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그렇게 정년 트랙을 보장받은 대학 교수들이 옛말처럼 철밥통인 시대는 이미 지난 지 오래 되었다. 소위 말하는 ‘교수 평가제’가 대학마다 정착했기 때문이다. 대학교수들의 자리가 몇 몇 학교 수뇌부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피라미드 구조가 아닌 아래로부터의 평가에 의해 움직이는 시대가 되었으니 말이다. 학생들이 평가의 갑이 된 시대, 어떤 의미로 보면 상당히 긍정적인 면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물론 저의가 악질적인 학생들이 이익 집단화되어 교수 평가를 또 하나의 폭력적이고 물리적인 수단으로 이용하는 경우를 염려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부정적 요인을 막을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전제된다면 학생들이 교수의 강의 준비, 교수의 내용, 질적인 향상 등을 종합하여 그 교수의 임용과 대우 개선에 차등적인 점수를 주어 평가에 따른 이익을 주는 도구라고 사려한다. 더불어 이런 움직임은 개인적으로 가장 민주적 절차에 따른 아래로부터의 ‘공의 세우기’라고 평가하고 싶다. 교수 평가제를 학생들이 하는 쪽으로 경향이 흐르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공부하는 교수를 만들겠다는 의지가 아니겠는가? 철밥통이라는 견고함을 공부하지 않는 자에게는 주지 않겠다는 아래 공동체의 뜻 전함이 아니겠는가? 교수가 연구하는 교수가 되어 발전적이고 신선하게 학계에 도움을 주는 논문과 저서들을 저술함으로 대학 자체가 공부하는 상아탑임을 천명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일련의 이런 일들은 공격적인 측면에서 결국 멈추고 진보하지 않는 교수는 도태되게 하겠다는 역발상적인 긍정의 신호탄이 아니겠는가? 공부를 하지 않아 표절을 밥 먹는 듯하고, 심지어는 제자들이 피 땀 흘려 연구해 놓은 공적을 가로채기 하는 그런 비겁한 선생들에게 일침을 가하는 선한 목적의 발걸음이 아니겠는가? 했던 것을 10년, 20년을 써먹어도 건재하던 봉건적 사고가 아닌 더 좋은 진보와 성장을 가져오지 않으면 언제든지 탈락될 수 있다는 긴장감(tension)을 갖도록 하는 고무적인 일이 아니겠는가?
지난 주간, 서울에서 목회하는 연합회 소속 목사에게 전화를 받았다. 전화의 요는 크리스천 연합신문에 연재하는 저의 사사기 강해 글을 읽고 있는데 글을 접하면서 사사기에 대한 이해와 접근 방식이 마음에 들어 혹시 목회자들을 위한 강의나 교수를 하시면 거기에 참여하고 싶어 초면에 실례를 무릅쓰고 전화를 드렸다는 것이었다. 전혀 그런 일을 하지 않고 있고, 그럴만한 능력도 없음을 정중하게 고지하자 매우 아쉬워하며 그렇다면 신문에 연재하고 있는 사사기 글을 빼놓지 않고 받아볼 수 있는 방법을 제안했다. 해서 우리 교회 홈페이지 주소를 알려 준 후에 방문하시면 도움이 될 것임을 알려주고 전화교제를 끝냈다. 한 가지 지난주의 경험을 덧붙인다. 우리 교회 낮 예배에 부정기적으로 참석하는 자매와 지난주에 교제를 마쳤다. 교제 중에 서울에 거주하는 데 제천에 한 달에 두 주 머무는 일로 인해 교회를 정해야 했기에 웹서 핑으로 제천에 있는 교회를 찾다가 우연히 우리 교회 홈페이지를 알게 되었고, 들어와 설교를 듣게 되었는데 설교가 들려 그렇게 그렇게 제천세인교회에 나와 오프 라인상의 예배자가 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말 표현이 장난처럼 들리겠지만 다른 표현이 없어 이렇게 써본다. 그렇게, 그렇게 말이다. 나는 교회 홈페이지에 모든 설교를 토씨 하나 틀리지 않게 올린다. 더불어 업데이트에 대하여 신경을 쓴다. 물론 모든 동영상의 업-로딩도 빼놓지 않고 체크하여 지체되면 사역자들을 채근한다. 독서 서평도 빼놓지 않고 올려놓는다. 교회의 제반적인 활동 내역도 순발력을 발휘하여 교회가 정체되어 있지 않음을 외부에 알리기 위해 노력한다. 이렇게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유는 하나다. 2017년 담임목사의 목회 방침에서 밝혔듯이 우리 교회가 공부하는 교회임을 외부에 알리는 좋은 도구이기 때문이다. 여론이 민감함을 경험했다. 없는 것을 가식으로 내세우기식의 글이나 현장은 처음에는 세인들을 속일 수 있을지 모르지만 탄로 나는 것은 시간문제이다. 공부하는 교회, 공부하는 목사, 공부하는 성도는 하루 동안에 이루어지는 내공이 아니다. 그것은 지속적일 때 가능한 일이다. 무서운 것은 그것을 남들이 보고 파악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렇게, 그렇게 사람들은 매의 눈으로 우리들의 영적 경주와 싸움을 보고 있다. 게으르지 말자. 존 스토트가 이렇게 말 한 것이 공감되어 서평에 올려놓았다. “솔직히 말해서 공부의 궁극적인 장애물은 게으름이다.”(존 스토트 ‘설교’ p,1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