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26일(주일) 묵상 – 사순절 다섯째 날 폼 잡는 인생 살지 말자. 오늘의 성서일과 창세기 2:15-17, 3:1-7, 시편 32편, 로마서 5:12-19, 마태복음 4:1-11 꽃물 (말씀 새기기) 마태복음 4:6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 기록되었으되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치지 않게 하리로다 하였느니라 마중물 (말씀 묵상) 들은 소리다. 후배가 성결교단에서 나름 중형 교회라고 할 수 있는 교회 담임목사로 청빙 받아 부임한 이후에 들려준 후담이다. 후배는 하마평에 오른 담임목사 몇 명들과 순서에 따라이 차례로 설교 선을 보았다. 이력서를 제출한 교회에 공 예배에 가서 설교로 선을 본 것이다. 그 과정을 거친 뒤에 후배가 확정되어 부임하게 되었는데 뽑힌 변(辯)이 웃프다. “선 보인 목사 중에 유독이 머리에 포마드를 바르지 않은 목사라서 자기를 뽑았다.”는 후담이었다. 濃인지 眞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랬다. 만에 하나, 후배의 말이 청빙의 이유라면 그 교회 당회에 속해 있는 장로 청빙위원들은 머리에 무스나 포마드를 바른 목사를 권위적인 목사의 상징으로 보았나 보다. 실로 웃프다. 만에 하나 내가 높은 곳에서 점프했는데 하나님의 사자들이 나타나 손을 받들어 나를 보호하는 장면을 연출해 준다면 얼마나 폼 나겠나 싶다. 멋있을 것 같다. 근데, 멋있는 게 뭐 어떻다는 건가! 그러면 뭐가 달라지나? 그러면 나는 폼 나는 목사가 되나? 그게 뭐 어떤 것이기에 목까지 거다 싶다. 지난 세월 돌이켜 보면 나는 목회를 하면서 하나님의 사자들이 손을 뻗쳐 보호해주기는커녕 실컷 두들겨 맞으며 목회를 한 것 같다. 주군으로부터 너 이 정도 밖에 안 되는 목사냐고 혼찌검 나면서 목회 한 게 내 성적표의 전부다. 그런데 또 그런 생각이 든다. 그렇게 얻어터지면서 목회를 했지만, 나는 그 덕에 하나님 품 안에 있었다. 그러면 됐지, 뭐가 더 필요할까 싶다. ‘폼생폼사’로 사는 것보다 붙들려 사는 게 훨씬 행복했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두레박 (질문) 나는 목사의 권위를 지키기 위해 되지도 않는 폼을 잡으려고 헛된 시간 낭비하고 있는 여백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닌가? 손 우물 (한 줄 기도) 하나님, 매일 맞아도 하나님과 함께 동행 하고 싶습니다. 그렇게 살게 해 주십시오.
나비물 (말씀의 실천) 오늘 강단에서 선포한 말씀이 네 말씀이 아니라 내 말씀이 되게 최선을 다하자.
하늘바라기 (중보기도) 화요일에 췌장에 보이는 혹에 대한 조직검사를 앞두고 있는 지체가 있습니다. 하나님, 아시지요? 지체의 삶이 어떻게 살아온 인생인지를. 그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