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16일(월요일) 묵상 월요일부터 더 승리하도록 오늘의 성서일과 시편 40:6-17, 출애굽기 12:1-13, 21-28, 사도행전 8:26-40 꽃물 (말씀 새기기) 사도행전 8:31 대답하되 지도해 주는 사람이 없으니 어찌 깨달을 수 있느냐 하고 빌립을 청하여 수레에 올라 같이 앉으라 하니라 마중물 (말씀 묵상) 구글 어스로 보니 에티오피아에서 예루살렘까지의 거리가 4,111km를 찍었다. 이 거리를 주후 1세기에 여행한 사람이 바로 에티오피아의 여왕 간다게의 재정을 맡은 내시였다. 왜 그가 이토록 먼 거리를 여행했을까? 성경적 내증으로 추측한다면 견딜 수 없는 영적인 갈증 때문이라는 것 정도다. 그는 예루살렘에 올라갔다가 다시 고국으로 귀국하는 길에 약 70km 남쪽에 위치한 가자 지구의 광야로 들어섰다. 그가 이용한 수단은 마차였다. 지금의 시각으로 보면 대단히 무모한 여행길이다. 왜 그는 이 무모한 일을 감행했을까? 아마도 그가 보고 있었던 이사야 53장에 대한 갈증 때문이었으리라. 그가 보고 있었던 이 구절에 대한 목마름 때문이었으리라.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그는 곤욕과 심문을 당하고 끌려갔으나 그 세대 중에 누가 생각하기를 그가 살아 있는 자들의 땅에서 끊어짐은 마땅히 형벌 받을 내 백성의 허물 때문이라 하였으리요” (이사야 53:7-8) 예언자 이사야가 받은 신탁은 이 대상자들이 바벨론 포로를 끌려가는 백성들을 지칭한 것이기는 하지만, 복음서로 접목한다면 도살당할 양처럼 끌려가신 분이 주군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할 자가 누가 있겠는가! 중요한 것은 이 양이 예수 그리스도임을 예루살렘 성전 종교와 거기에 빌붙어 살아가는 종교인들은 알지 못했든지, 알아도 인정하지 않았든지 둘 중의 하나였다. 그러기에 이 한 가지의 궁금증을 풀기 위해 그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찾아온 내시에게 성전 안에 있는 종교주의자들 그 누구도 이 사실을 알려주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그러나 은혜였을 것이다. 예루살렘 성전이 아니라 척박한 땅 가자 지구의 광야에서 내시는 빌립을 만났고, 빌립을 통하여 영적 목마름이 해결된 것은 물론, 영광스러운 세례까지 받게 되었음을 누가가 적시했다. 묵상 중에 가슴이 쿵쾅거리며 뛴다. 한쪽 가슴은 두려움으로 또 한 쪽 가슴은 설렘으로. 세인교회가 영적으로 무기력한 예루살렘 성전이 되지 않기를 두려움 마음으로 중보 하는 아침이다. 더불어 나는 빌립의 영성으로 랜덤의 시기를 살아내자는 설렘으로 결기해 보는 월요일이다. 세인 공동체에 찾아 나온 회중들 중에 실망한 마음을 갖고 예배당을 떠나게 해서야 되겠는가! 매일 가사에서 기다리고 있었던 빌립의 심정으로 사역하자. 부끄럽지 않게. 두레박 (질문) 우리 세인 교회는 예루살렘 성전인가, 가사의 광야인가? 손 우물 (한 줄 기도) 주님, 에티오피아의 내시들이 매 시간, 분, 초마다 세인 교회로 올라옵니다. 저들을 실망시켜 돌아가게 하지 마옵소서. 우리 교회는 가사 공동체가 되게 하옵소서. 1박 2일 강릉을 다녀와야 합니다. 안전하게 다녀오게 하시고, 교우들은 어려움이 없게 하옵소서. 나비물 (말씀의 실천) 이사야 53장의 종의 노래를 설렁설렁 부르지 않도록 열심히 공부하고 또 공부하자. 하늘바라기 (중보기도) 하나님, 한 주간이 또 시작되었습니다. 매주 월요일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종도, 세인 지체들도 어제 주일에 선포된 말씀을 붙들고 살아내는 한 주간이 되게 해주십시오. 주일 그리스도인이 아닌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여전히 그리스도인으로 살게 해주십시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