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13일(금요일) 묵상 순서가 중요하다. 오늘의 성서일과 시편 40:1-11, 창세기 27:30-38, 사도행전 1:1-5 꽃물 (말씀 새기기) 사도행전 1:1-2 데오빌로여 내가 먼저 쓴 글에는 무릇 예수께서 행하시며 가르치시기를 시작하심부터 그가 택하신 사도들에게 성령으로 명하시고 승천하신 날까지의 일을 기록하였노라 마중물 (말씀 묵상) 주지하다시피 사도행전은 의사 누가의 기록이다. 성서학자들 중에 반대 의견을 보이는 사람도 있지만, 대체적인 학자들은 사도행전이 누가의 고유한 작품이라는 데에 큰 이견이 없는 것 같다. 이미 알고 있는 사람들이 있겠지만, 누가는 소위 말하는 12명의 지명된 제자 群이라고 할 수 있는 제 1 제자 群이 아니다. 굳이 부연하자면 요한 마가와 같이 제 2 제자 群 즈음에 포진될 사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을 기록했다면 그의 영성과 집요함이 어느 정도였는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이 말은 누가에 대한 신뢰성이 내게는 적어도 대단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나는 개인적으로 바울의 영원한 동역자이자 주치의였던 누가를 전적으로 신뢰한다. 더불어 그의 지성적 영성에도 박수를 보내는 편이다. 그래서 그런지 그가 기록한 사도행전 1:1-2절의 흔적은 압권이다. 누가는 예수의 사역 순서를 이렇게 적었다. 제일 먼저 행하심을 말했고, 이어 두 번째로 가르치심을 적시한 뒤에, 마지막으로 성령의 도움을 개진했다. 다 그런 것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목사의 사역을 반대로 여길 때가 많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첫 번째로, 가르치는 사역을 두 번째로, 그리고 맨 마지막에 사는 것으로 못 박곤 한다. 하지만 나는 누가의 순서 정하기에 마음이 간다. 예수께서 말씀하시기 전에 당신이 말씀할 것을 사셨다. 사시고 가르치셨다. 가르친 뒤에 성령과 함께 동역하셨다. 모두가 내 생각과 같기를 바라는 마음은 1도 없다. 하지만 곱씹어도 누가의 의도적 표현이 나에게는 감동이 된다. 왜? 예수께서는 자신이 하지 않은 일은 가르치지 않으셨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목사가 되어 현장에서 30년을 훌쩍 넘게 사역을 하면서 두렵고 두려운 것이 있다. 하지도 못할 일들을 말한 실수들 때문이다. 사역의 현장성을 생각하면 어쩔 수 없다고 자위도 해보았지만, 그건 자위이지 정답은 아니다. 훗날 주 앞에서 섰을 때, 반드시 주께서 질문하실 이 일 때문에 두렵다. “이 목사야, 넌 하지도 못하면서 왜 말했니?” 고개를 숙이고만 있을 생각을 하면 끔찍하고 아찔하다. “행하시며 가르치시기를” 오늘 묵상의 촌철살인이다. 가르치고 행하려고 했다는 가당치도 않은 핑계는 대지 말자. 목사는 목사이전에 신앙생활을 하는 자라는 것을 나는 오늘도 핏발 세우며 견지하려고 한다. 한세대학교 영산신학대학원 채플에 가서 예배하는 M-div 학생들에게 이렇게 설교하고 돌아온 적이 있었다. “전도사님 여러분!, 예수 잘 믿으십시다.” 나에게도 동일하게 지금도 묻는 질문이다.
두레박 (질문) 말한 대로 살고 있나? 손 우물 (한 줄 기도) 하나님, 예수 잘 믿는 목사 되게 해주십시오. 나비물 (말씀의 실천) 말한 내용이 내 삶에서 실천되고 있는가를 눈 크게 뜨고 지켜보자. 안 되면 나를 쳐서 복종하자. 하늘바라기 (중보기도) 오늘은 제천에서 보기 드문 겨울비가 내립니다. 이 비가 그치면 미세먼지, 초미세먼지, 황사 등이 씻겨나가게 해주시고, 깨끗한 하늘을 보게 해주세요. 맑은 공기를 본지가 오래되었습니다. 하나님, 깨끗한 하늘 보게 해주십시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