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17일 토요일 묵상 진짜 복 오늘의 성서일과 시편 80:1-7, 17-19, 사무엘하 7:23-29, 누가복음 3:31-36 꽃물 (말씀 새기기) 사무엘하 7:29 이제 청하건대 종의 집에 복을 주사 주 앞에 영원히 있게 하옵소서 주 여호와께서 말씀하셨사오니 주의 종의 집이 영원히 복을 받게 하옵소서 하니라 마중물 (말씀 묵상) “복에 환장한 불교인들아, 너희 스승은 너희들이 구하는 왕궁을 버렸는데 너희는 그 스승에게서 무엇을 구하느냐? 나는 오늘 불교인들의 생리에 저항하고 싶다. 설사 신자가 1,300만에서 130명으로 줄어들지라도 여지없이 타락된 물질주의 복 사상을 철폐하는데 앞장서지 않으면 안 된다. 복에 환장한 불교 신자들아!” (한세완, “목회의 성공은 줄을 잘 서는 것이 아닙니다.”, 아가페, p,109) 나는 이 글을 읽고 타종교 성직자가 했던 말이지만 불온하게도 여러 차례 아멘 했다. 더 놀라웠던 사실은 이 글을 오래 전, 대단히 보수적인 장로교단의 지역 교회를 섬기던 부목사가 설파한 인용문이었다는 점이었다. 글 저자가 살아남았는지 꽤 궁금했지만 추적하지 않았다. 만에 하나, 추적했다가 ‘팽’ 당했다는 것을 알면 내가 시험에 들 것 같아서 그랬다. 너무 정직하며 상식적인 말이지만 감이 배 밖으로 나오지 않고서야 어찌 이런 발언을 부목사가 감히 할 수 있느냐는 것이 한국교회의 기상도이기 때문이다. 다윗이 성전 건축을 요청했다가 하나님으로부터 거절당한 뒤에 올린 기도문 중에 눈에 띠는 구절이 눈에 들어온다. “이제 청하건대 종의 집에 복을 주사 주 앞에 영원히 있게 하옵소서 주 여호와께서 말씀하셨사오니 주의 종의 집이 영원히 복을 받게 하옵소서 하니라” (삼하 7:29) 나는 개인적으로 이 구절을 참 좋아한다. 복에 환장했기 때문이 아니라 복의 내용 때문이다. ‘복’이라고 번역된 히브리어 ‘바라크’의 원 의미가 ‘무릎을 꿇는다.’는 의미다. 기막힌 적용이 가능하다. 하나님이 내게 베푸시는 진짜 복은 내가 하나님께 ‘무릎을 꿇는 복’이라니 박수를 칠 만큼 아름다운 복이 아닌가! 그래서 그랬는지 모르겠다. 유진 피터슨이 이 구절을 이렇게 의역한 것이. “부디, 한 가지만 더 구합니다. 저의 집안에 복을 내리시고 주의 눈을 떼지 마십시오.” (메시지 번역 사무엘하 7:29) 나는 유진의 말을 역으로 이렇게 적용하고 싶다. “주의 눈을 떼지 않는 영원한 복을 주십시오.” 이렇게 살고 싶다. 진짜 복을 받고 싶다. 주님께 무릎을 꿇는 영원히 복을 받고 싶다. 잘못된 복에 환장하지 않고 진짜 복의 사람이 되기를 다시 기도한다. 두레박 (질문) 나는 어떤 복을 추구하고 있는가? 진짜 복인가? 가짜 복인가? 손 우물 (한 줄 기도) 살아계신 하나님 아버지, 내 생명 끝나는 날까지 주군께 무릎 꿇게 해주십시오. 이 복을 빼앗기고 싶지 않습니다. 허락해 주십시오. 나비물 (말씀의 실천) 가만히 성찰하면 무릎을 꿇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 산적해 있다. 교회도, 내 삶도. 조금 더 치열하게 무릎을 꿇자. 하늘바라기 (중보기도) 연약한 이웃들에게는 여름이 겨울보다 훨씬 좋습니다. 그러니 아픈 자들에게 여름 같은 따뜻함으로 겨울을 날 수 있도록 저들을 안아 주십시오. 내일 주일, 기대함과 소망을 갖고 교회에 나오는 지체들을 실망시키지 않게 하옵소서. 특히 말씀 선포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