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께서 들으시고 놀랍게 여겨 따르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보지 못하였노라” (마 8:10)
우리들이 너무 잘 알고 있는 로마 군대의 지휘관이었던 백부장에게 주님이 받은 감격 때문에 제자들을 비롯하여 당신을 따르는 자들에게 표현하신 내용입니다. 백부장의 너무나도 엄청난 신앙고백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하지 못하겠사오니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나을 것입니다.” 라는 신앙고백을 들으신 이후에 곧바로 반응하신 고백입니다.
목회 현장을 어언 30여 년 간 지켜온 목회자로 살면서 가끔은 예상하지 못하는 감동적인 일들이나 사람들을 만날 때 느껴지는 기쁨은 이루 말 할 수가 없이 큽니다. 물론 목양의 현장이 그리 기쁜 일들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게 만드는 억울함도 있고, 속상함도 있지만 말입니다. 2 주 전, 친구 목사로 인해 얼굴 책 친구로 만난 한 자매가 경영하는 제천의 모 처에서 뚜레쥬르 빵집을 방문했습니다. 친구 목사와의 만남이 이유였지만 또 하나 페이스 북에서만 잠간의 나눔을 가졌던 자매와도 함께 교제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가끔 페이스 북에 자매가 올리는 글들이나 혹은 그녀가 쓴 댓글들을 접하면서 제 스스로 갖게 된 것은 관심이었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친구를 통해 귀동냥으로 들은 바로는 자매의 연령대가 30대라는 것을 얼추 짐작하고 있었는데 도무지 30대라고는 상상할 수 없는 글의 아름다움과 무게감을 느꼈고, 동시에 그 나이에 올곧은 웬만한 삶의 방향성을 갖고 있지 않으면 도무지 흉내 낼 수 없는 영성이 담보된 성숙한 자기 비움이 글에서 보였기 때문이었습니다. 30대라면 오직 자기만의 물질적 성을 구축하는데 거의 혈안이 되어 있을 때이고, 또 어떤 부류들은 천박한 자본주의의 노도와 같은 물결에 거의 대부분이 타협하기에 급급한 시기일 텐데 제가 간접적으로 본 자매의 삶의 정황 속에서 경험한 신앙고백적인 고해들은 도리어 종이 그렇게도 추구하기 위해 몸부림치는 이타적 삶의 흔적들이 고스란히 녹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 자매와 교제하는 시간, 제가 느꼈던 소회가 틀리지 않았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나서 정말로 너무나 기뻤습니다. 본인이 경영하는 경영체가 삶에 지친 자들이 함께 쉬고 가는 길벗들의 위로처가 되기를, 진정성이 있는 대화의 단절로 인해 힘들어하는 자들의 말벗이 되어 주는 장소가 되기를, 작금에 마련한 도시 속의 작은 시골 같은 정경의 집이 심신이 지친 자들이 나눔과 휴식을 통해 재충전하는 장소로 쓰임 받기를 위해 기도하고 준비하고 있음을 알고 난 뒤 더욱 제가 가진 느낌이 빗나가지 않음에 감사했습니다. 감동은 또 다른 감동을 준다고 하지요. 자매와 함께 인생의 동반자가 된 형제의 영적인 터도 아내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은 동일한 비전을 갖고 있음을 확인하고 순간 갑자기 저는 전술한 백부장이 생각났습니다.
‘이만한 믿음(정신, 사유함과 실천적 삶의 자국)을 가진 자를 만나보지 못했다.’는 예수님의 말씀이.
지난 주일, 따뜻한 부부와의 만남을 경험한 아내가 잘 하지 않는 속에 있는 말을 언뜻 내비치는 것을 보면서 진정성이 있는 상식은 통하는 것임을 다시 한 번 저 또한 확인했습니다.
“여보, 살면서 이렇게 탐나는 젊은 부부는 참 오랜만이네요.”
부부가 이타적 삶을 살기 위해 하나님께 경영을 맡긴 뚜레쥬르가 신바람 났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