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낮예배

제목역사 바로보기2024-02-27 10:59
작성자 Level 10

6월 30일 주일 낮 설교

 

본문역대하 10:16-19

제목역사 바로보기

 

서론)

 

누가복음 19장에 보면 우리들이 너무 잘 아는 세리장 삭개오의 기사가 아주 세밀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누가복음 19:2절을 읽겠습니다.

삭개오라 이름 하는 자가 있으니 세리장이요 또한 부자라

누가는 이 기사를 소개하면서 삭개오의 직책을 알키텔로네스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헬라어 알키텔로네스는 세금을 거두는 직업의 을 말하는 단어입니다.

뿐만 아니라 누가는 이 직업을 가진 삭개오가 어떻게 주님을 만나 변화되었는가와 그 결과는 또 어떤 것으로 나타났는지를 소상히 밝히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한 가지 질문이 필요합니다.

세리의 변화와 관련하자면 더욱 팔을 걷고 나서야 하는 당사자가 있습니다.

누구입니까?

같은 동 직업을 갖고 있었던 세리 마태입니다.

그런데 마태복음 1-28장에 걸쳐 삭개오의 흔적은 보이지를 않습니다.

더 적극적으로 삭개오를 두둔해야 할 마태는 기록 자체를 아예 마태복음서에서 빼버렸습니다.

학자들에 의하면 마태복음의 저작 연도를 누가복음보다 앞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구전으로 전해 오거나 아니면 제일 먼저 기록된 마가복음에서 누락되어 있었던 삭개오의 기사가 누가에 의해 복원되었다는 것을 감안할 때전 복음서 기자들 중에 한 명이었던 마태는 이미 알고 있었던 삭개오 기사를 더 적극적으로 마태복음서 안에 삽입했어야 했습니다.

허나 마태복음 어느 장에도 삭개오의 기사는 등장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어떤 해석이 가능할까?

고의적인 누락입니다.

이렇게 했을 가능성이 다분해 보입니다.

이런 추측이 가능합니다.

적어도 마태라는 복음서 기자는 자신과 같은 직업군의 장이었던 삭개오의 흔적들을 아예 거론조차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는 판단을 내린 것입니다.

?

삭개오의 이전의 삶에 대한 수치스러움 때문에.

마태 본인의 수치도 후대에 기록하는 것이 만만치 않았는데 그의 직업의 長 格인 삭개오를 들쳐 내는 것에 대한 부담이 마태에게는 다분히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해서 본인 스스로가 역사적 사실의 기록자로서 부담감을 과감하게 제거해 버린 것입니다.

그러나 지성적인 제자군(弟子群)에 속해 있었던 의사 누가는 도리어 마가와 마태에 의해 의도적으로 배제시켜 버린 것으로 여겨졌던 삭개오 기사의 역사적 사실을 다시 무대의 정 중앙에 올림으로서 후대의 평가를 받기를 기대했다는 말입니다.

이렇게 역사는 역사가의 기록 방법에 따라 좌지우지 되는 것입니다.

유시민 작가가 쓴 역사의 역사를 작년에 정독했습니다.

읽으면서 참 많은 것을 공부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역사를 정의했습니다.

역사는 역사가의 목적과 사실사실에 대한 해석과 역사가의 상상력이 서로 영향을 주는 복합적인 피드백의 산물이다.”(p,48)

이렇게 역사라는 것은 역사가의 상상력과는 뗄 레야 뗄 수 없는 상관관계 속에서 기록되는 산물이라는 분명한 사실에 저는 동의합니다.

삭개오 기사는 바로 이런 상관관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지난 3주 동안 구약 톺아보기라는 정말로 귀한 은혜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제 담임목사가 마무리를 해야 하는 장()에 섰습니다.

차 교수의 말 대로 저는 구약학자가 아닙니다.

그래서 수준 높은 전문성을 갖고 교수들처럼 여러분에게 역사서를 해석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역사서에 대하여 마무리하는 순서를 맡으면서 그 동안 구약 톺아보기에 걸 맞는 나름의 공부에 경주해 왔습니다.

이번에 역사서를 교우들과 함께 나누기 위해 약 10권 정도의 역사서 관련 서적들을 톺아보는 기회를 가졌습니다.

그러다가 공부의 결과물로 눈에 들어온 것이 있었습니다.

북 왕국 이스라엘의 역사 해석이 상당 부분 왜곡되어 있다는 공부였습니다.

앞에서 언급한 대로 역사가들 중에 주류에 속해 있었던 남 유다 중심의 해석자들에 의해 상당수 왜곡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주류 역사가들은 신명기역사가를 비롯하여 역대기 역사가들을 의미합니다.

이들이 강조했고 압박했던 이스라엘 역사에 대하여 조금은 올바른 해석이 필요할 것 같아 담임목사의 역사서 톺아보기는 바로 여기에 초점을 두고 진행하려고 합니다.

 

본론)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북 왕국 이스라엘의 역사는 흑 역사입니다.

태생적으로 탄생하면 안 되는 나라결국은 하나님의 선한 뜻을 버리고 바알을 섬김으로 인해 멸망의 비극을 당했고 더 한심한 것은 그 민족은 앗수르에 혼합되어 사마리아라는 혼혈 잡종으로 변질된 패악한 무리들로 인식되어 있는 나라가 북 왕국 이스라엘입니다.

그러나 정말로 그럴까?

오후 강좌 시간에는 북 왕국 이스라엘에 대한 역사가들의 기록 관점을 소상히 살펴보고 오늘 주일 낮 예배 본문으로 그 동안 알고 세뇌되어 있었던 북 왕국의 태동에 관련한 역사 거꾸로 보기에 대하여 나누면서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제시해 보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 이해는 대단히 세밀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것처럼 솔로몬이 죽고 난 이후 다윗의 통일 왕국은 걷잡을 수 없는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됩니다.

역대하 9:31절을 보면 아주 간단하게 역대기 사가는 솔로몬이 죽은 이후에 그의 아들 르호보암이 대신하여 왕이 되었다고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역사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솔로몬이 죽고 난 뒤에 이스라엘은 격랑에 휘말립니다.

솔로몬 생전에 그의 정적이었던 북쪽 에브라임 스레다 출신의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이 솔로몬에게 반란을 일으켰다가 실패합니다.

이로 인해 여로보암은 이집트로 정치적 망명을 떠나 피신해 있다가 솔로몬이 죽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다시 이스라엘로 돌아와 정치적인 재기를 꿈꾸게 됩니다.

왜냐하면 열왕기상 11:27절 이하를 보면 선지자 아히야가 여로보암에게 하나님의 계획을 전해 주는 기사가 실려 있는데 솔로몬의 나라를 쪼개서 10지파를 여로보암에게 주어 한 나라를 이루게 하겠다는 신탁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신탁을 마음에 품은 여로보암은 때를 기다리다가 솔로몬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다시 이스라엘로 돌아온 것입니다.

사람을 들어서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시겠다는 성경적인 스토리는 이렇게 진행되지만 사실은 여로보암이 북 왕국을 세울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더 근본적인 이유가 뿌리 깊게 남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유다 지파 출신이었던 다윗은 그가 왕으로 등극할 때 끝까지 북쪽의 견제를 받아 왕이 되는 우여곡절을 겪었습니다.

그러기에 다윗은 실로 북쪽 지파에 대한 앙금이 있었고항상 북쪽은 다윗 치세로부터 그의 아들 솔로몬 왕에 이를 때까지 견제의 땅이었고불온의 땅이었습니다.

이뿐이 아니었습니다.

우리들이 잘 알고 있는 압살롬의 반란과 세바의 반란 때 진압과정에서 북쪽 지역에 살고 있었던 사람들이 애매한 피를 많이 흘렸고항상 불온한 지역으로 평가되던 북쪽은 솔로몬이 통치할 때 지역 분할을 12개의 행정구역으로 세분화시켰는데 남쪽에 있었던 유다 지파는 배제하고 10개로 분할된 북쪽에게만 세금을 부과하는 편파행정과 통치를 자행했던 어찌 보면 대단히 불행했던 땅입니다.

그러기에 솔로몬 사후잃어버렸던 권리 그리고 되찾아야 하는 권력을 회복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맞이한 북쪽 지파 공동체는 이 판에 판을 갈겠다는 의지가 강력했습니다.

마침 솔로몬이 아들인 르호보암은 북쪽 지파의 세겜으로 이동을 해서 북쪽 지역에 있는 호족들에게 왕으로서의 인준을 받아내기 위한 절차에 들어갑니다.

르호보암이 기대했던 것은 전적인 충성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기회를 포착한 북쪽의 10지파는 조건부 충성을 내 겁니다.

역대하 10:4절입니다.

왕의 아버지께서 우리의 멍에를 무겁게 하였으나 왕은 이제 왕의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시킨 고역과 메운 무거운 멍에를 가볍게 하소서 그리하시면 우리가 왕을 섬기겠나이다

이 요청의 무리에는 여로보암도 포함되어 있었음을 역대기 역사가는 역대하 10:3절에서 언급합니다.

문제는 우리들이 잘 아는 것처럼 르호보암이 이 요청을 거절했다는 점입니다.

이로 인해 역사가는 북쪽의 여로보암이 반역을 일으켜 나라를 분열시켰음을 은연중에 고발합니다.

오늘 본문인 역대하 10:16-19절을 읽어보겠습니다.

온 이스라엘은 왕이 자기들의 말을 듣지 아니함을 보고 왕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가 다윗과 무슨 관계가 있느냐 이새의 아들에게서 받을 유산이 없도다 이스라엘아 각각 너희의 장막으로 돌아가라 다윗이여 이제 너는 네 집이나 돌보라 하고 온 이스라엘이 그들의 장막으로 돌아가니라 그러나 유다 성읍들에 사는 이스라엘 자손들에게는 르호보암이 그들의 왕이 되었더라 르호보암 왕이 역꾼의 감독 하도람을 보냈더니 이스라엘 자손이 저를 돌로 쳐 죽인지라 르호보암 왕이 급히 수레에 올라 예루살렘으로 도망하였더라 이에 이스라엘이 다윗의 집을 배반하여 오늘날까지 이르니라

설교자인 제가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19절 본문입니다.

배반하여라고 번역된 히브리어 파솨는 반역하다.’는 의미가 강한 단어입니다.

역사가는 이스라엘이 다윗의 집을 배반하였다고 말합니다.

전형적인 이긴 역사가의 입장이나 주류 역사가의 입장입니다.

왜 이 역대기 역사가가 이렇게 역사를 바로 보지 못했을까에 대한 답은 오후 강좌를 통해 살피겠습니다.

다만 낮 예배를 통해 바로잡으려고 하는 것은 북 왕국 이스라엘에 대한 바른 해석입니다.

 

※ 북 왕국은 믿음에 대한 역동이 있었던 하나님의 공동체였습니다.

 

다시 강조하거니와 북 왕국 이스라엘에 대한 기존의 해석은 승자 쪽에서 본 해석이라는 성향이 강합니다.

이 말은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북 왕국에 대한 역사 인식이 상당히 많이 왜곡되었다는 것을 전제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텍스트로 삼은 구절도 사실은 재조명해야 하는 대표적인 본문입니다.

여로보암의 반역은 역사적인 왜곡의 실례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전술했듯이 제일 먼저는 여로보암에게 10지파를 쪼개어 나라를 만들겠다고 계획하셨던 분이 여호와 하나님이셨다는 점입니다.

이런 신탁을 받은 여로보암은 그래도 르호보암 정권에 기회를 주었습니다.

아버지처럼 편파적인 남 유다 정책을 포기하고 북 이스라엘에게도 선정을 베풀어달라는 요청을 말입니다.

그러나 이런 진정성이 있는 여로보암과 북쪽의 요청은 일언지하에 거절당하고 묵살되었습니다.

이런 강압적인 압박 하에서 북쪽 이스라엘은 자구책을 강구한 끝에 나라를 독립하기로 결의한 것입니다.

이런 우여곡절을 겪은 이스라엘에 대하여 친 남 유다적인 역사가들은 이스라엘은 우상을 섬긴 나라하나님이 버린 나라 등등으로 왜곡하기에 혈안이 되어 역사를 왜곡했습니다.

정말로 북 이스라엘이 그렇게 패역했을까?

두 가지의 예를 들어 반론을 제기해 보겠습니다.

 

⓵ 북 왕국은 출애굽을 이루신 하나님의 정의에 더 가까이 있던 믿음의 공동체였습니다.

 

여로보암은 르호보암에게 폭력적인 정책을 가하지 말라고 종용했습니다.

북쪽에 집중되어 있었던 강제적인 세금 집행을 하지 말라는 요청이었습니다.

멍에를 풀어달라는 요청이었습니다.

다시 역대하 10:4절을 읽습니다.

왕의 아버지께서 우리의 멍에를 무겁게 하였으나 왕은 이제 왕의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시킨 고역과 메운 무거운 멍에를 가볍게 하소서 그리하시면 우리가 왕을 섬기겠나이다

이 요청은 출애굽 정신의 회복을 요청한 것입니다우리들이 선조들은 노예에서 건지셨던 하나님의 그 원형 정신을 다시 회복해 달라는 간곡한 민중들의 노래와도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돌아온 것은 그 요청과는 정반대되는 심한 강압정책의 선언이었습니다.

역대하 10:14절입니다.

젊은 신하들의 가르침을 따라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 아버지는 너희의 멍에를 무겁게 하였으나 나는 더 무겁게 할지라 내 아버지는 가죽 채찍으로 너희를 치셨으나 나는 전갈 채찍으로 치리라 하니라

반 출애굽적인 정책은 북쪽이 아니라 남쪽 유다의 민낯이었습니다.

 

⓶ 인본적인 왕정정치를 하나님의 카리스마적인 신정정치로 회귀하려는 시도였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고대 이스라엘의 왕 임명은 사울과 다윗을 임명한 하나님의 임명이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개입하심이 전적으로 기초가 되는 임명이었습니다.

그러나 르호보암의 왕권은 철저한 세습에 의한 인본적인 결과물이었습니다.

신정정치의 다스림이 있었던 나라에서 왕조적-제도적 인본정치로 변질된 나라가 유다였습니다.

여로보암은 르호보암에 대항하여 일어나 북쪽 공동체에 의해 인준을 받고 왕이 되었습니다.

주목할 만한 성경 요절을 하나 소개하겠습니다.

역대하 11:1-3절입니다.

르호보암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유다와 베냐민 족속을 모으니 택한 용사가 십팔만 명이라 이스라엘과 싸워 나라를 회복하여 르호보암에게 돌리려 하더니 여호와의 말씀이 하나님의 사람 스마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솔로몬의 아들 유다 왕 르호보암과 유다와 베냐민에 속한 모든 이스라엘 무리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무슨 말씀입니까?

졸지에 반역을 당한 것이 된 르호보암이 아직은 군대가 잘 정비되지 않은 북쪽의 여로보암 추종자들을 진압하고 다시 왕권을 북쪽까지 확장하려고 전쟁을 일으키려고 하자하나님께서 예언자 스마야에게 신탁을 주시기를 전쟁을 일으키지 말라고 르호보암에게 지시하라는 명령이었습니다.

왜요?

역대하 11:4절이 그 답을 알려줍니다.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올라가지 말라 너희 형제와 싸우지 말고 각기 집으로 돌아가라 이 일이 내게로 말미암아 난 것이라 하셨다 하라 하신지라 그들이 여호와의 말씀을 듣고 돌아가고 여로보암을 치러 가던 길에서 되돌아왔더라

그렇습니다.

일련의 모든 일들이 하나님의 계획이요 작품이었기 때문입니다.

무엇을 알 수 있습니까?

북 왕국 이스라엘의 탄생은 대단히 든든한 성경적인 기초를 갖고 있는 하나님의 시나리오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적어도 북 왕국 이스라엘의 탄생은 남 유다보다 더 적법한 상태에서 하나님이 인준하신 사건이라는 결론에 도달합니다.

목원대학교 신학과 교수인 이희학 교수는 그래서 이렇게 주장했는데 설교자인 저는 제 이성에 각인시켜 놓았습니다.

북 왕국 이스라엘은 남 유다에 비해 일찍 멸망을 당하였지만 야웨 종교의 전통을 훨씬 더 풍부하게 소유하고 있었고훨씬 더 역동적인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한 공동체였다.”(이희학, “북 이스라엘의 역사와 종교”,p,7)

이제 저는 북 왕국 이스라엘의 역사 바로 세우기를 통해 오늘 우리들이 건져 올려야 할 은혜 나누기를 원합니다.

 

※ 신학적성서적 바름을 이루기 위해 질문하는 신앙을 견지하는 교우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질문하지 않는 신앙에서는 역사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바름이 무엇인지를 고민하지 않는 공동체는 사장되고 맙니다.

성경적인 진리와 올바른 신학적인 십자가의 도를 위해 역동적으로 움직이지 않는 교회는 얼마 후면 박제된 교회가 됩니다.

구약 톺아보기를 왜 진행했습니까?

내가 알고 있는 것이 바른가를 체크하기 위해서입니다.

왜 하나님께 끊임없이 질문해야 합니까?

그 질문의 역동 앞에 있는 성도가 건강해 지기 때문입니다.

이긴 자의 역사를 그대로 믿는 것은 내 스스로 발전하지 않겠다는 결의와 같습니다.

지난 주간 기도원에 올랐다가 DFC 대학생 제자 선교회 수련회에 참석한 젊은이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수양관 곳곳에 설치되어 있는 상담 박스에서 본인의 신앙적 고민을 토로하는 학생들의 이야기를 우연히 듣게 되었습니다.

몇 몇 학생들의 질문 내용은 이런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어떤 기대를 하시는지 구체적으로 궁금한데 어떻게 해야 알 수 있죠?”

하나님은 정말로 날 사랑하고 있기는 하신 건가요?”

하나님의 음성이 왜 나에게는 들리지 않죠?”

왜 남자 친구는 꼭 믿는 사람이어야 하죠?”

뭐 이런 내용들이었습니다.

그런데 한 학생이 질문한 내용이 크게 와 닿았습니다.

제자인 저를 어떻게 만들어 가실 지를 생각하면 너무 행복합니다그 기대감이 저를 행복하게 합니다그래서 하나님께 지금 그 위대하게 행하실 일을 묻고 있습니다.”

하나님과 지금 중요한 것을 묻고 나누고 계십니까?

지난 톺아보기 사역을 준비한 한 지체는 강사들의 다른 현장에서의 내용들을 방문하면서 그 내용들을 곱씹기 위해 노력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가 그 결과 반응한 것은 이런 것이지 않나 싶습니다.

하나님의 진리에 대한 집요한 천착함.

이것이 없는 자는 그냥 그렇게 교회 생활을 할 수 있겠지만 치열한 하나님의 은혜는 기대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에 대한 진리를 알고자 하는 집요한 천착함을 요구하는 지체는 바른 은혜와 정확한 신학적 지혜와 지식을 하나님으로부터 공급받게 될 것입니다.

 

결론)

 

이제 저는 설교를 맺으려고 합니다,

페이스 북에 몇 주 전목양터 이야기 마당에 올려놓은 이라는 제하의 글을 링크하였습니다.

다시 복기하겠습니다.

오늘부터 세인교회 창립 10주년 기념 구약 특별 강좌 사역이 진행됩니다중보 해 온 대로 하나님께서 세인교회를 사랑하셔서 전무했던 성령이 기름 부으시는 지성적 은혜를 주실 줄로 기대합니다이 사역은 금년 목회 사역을 준비하기 위해 지난 해 연말 기도원에 입소하여 계획을 짤 때 기도하며 도안해 낸 사역입니다원래 계획은 네 분의 강사를 모셔서 모세오경을 시작으로 역사서지혜서예언서 톺아보기를 감당하려던 틀이었습니다강사를 섭외하는 과정에서 후배 교수 한 명의 스케줄이 맞지 않아 난처했는데 또 다른 학자를 섭외한다는 것이 그리 녹록한 일이 아니어서 결국은 담임목사가 역사서를 맡아보기로 하는 용기(?)를 냈습니다.
앞서 섭외된 교수님들의 역량은 못 따라잡겠지만 그럼에도 세 분이 던져주고 갈 성령이 기름 부으신 지성적 신학적 성찰에 누()가 되지 않는 마무리를 해야 한다는 강박증으로 제 스스로 긴장하고 평상시에 그리 많이 읽지 못했던 역사서 관련 서적들을 거의 두 달 정도 손에서 떼지 않고 공부했고 또 하고 있습니다그 결과 첫 번째 덤이 수북하게 쌓인 단면이 있어 행복하기 그지없습니다.
그 중에 하나는 역사의 승자 측에 속해 있는 신명기 사가와 역대기 사가들이 대체적으로 증언하고 기록한 북 왕국 이스라엘 역사에 대한 편협한 해석을 반대로 접근하는 공부를 한 것입니다통상적이지 않은 이 접근과 공부는 저에게 예기치 않은 쏠쏠한 유익을 주었습니다그것은 북 왕국 이스라엘의 역사 거꾸로 보기를 통해 얻게 된 신선한 충격이라는 덤입니다.
작년 연말유시민의 역사위의 역사’(돌베개 간, 2018)를 읽다가 특히 그가 소개한 레오폴트폰 랑케의 역사와 신학의 해석에 대한 성찰 부분에서 있었던 그대로’(wie es eigentlich gewesen)의 역사 전개에 주목했던 기억이 있었습니다.(p,136) 물론 유 작가는 있었던 그대로의 역사에 대하여 대단히 비판적(무지와 정치적 유용성)으로 랑케를 평가했지만내심 그런 역사적 진실을 가려내는 것과 그 작업을 해내는 것이 지성인들의 몫이라고 생각했기에 있었던 그대로의 역사에 대한 이해를 위한 노력과 공부에 대해 초점을 흐리지 말자는 나름의 오기를 갖고 독서를 끝냈던 추억이 있습니다.
북 왕국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진짜로 버리신 왕국인가민초들을 압제하지 말고 공의와 정의롭게 정치를 해 달라고 르호보암에게 부탁하던 여로보암의 추종자들은 다윗의 계약을 짓밟은 이단아들인가조금만 더오므리 왕가에 대한 해석에 있어서 그 집단은 반드시 멸망을 받을 만한 탄생해서는 안 될 태생적 약점을 갖고 있었던 패역의 무리 그 이상의 해석은 불가능한 것일까예후 정권의 쿠데타가 선하신 하나님의 일하심이라는 해석에서 조금도 뒤로 물러서지 않는데 혹시 그 해석은 승자 독식구조의 철저한 공식을 따르고 있는 신명기 사가들의 편들기로 보면 안 되는 것일까공부하다가 불온(?)하게 갖게 된 질문들이지만 나에게는 분명히 그 동안에 뇌에 저장되어 있었던 구약의 주류적인 해석(신명기적인 역사 해석 그리고 역대기적인 해석)을 뒤집어 봄으로 인해 임한 지적인 덤임에 틀림이 없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몇 년 전 언젠가 한 번은 리베카 솔닛케네스 베일리 때문에작년에 또 언젠가 한 번은 강남순 때문에 그리고 금년 또 언젠가 한 번은 신형철과 박일준 때문에 상투성과 싸워야 똑바로 다시 볼 수 있다는 전율함의 도전을 받아 감사했는데그러고 보니 제게 주어진 이번 구약 톺아보기 사역은 성도들을 위한 사역은 물론 이강덕이라는 허접한 목사를 불쌍히 여기셔서 더 공부하라고 다그치시는 하나님의 만지심이라는 또 다른 덤임을 알게 되어 그 덤을 받게 하셨고 또 받게 하실 것 같아 흥분됩니다.
오시는 강사님들에게 하나님께서 전무했던 은혜로 기름 부어주시기를 중보하고 창립 10주년을 맞아 드려지는 세인 공동체의 구약 톺아보기 사역이 한국교회를 거들 떠 보지도 않게 하는 작금의 기가 막힌 시대에 막말 공세로 인해 대 사회적 먹구름을 더 짙게 드리운 몇 몇 참담한 일들을 걷어 내고 엘리야가 엎드린 갈멜산 사역처럼 주존심(主尊心)을 회복하는 희망을 노래하는 수문(water-gate) 앞 광장 사역이 되기를 소망해 봅니다.

이 글을 올리자 예언서 톺아보기 강사였던 차준희 교수가 이렇게 비판적으로 댓글을 올렸습니다.

신명기사가와 역대기사가의 의도를 비판하지 말고이들의 의도에 대한 신학자들의 편협하거나 미진하거나 편파적인 해석을 비판적으로 읽는 것이 정도가 아닐까바울의 메시지를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바울 메시지에 대한 해석들을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친구

 

친구의 고언을 진정성이 있게 받았지만 저는 차 교수의 비판에 대하여 수용할 뜻이 없습니다.

구체적인 이유는 오후 강좌를 통해 다시 공부하겠지만 북 왕국 이스라엘에 대한 평가는 이긴 자의 평가요 다분히 유대 종교적 편협함으로 해석된 역사 보기이기 때문입니다.

역사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인식은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절대로 예외일 수 없습니다.

우리가 맹목적으로 따라온 잘못된 해석에 대해 질문해야 합니다.

마치 삼박자 축복이 얼마나 반신학적인 내용인지를 후대의 지성적 그리스도인들이 질문하여 밝혀낸 것처럼.

 

 

한없이 크신 주의 사랑을

 

한없이 크신 주의 사랑을 어디에 다 비하랴

이 세상의 어떤 것보다도 비할 수가 없구나

우리의 기도 응답하시는 참 좋으신 하나님

엎드려 소원 간구 하오니 은혜 내려 주소서

절망할 때는 소망주시고 나의 앞길 인도하니

푸른 물가로 인도하시는 선한목자이셔라

나의 사랑 나의 소망되신 예수님

내가 영원히 사랑하리라

나의 생명 나의 반석이신 하나님

내가 영원히 영원히 사랑하리라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