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 발 날리는 목사의 소망 9월 8일에 출간되는 책 제목을 출판사에서 ‘시골 목사의 행복한 책읽기’로 정했습니다. 원래 제가 설정한 가 제목은 ‘촌스러운 목사의 촌스러운 글 읽기’ 이었는데 출판사의 편집국에서 수정 제의를 한 제목으로 제가 양보를 해서 그렇게 정해졌습니다. 아마도 촌스럽다는 말이 속어와 같은 뉘앙스를 준다고 편집국에서 생각을 한 모양입니다. 생각하기에 따라서 그럴 수도 있겠다는 동의를 저도 함께 표해 그렇게 최종 합의가 이루어진 것입니다. 촌에 사는 사람들에게 촌스럽다는 표현을 하면 기분이 나쁜 것 같습니다. 심지어는 인격적인 모독처럼 받아들이기까지 하니 말입니다. 13년 전, 진해에서 이곳 제천으로 이사를 할 때 이상대 목사께서 했던 말이 기억에 있습니다. “이 목사를 제천 촌으로 보내는 것이 참 미안하다.” 개인적으로 저는 제천을 사람들이 촌이라고 생각하는지 몰랐습니다. 이곳이 옛날 귀양지였다는 사실도 한참 후에나 알았고, 다릿재, 박달재 터널이 생기기 전까지는 제천은 대한민국에서 오지 중이 오지였다는 말도 여기에 와서 알게 되었습니다. 지금이야 중앙고속도로가 연결되었고, 이제는 평택 제천 고속도로까지 연결되었으니 이곳을 오지 중의 오지라는 말을 쓰기가 쑥스럽지만 그러고 보니 교통의 발달로 인한 혜택을 받기 전까지는 정말로 제천이 촌이었던 것이 분명한 둣 합니다. 가끔 동기들과의 모임이 있을 때나, 아니면 세미나가 서울에서 있을 때 서울을 다녀올 때가 있습니다. 서울에 도착하여 친구들과 만남을 갖게 되면 으레 촌에서 목회하느라고 수고하는 친구가 왔다고 위로해 주는 인사성 멘트를 듣는 것이 일상이 되었습니다. 서울에 모처럼 올라왔으니 문화적인 혜택을 충분히 누리고 가라는 등의 배려를 하는 친구들도 상당수 있습니다. 그 배려의 근저에는 촌에서 사니 얼마나 수고와 고생이 많겠느냐는 동정심이 담보되어 있는 행위들이 담겨 있습니다. 해서 못내 안쓰럽고 안타까운 표정으로 저를 바라볼 때가 부지기수입니다. 시골에서 산다는 것이 아마도 시대의 흐름 속에서는 동정 받고 위로를 받아야 하는 일인 것 같습니다. 또 그렇게 굳어진 상식처럼 보입니다. 사람들이 말한 대로 오지 중의 오지에서 그리고 시골에서 산지가 13년이라는 세월이 흘러서 그런지 가끔은 아내의 고향인 서울을 방문할 때든지 아니면 제 고향인 인천을 방문하고 돌아오면 꼭 바보가 된 느낌입니다. 특히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일이라도 생기게 되면 영락없이 바보가 됩니다. 지하철과 시내버스가 연계된다는 말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고 손해를 볼 때가 있습니다. 서울에서는 버스들의 종류가 너무 많은 데 어떤 버스를 타야하는지도 두렵습니다. 특히 지하철을 이용할 때는 나가는 출구를 잘못 찾아 몇 번이고 다른 계단으로 올라간 적이 너무 많습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서울이나 인천에서 낭패를 경험하고 나면 정말로 나오는 탄식이 촌놈이라는 탄식입니다. 해서 친구들이나 지인들이 저를 향하여 시골에 사는 목사, 촌스러운 목사라고 정의해도 이제는 기분 나빠하지 않으렵니다. 저는 촌스러운 목사가 맞기 때문입니다.
참 촌스러운 목사가 지난 3 여 년 동안 읽은 약 300권 정도의 책을 27권으로 추려 그 보물 상자 안에 담긴 보석들을 엮어놓은 글쓰기의 총아를 세상에 내놓았습니다. 지난 1일에 인쇄에 들어갔고 8일에 초판이 제작되어 세상에 나옵니다. 저자는 촌스럽지만 그 촌스러운 저자가 그린 내용들이 촌스러움이 아니라 독자들에게 특히 그리스도인들에게 책읽기를 통하여 천박해지기 쉬운 오늘, 따뜻한 감동이라는 결과물로 남겨지기를 소망해 봅니다. 시골 목사의 소박한 기대함입니다. 교우들의 지속적인 응원을 부탁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