노래가 절절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왜일까? 아마도 두 번에 걸쳐 토로한 하나님이라는 존재에 대한 정체성 고백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도움과 소망의 대상이신 하나님이라는 정체성.
오늘 내가 살고 있는 시대적 정황을 보면 거의 모두가 이렇게 산다.
나의 도움은 나, 나의 유일한 소망은 나
이 결기에 하나님의 자리는 없다. 주님이 거하실 여백은 0,1%도 없다. 모두가 나다. 지금은 무대의 뒤쪽을 물러선 미남 승려 ‘혜민’의 일갈에 수많은 사람이 열광했다.
“그 누구에게도 내 인생의 결정권을 주지 마세요. 내가 나의 삶의 주인입니다. 부처님도, 예수님도, 그 어떤 성스런 스승이라도 ‘나 자신’이 있었기 때문에 그분들의 성스러움도 존재하는 것입니다. 누구보다도 나를 더 사랑하십시오.” (혜민,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121)
나도 혜민의 말에 부분 동의한다. 내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데 누가 나를 사랑해 주겠는가! 아마도 많은 팬들이 혜민의 말에 열광한 이유는 바로 이 부분 때문이 아닌가 싶다. 나도 나를 사랑하라는 그의 말에 부분 동의한다. 하지만 접근 방법이 나하고는 다르다.
내가 나를 사랑하고 존중해야 하는 이유는 내 스스로가 완벽하거나 잘 나서가 아니다. 목회를 하면서 더 진하고 또 진하게 느끼는 것 중이 하나가, 나는 나를 절대로 신뢰할 수 없는 존재라는 점이다. 조금 더 리얼하게 말하면 이렇다.
“믿을 놈이 따로 있지, 나를 믿어!”
객기가 아니다. 나는 대단히 신중하게 고백하는 말이다.
그런데 내가 나를 존중하는 이유는 그런 나를 하나님께서 구원해 주셨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시인의 고백이 맞다.
“야곱의 하나님을 자기의 도움으로 삼으며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자기의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
나는 내 소망이, 내 도움이 나에게 있다고 믿지 않는다. 내 도움과 내 소망은 철저히 주군에게 달려 있다. 이것이 내 신앙의 원리다.
두레박 (질문)
하나님, 내 소망과 도움의 원천이 주님이 아닌 다른 것이 되지 않도록 나를 견인해 주실 것이지요?
손 우물 (한 줄 기도)
존귀하신 하나님, 나를 믿는 자가 아니라 나를 구원해 주신 주군을 믿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불뚝 불뚝 솟아오르는 내 자아가 중심이 되려는 교만과 싸워 이기게 해 주십시오.
나비물 (말씀의 실천)
나를 내려놓자. 나를 겸비해 보자. 쉽지 않은 내려놓기이지만 그래도 그렇게 해보자. 주군이 함께 계시도록.
하늘바라기 (중보기도)
주일입니다. 설교를 해야 하는 부담이 너무 큽니다. 이런 마음의 한편에는 잘하고 싶은 마음, 성도들에게 인정받고 싶어 하는 천박성이 똬리를 틀고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잘 하고 싶은 설교가 아니라, 성도들이 잘 살아내는 설교가 되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