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교 시절, 같이 공부하던 친구 중에 아주 특이한 친구가 있었습니다. 교수님들이 장래 희망을 물어보면 훌륭한 사찰 집사가 되려고 신학교에 들어왔다는 친구였습니다. 누가 보더라도 말이 안 되는 것처럼 보이는 멘트였지만 그 친구는 늘 그랬습니다. 지금은 그 친구와는 교제가 끊어져서 그가 정말로 목사가 되지 않고 사찰이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신학교 시절 그렇게 말했던 친구가 근래 가끔 떠오릅니다. 아마도 작금의 저의 처지 때문에 더 회상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목회의 여정에 들어선지 내년이면 30년이 됩니다. 젊어서도 하지 않았던 것을 요 근래에 뼈저리게 경험하고 있습니다. 사찰 노릇입니다. 하나님께서 40세가 되기 이전, 조직 교회를 섬길 수 있는 기회를 주셔서 교회를 섬길 때마다 관리 집사가 있는 곳을 시무하였습니다. 이로 인해 당연히 교회를 관리하는 것은 관리집사들이 맡아 주었기에 저는 목양에 전념할 수 있었습니다. 더불어 전담 사역자들이 동역해 주어 항상 공궤를 일삼는 것은 저의 몫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이 몫을 육십이 내다보이는 시기에 짊어지고 있습니다. 새벽에 불을 키고 끄는 일로부터 시작해서, 교회 문단속, 주차장 관리, 주중 화분과 화단에 물주기, 아주 가끔 막힌 화장실 뚫기, 정원에 고양이, 강아지 똥 치우기, 거의 사망 직전의 전구 갈아 끼기, 택배 물건 받아 놓기, 쓸데없는 스팸 전화와 씨름하기, 걸인 상대하기, 켜져 있는 전구 불끄기 등등 헤아릴 수없이 많은 잔무를 처리하는 것이 이제는 주업이 되었습니다. 혹여 개인적인 볼 일이 있어 외부에 출타할 때는 항상 비어 있는 교회를 걱정하는 것도 적지 않은 스트레스입니다. 그러나 이런 잔무에 시달리는 것은 그런 대로 거의 1년 넘게 감당하다보니 인간이 사회적 동물이라 기초 체력으로 버틸 만합니다. 정작 저에게 있어서 가장 힘든 일은 설교 준비와 공부할 시간의 부족입니다. 이것은 어떤 의미로 보면 성도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치명상을 입히는 아픔과 직결됩니다. 이런 이유로 제 스스로 질이 떨어지지 않는 설교를 준비할 수 있는 방법은 전담 사역자가 청빙되기까지 설교 횟수를 줄이는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준비되지 않은 설교를 하는 것은 성도들에게 죄이고, 동시에 목사인 저에게는 자존심 문제입니다. 해서 최대한 설교 횟수를 줄여 볼 생각입니다. 그것이 목사인 저에게도 정직한 일이고, 교우들도 손해 보지 않는 일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더 많이 공부하고, 질적으로 수준이 있는 설교를 준비하고, 기도와 말씀 연구에 전심전력하여 교우들이 예배를 드릴 때마다 실망하지 않고 감동을 느낄 수 있는 사역자가 되도록 노력하는 것이 아마도 제가 사찰 사역을 같이 하는 어간동안에 비집고 들어가야 할 틈새인 듯합니다. 아직은 교회 청소와 관리를 외주를 주는 것에 대해서는 목사로서 자존심이 허락하지를 않습니다. 전문 업체에 교회 청소 용역을 맡기면 교회 지체들도 스트레스를 덜 받고, 저도 이 고생을 하지 않을 것을 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이 섬기는 교회를 돈 주고 다른 사람에게 맡기는 것은 신앙의 양심상 허락이 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제가 사찰 목사로 사역을 하면서 두 가지를 다 큰 실수 없이 감당할 수 있는 것은 설교를 줄이는 것 말고는 다른 대안이 보이지를 않습니다. 조금의 시간을 갖고 고민하려 합니다. 결단이 서면 진행하려고 합니다. 느끼는 것이 있습니다.
사찰,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찰의 섬김은 은사입니다. ㅎㅎ.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