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21일 월요일 묵상
눈물을 흘려야
성서 일과
시편 24편, 시편 117편, 예레미야 46:18-28, 예레미야 30:1-17, 요한계시록 21:1-27
꽃물(말씀 새기기)
요한계시록 21:4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는 다시는 사망이 없고 哀痛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마중물(말씀 묵상)
오늘은 이 말씀에 목이 메인다. 모든 눈에서 흘린 눈물을 닦아주신다니. 단순히 눈물 흘린 것을 닦아주셨기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해석한 것이 아니다. 내가 정말 목이 메인 이유는 내가 사는 나날, 내가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는 삶을 주께서 지켜보셨다는 그 감동 때문이다. 내 눈물을 닦아주신다는 것은 나를 지켜보지 않으면 절대로 할 수 없는 일이기에 말이다. 나는 오늘도 이렇게 일하시는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 것을 믿기에 눈물을 흘려도 괜찮다.
조금 전, 아침 소그룹 반 사역을 마쳤다. 나눔 텍스트인 로마서 8:28절을 나누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지체들과 이렇게 나누었다.
내가 한 일, 내가 기도한 일 등등이 응답 되면 하나님은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주시는 좋은 하나님이시고, 만에 하나 일이 잘못되면 하나님은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주시는 분이 아니라는 말도 안 되는 천박성과 싸우자고 갈무리하며 사역을 마쳤다.
어느덧 조엘 오스틴, 로버트 슐러, 노만 빈센트 필로 이어지는 족보에게 잠식당해 십자가의 은혜와 능력보다는 심리학적인 잘 됨이 복음이라고 착각하는 늪에 빠져 있는 공동체를 보면서 주님이 닦아주실 눈물이 사라진 나와 교회를 본다. 은혜로 흘리는 눈물을 번영신학이라는 유사 복음에 빼앗길 수 없다, 나는 그날 주님이 닦아주실 눈물을 계속해서 흘릴 눈물 목회를 하고 싶다. 눈물이 사라진 목회, 생각할수록 재앙이다.
두레박 (질문)
왜, 자꾸만 눈물을 빼앗는 일에 몰두하는 것일까? 왜 그 일에 열광하는 것일까?
손우물 (한줄 기도)
하나님, 오늘도 주님 때문에 울게 하시고, 영혼 때문에 울게 하시고, 가리산지리산하는 우유부단한 나 때문에 울게 하시고, 내 사랑하는 한국교회를 위해 울게 하시옵소서.
나비물 (말씀 실천)
성도들의 눈물을 닦아 주실 예수 그리스도의 그 사랑이 편만하게 전해지도록 오늘도 발걸음을 떼자.
하늘바라기 (중보기도)
주님, 대림절이 오고 있습니다. 나는 주님이 어떤 모습으로 2022년 이 땅에 오실까 민감합니다. 주님, 고난을 당하고, 아픔을 당하는 민초들을 위해 오시옵소서. 희망의 싹이 잘라진 이 땅에 갈릴리 예수로 오십옵소서. 그리고 우리를 안아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