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21일(토요일) 묵상 모든 것을 버리고, 이게 말이 되나! 오늘의 성서일과 시편 27:1-6, 사무엘상 15:34-16:13, 누가복음 5:27-32 꽃물 (말씀 새기기) 누가복음 5:27-28 그 후에 예수께서 나가사 레위라 하는 세리가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나를 따르라 하시니 그가 모든 것을 버리고 일어나 따르니라 마중물 (말씀 묵상) “일어나 따르니라” 이건 말이 된다. 리더에게 따를 만한 그 무언가가 보이면 팔로워는 이렇게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말 앞에 있는 수식 문구가 충격적이다. “모든 것을 버리고” 알패오의 아들 레위가 지금까지 구축해 놓은 재산은 적지 않았을 것이 분명하다. 어찌 단순하게 물질뿐이라고 해석할 수 있단 말인가! 마태가 벌어놓은 물질은 매국노, 피도 눈물도 없는 짐승 같은 놈이라는 욕설을 들어가며 갖은 수모와 모욕 끝에 쌓아올린 피와 같은 재산이었을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이것들을 버렸다니! 그것도 말 한 마디에 말이다. 이런 추측을 해본다. 예수님의 입에 나온 말에 대한 권위가 얼마나 엄청났으면 ‘나를 따르라’는 한 마디에 넉-아웃이 되었을까 심정적으로 동의는 되지만 쉽지 않은 일임에 틀림없다. 말씀 앞에서 서면서 깊은 성찰을 해 본다. 어떻게 이 일이 마태에게 일어났을까? 그러다가 문득 든 생각이 이거다. 정직하지 않게 축적했던 물질의 헛헛함 그렇다. 마태에게 단 한 시간이라도 사람답게 살고 싶다는 인간 근본의 갈증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바로 이것이 예수의 말 한 마디에 모든 것을 버릴 수 있었던 이유는 아니었을까 싶다. 고등학교 시절, 선생님에게 들었던 이야기가 생각난다. “사람이면 다 사람인가 사람이 사람다워야 사람이지” 선생님은 사람 인(人)이라는 한자 단어 5개가 쓰여 있는 편지를 이렇게 푸셨다. 그렇다. 단 한 순간이라도 신앙인답게 살아보자. 신앙인이면 다 신앙인이냐 신앙인이 신앙인다워야 신앙인이지. 생각이 여기까지 이르다보니 마태, 참 매력적인 사람이다. 두레박 (질문) 나는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를 따르고 있는가? 얼굴을 들지 못하겠다. 손 우물 (한 줄 기도) 마태를 부르셨던 예수 그리스도의 그 한 마디에 나 역시 진정성을 갖고 따르는 자가 되게 하소서. 요원하다고 할지라도 반드시 그렇게 살아가는 나의 천로역정이 되게 하소서. 나비물 (말씀의 실천) 나는 갖고 있는 것이 너무 많은 목사. 남기고 갈 게 없이 홀가분하다고 노래했던 박경리 선생님의 말대로 그 훈련을 지금부터라도 차곡차곡 쌓아가자. 하늘바라기 (중보기도) 설 명절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가족의 소중함이 무엇인지를 고향을 찾아온 이들이 더 진하게 느끼는 설 명절이 되게 해주십시오. 그리고 매년 명절이 되면 피 울음을 울고 있는 세월호 유족들과 이번 설 명절이 그 어느 때보다 아플 이태원 참사 유족들에게 하나님의 위로가 임하게 하옵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