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음 깨기 (WELCOME)서부동 1006번지 엘 벧엘 교회에서 역사를 시작하는 우리 교회를 향한 축사 한 마디 하기. | 경배와 찬양 (WORSHOP)● 주 예수 크신 사랑 (205장) ● 주님 약속하신 말씀 위에서 (찬송가 546장) | 말씀읽기와 적용 (WORD)● 본문: 사도행전 11:19-26 ● 제목: 비로소 1) 본문의 배경이 되고 있는 수리아 안디옥 지방의 여러 특성들을 말해 보자. 2) 수리아 안디옥 그리스도 공동체에 이르러 비로소 지체들이 그리스도인이라는 명칭이 붙은 이유는 무엇인가? 3) 신앙의 연륜과 상관이 없이 비로소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서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사역하기 (WORK)1) 중보기도 1. 서부동의 새 시대를 통해 하나님의 교회가 승리하도록. ① 매 주일마다 새신자가 등록하는 교회가 되게 하옵소서. ② 서부동 엘 벧엘 교회는 시도행전적인 교회가 되게 하옵소서. 2. 사순절 기간 동안 주님의 은혜에 깊이 잠길 수 있도록. ① 가장 말을 적게 하는 기간이 되게 하옵소서. ② 기름부음이 충만한 나날이 되게 하옵소서. ③ 주어진 말씀의 일과대로 성서와 가까이 하는 기간이 되게 하옵소서. 3. 하나님 나라의 가치에 붙들릴 수 있는 제천지역의 잠재적 그리스도인들을 일군으로 보내 주옵소서. ① 하나님의 교회에서 담임목사와 같은 말, 같은 뜻, 같은 생각, 같은 행동으로 같은 비전을 꿈꿀 수 있는 일군을 보내주옵소서. ② 하나님의 교회에서 예수 십자가만으로 만족할 수 있는 일군이 양육되게 하옵소서. ③ 하나님의 교회로 제천지역의 젊은 일군들이 몰려오도록 (주일학생, 중고등부 학생, 청년 대학생) 4. 엘 벧엘 교회에 성령의 바람이 휘몰아치게 하옵소서. ① 성령보다 앞서지 않게 하옵소서. ② 성령보다 뒤쳐지지 않게 하옵소서. ③ 성령과 동행하게 하옵소서. ④ 사도행전적인 성령의 은사가 나타나 사역하게 하옵소서. ⑤ 그 결과 성령의 열매를 맺게 하옵소서. 5. 우리 교회 두 날개 양육 시스템으로 통한 재생산 사역자들이 양성되게 하옵소서. ① 양육 1기 A,B 반의 은혜로운 과정을 위해 (3월 중에 졸업 예정) ② 양육 2기 개강을 위해 (3월 중에 개강 예정) ③ 제 2회 전인적 치유 수양회를 위해 (4월 중에 개강 예정) ④ 4월에 실시될 열린 모임을 위해 ⑤ 제자대학 1학기를 위해 (4월 중에 개강 예정) 6. 우리 교회 전인적 소그룹의 12진(陣)을 위하여 ① 셀이 영적 재생산 사역의 캠프가 되게 하옵소서. ② 친교 단체가 아닌 공중 권세 잡은 자들과 대적하는 보루가 되게 하옵소서. ③ 12월에 번식을 향해 달려가는 진(陣)되게 하옵소서. 7. 우리 교회 예배당 건축 후의 앞으로의 여정을 지켜주옵소서 ① 4월 입당예배가 잘 준비되게 하옵소서. (건축허가, 조경공사, 기도실 공사등등) ② 2015년에 하나님의 교회를 헌당하게 하옵소서. ③ 손동만 집사를 끝까지 축복하옵소서.
2) 헌금 / 광고 3) 주기도문 4) 목원들의 기도 제목 나누기 | 설교요약 (SUMMARY)오늘 본문을 보면 AD 1C에 안디옥이라는 도시는 두 도시가 있었습니다. 하나는 바울이 제 2차 전도여행을 통해서 방문하여 수많은 사람들을 개종시켰던 비시디아 안디옥이고 또 하나는 오늘 본문의 배경이 되는 수리아 안디옥입니다. 오늘 본문의 배경이 되는 수리아 안디옥은 상당히 중요한 도시입니다. 예로부터 이 도시는 너무나 아름다운 도시였기에‘동방의 면류관’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실상은 완연히 다른 부정적인 부분에 많이 노출되어 있었습니다. 수리아 안디옥은 당시의 세계 교역의 중심지였습니다. 이 지방의 사람들은 활발한 교역으로 인해 부를 축적했습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그 부는 수리아 안디옥 사람들을 아름다운 길로 인도하지 못하고 도리어 타락하고 일탈하는 데에 일조하는 불행한 도구로 사용되었습니다. 동시에 이 지방은 또 다른 부분에서 영적으로 빈곤했습니다. 이 도시는 헬라철학의 중심지였고 동, 서양이 만나는 문화의 도시였습니다. 이런 문화적인 혜택을 받고 있었던 터라 이교 문화의 중심지가 되었고 이방 종교의 대표적 우상의 본거지이었던 아폴로 신전에는 수많은 창녀들이 사람들을 유혹하는 타락의 도시가 되었습니다. 사회적으로는 정든 고국에서 쫓겨나 갈 곳 없던 이방의 유랑자들과 피난민들이 굴을 파서 살던 부익부 빈익빈이 농후했던 그런 도시였습니다. 이렇게 영적으로 많은 위기에 노출되어 있는 도시가 수리아 안디옥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영적으로 궁핍했던 그 도시에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세워진 정도로 마무리된 것이 아니라 그 교회 공동체에 있었던 사람들에게 아주 의미 있는 명칭이 부여되었다는 점입니다. 그것은 우리들이 이미 익숙하게 알고 있는‘그리스도인’이라는 명칭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단어가 있습니다. ‘비로소’라고 번역된 헬라어 단어‘프로토스’는 ‘최초로’의 의미를 갖고 있는 단어입니다. 이 단어가 주목되는 이유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배경은 본문 19절에 의하면 예루살렘에서 있었던 스데반 순교로 일컬어지는 대 박해 이후에 디아스포라 크리스천들이 베니게, 구브로, 안디옥에 이르기까지 퍼져 강력한 성령의 인도함을 따라 복음을 전하고 있었을 때였습니다. 그렇다면 추측하기를 안디옥 이외의 여타 다른 이방 지역에도 크리스천들이 존재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예루살렘 교회에는 사도들이 있었는데 이상한 점은 ‘왜 의사인 누가는 그렇게 많은 크리스천들이 이미 상존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수리아 안디옥에 있는 주의 백성들에게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는 칭호를 얻게 되었음을 보고하고 있는 것일까?’입니다. 누가가 이렇게 안디옥에 있는 주의 백성들에게 집착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오늘 본문은 이 이유에 대한 상당히 많은 자료와 정보를 줍니다. ① 주 예수만을 전하는 복음의 본질이 살아 있는 교회였기 때문입니다.“그 중에 구브로와 구레네 몇 사람이 안디옥에 이르러 헬라인에게도 말하여 주 예수를 전파하니”(20절). ② 안디옥에 있었던 주의 백성들을 향하여 주의 손이 그들을 붙들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시매”(21절 전반절). ③ 부흥하는 교회였기 때문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믿고 주께 돌아오더라”(21절 후반절). ④ 안디옥 공동체에 있었던 주의 백성들에게 주의 은혜가 머물러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가 이르러 하나님의 은혜를 보고 기뻐하여 모든 사람에게 굳건한 마음으로 주와 함께 머물러 있으라 권하니”(23절). 이상의 본문을 통해 누가가 왜 안디옥 공동체에 있었던 주의 백성들을 향하여‘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는 수식어가 붙었는지에 대하여 선포합니다. * 잠재적 그리스도인에게 집중하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본문 25-26절 전반절을 보면, “바나바가 사울을 찾으러 다소에 가서 만나매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둘이 교회에 일 년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고” 이 구절을 부연하여 설명하면 바나바는 원래 안디옥 공동체와는 관련이 없는 예루살렘 교회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전 재산을 팔아 예루살렘에 있는 그리스도 공동체에 헌물을 할 정도로 예루살렘 교회 공동체에 있어서 없어서는 안 될 중요 인물이었습니다. 이렇게 중요한 인물이었던 바나바가 예루살렘 교회 당국의 명을 받고 수리아에 일어나고 있는 예수 공동체의 놀라운 일들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돌아오라는 사신으로 파송되기에 이릅니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 예루살렘으로부터 파급되어 나간 많은 선교사의 위치에 있었던 자들이 이방 선교의 사역 중에 적지 않은 혼란과 이단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었습니다. 이런 이유로 실제로 니골라와 같은 자는 이단으로 돌아서는 일들이 있었기에 지금 안디옥 지방에서 나타나고 있는 부흥의 불길이 예루살렘 교회 공동체에서 제정한 사도적 규범들에 어긋나지 않는가에 대하여 민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런 이유로 예루살렘 당국은 바나바라는 신뢰할 만한 인물을 안디옥에 급파하게 된 것입니다. 예루살렘에서는 염려 반 근심 반으로 파송한 바나바에게 아주 긍정적인 보고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안디옥에 있는 형제와 자매들이 하나님의 은혜에 붙들려 있다는 보고였습니다. 이 보고만으로도 예루살렘 사도들에게 기쁨을 주기에 충분했는데 본문 24절을 보니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라 이에 큰 무리가 주께 더하여지더라” 바나바로 인하여 수리아 안디옥 신앙공동체는 더욱 부흥의 불길이 타오르게 된 것입니다. 바나바는 여기에서 머물러 있지 않고 더욱 한 가지에 일에 집중합니다. 1) 잠재적 그리스도인을 보는 은사가 있었습니다. 본문 25절을 보면 “바나바가 사울을 찾으러 다소에 가서”라는 이 말씀은 중요한 메시지를 던져 주는 말씀입니다. 사울이었던 바울은 사도행전 9장에 보면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를 만나는 회심을 경험을 했음을 보고하고 있습니다. 그는 원래 예수 핍박주의자였기에 그가 회심했다고 해도 아무도 그를 가까이 하려고 하거나 인정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바울의 전력이 당시에 너무나 무서운 전력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바나바는 자신이 머물고 있었던 안디옥에서 사울의 고향인 다소까지는 승용차로 가도 4시간 정도가 걸리는 먼 길을 걸어서 갔습니다. 바나바가 그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사울을 찾아간 이유는 단 한 가지로 사울을 하나님 나라와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사역을 위해 주님이 준비하신 잠재적 그리스도인으로 보았기 때문입니다. 바나바의 혜안은 놀랍습니다. 당시 회심을 했어도 아무도 인정해 주지 않은 사울에 대하여 바나바가 흔들림 없이 신뢰를 보내면서 그에게 집중했다는 점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재 강조하지만 바나바는 사울을 주님의 이방 사역을 같이 할 잠재적 그리스도인으로 보았고, 동역자로 보았기에 그 동역자를 얻기 위해서 그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달려간 것입니다. 당시 바울의 name value는 형편이 없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도 바나바는 바울을 데리려 그 먼 곳을 간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사람의 영적인 혜안이요 집중력입니다. 결국 바나바의 그 고생은 빛을 보게 되었고 사울은 초대교회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이방의 사도인 바울로 탄생되는 것을 우리는 이어지는 사도행전을 통해서 볼 수 있습니다. 우리교회가 서부동에서 제 2기 사역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이곳에 우리 교회를 만드신 목적이 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것은 이 땅에 산재해 있는 잠재적 그리스도인들을 깨우는 일입니다. 그들을 데리러 가는 일입니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실현시키기 위해 함께 일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교회를 여기에 세우신 목적입니다. 우리 세인 교회를 통해 하나님은 이 일을 하고 싶어 하십니다. 이제 우리는 잠재적 그리스도인들에게 집중하여 그들이 머물고 있는 잠자고 있는 제천의 다소를 향해 나아갑시다. 2) 잠재적 그리스도인들을 양육시켰습니다. 본문 26절을 보면 “만나매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둘이 교회에 일 년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고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던 사울을 데리러 그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찾아가 그를 설득하여 안디옥으로 데리고 오는 데 바나바는 성공했습니다. 그런데 그 사역 이후에 벌어진 일을 누가는 분명하게 ‘그 두 명은 안디옥에서 1년 동안 함께 했다’고 기록했습니다. 바나바는 바울과 함께 안디옥에서 1년 동안 동거했습니다. 그들이 동거하면서 한 일은 서로에게 도전을 주며 쌍방간 양육의 교제를 했음은 재론의 여지가 없습니다. 당시에 지도적인 위치에 있었던 바나바는 바울을 향하신 하나님의 계획을 인정하고 그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자로서 견지해야 할 제반의 내용들을 전하며 양육했습니다. 주의 철저한 로드십을 인정하도록 양육했을 것이라는 말입니다. 반대로 바울은 바나바에게 본인이 가지고 있었던 지식을 근거로 유대 율법적인 종교의 기초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역을 어떻게 하면 이방 형제들에게 효과적으로 전할 것인가에 대하여 충고하면서 서로를 격려하며 양육으로 교제했을 것입니다. 그렇게 그들은 무려 1년간을 안디옥에서 함께 합니다. 독일 뮌스터 대학의 에른스트 헨첸 교수가 자신의 사도행전 주석에서 당시 선교 역사를 볼 때 바나바와 바울이 함께 한 1년은 상당히 긴 기간이라고 역설하고 있는 것을 볼 때 그들이 안디옥에서의 동거한 1년 동안의 양육의 교감이 얼마나 큰 것이었는지를 가늠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1년 동안의 영적인 교제 뒤에 일어난 일을 본문 26절 중반절에서 ‘큰 무리를 가르쳤다’라고 분명히 증언합니다. 안디옥 신앙공동체에서 1년간 머물러 있었던 두 사람은 양육의 교제로 얻은 노하우들을 총동원하여 본인들이 섬기고 있는 안디옥 신앙공동체의 또 다른 지체들을 양육해 나갔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사람들로 양육되어 갔던 수리아 안디옥 그리스도 공동체는 그 결과 엄청난 결과를 얻게 되었습니다. 26절 후반절을 보면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 우리들이 입에 발린 말로 되뇌는 그런 상투적인 말이 아니라 진정으로 기억해야 하는 경구가 있습니다. “제자는 탄생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 우리 세인교회는 바나바와 바울이 그랬던 것처럼 하나님 나라의 가치로 무장하고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진정한 그리스도인들로 만들어지는 진정한 공동체로 양육되기를 되기를 소망합니다. 이 사역은 중단 없이 서부동 제 2기 우리 세인의 사역이 되어야 합니다. 그 결과 우리 모든 세인지체들에게‘비로소’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는 일컬음으로 제천 열방의 사람들에게 불리는 신실한 크리스티아누스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이제 서부동 시대의 개막을 통해 ‘하나남 앞에서’라는 이 말에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아가는 지체들이 될 수 있다면 우리는‘비로소’세인 크리스티아누스로 서게 될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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