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19일(주일) 묵상 예수의 현장성이 내 믿음의 현장성인가? 오늘의 성서일과 출애굽기 24:12-18, 시편 99편, 베드로후서 1:16-21, 마태복음 17:1-9 꽃물 (말씀 새기기) 베드로후서 1:16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과 강림하심을 너희에게 알게 한 것이 교묘히 만든 이야기를 따른 것이 아니요 우리는 그의 크신 위엄을 친히 본 자라 마중물 (말씀 묵상) 베드로가 변화산상에서 예수의 변형을 경험했던 시기를 주후 30년대로 볼 때, 이 서신이 기록된 시기는 아무리 못 잡아도 30년이라는 세월이 흐른 뒤의 글이다. 베드로후서의 저작 연대를 주후 64년 이전으로 한정하는 것을 전제할 때 그렇다. 그렇다면 본문 성서일과는 나름 비장한다. 베드로가 고백했던 증언은 두 가지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행하셨던 능력’과 그의 ‘강림하심’이라는 화두는 만들어낸 이야기가 아니라는 점이다. 만에 하나 베드로를 저자로 인지할 때 이 고백은 진지하다. 불과 30여 년 전의 뜨끈뜨끈한 실증이었기에 말이다. 반대로 베드로후서가 베드로의 정신을 따르는 베드로학파에 속한 그 누군가의 편지라고 인정해서 주후 100년 이후로 저작 연대를 산정해도 그 무게감은 매일반이다. 스승의 삶이 고스란히 녹아져 있는 전승이기에 그렇다. 성서일과의 근거인 베드로후서 1:17-18절이 생생한 증언은 호흡을 가빠지게 한다. 증언은 교묘히 만든 인위적인 작품으로 가장할 수 없다. 삶의 현장적인 체험이 없이는 표현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변화산상에서 벌어진 베드로의 현장적인 체험은 베드로 인생에 가장 극적인 장면일 수 있다. 그것을 증언하고 남기는 일은 조작된 소설이 아니다. 다큐 제목처럼 ‘삶의 현장 체험’은 살아있는 체험 수기다. 나는 이런 이유 때문에 베드로후서에 기록된 성서일과를 믿음으로 동의한다. 주님은 능력을 갖고 계신 분이고, 그 능력의 끝자락에 다시 오실 주군이시다. 그러기에 예수는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시다. 두레박 (질문) 나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을 온전히 믿고 있는가? 손 우물 (한 줄 기도) 하나님, 당신의 아들 예수께서 오실 날이 분명히 있을 것임을 저는 믿습니다. 그날이 있음을 믿는다면 오늘을 조금은 더 성실하게 살아내야 하겠습니다. 그렇게 살도록 인도하옵소서. 나비물 (말씀의 실천) 베드로전후서를 다시 묵상하며 읽어야겠다. 베드로의 절절한 삶의 체험 현장을 복기하기 위해서.
하늘바라기 (중보기도) 이 땅에 존재하는 한국교회 강단이 비틀어지지 않게 하소서. 올곧은 하나님의 말씀만이 강단에서 선포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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