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16일(목요일) 묵상 Attaining Divinity 오늘의 성서일과 시편 2편, 출애굽기 6:2-9, 히브리서 8:1-7 꽃물 (말씀 새기기) 시편 2:4,12 하늘에 계신 이가 웃으심이여 주께서 그들을 비웃으시리로다 (2) 그의 아들에게 입 맞추라 그렇지 아니하면 진노하심으로 너희가 길에서 망하리니 그의 진노가 급하심이라 여호와께 피하는 모든 사람은 다 복이 있도다 (12) 마중물 (말씀 묵상) Attaining Divinity 유발 하라리가 말한 Homo-Deus 시대의 도전이 ‘신성을 인간이 갖는 것’이라고 갈파한 화두에 대해 종교철학자인 박일준이 해제한 단어가 바로 ‘Attaining Divinity’ 즉 ‘신성 획득하기’였다. 성찰해보면 탁월한 해제다. 그렇다. ‘CHAT GPT’의 열풍이 대단하다. 이제 AI의 진보가 어디까지 갈 것인가를 질문하는 것은 선택 사항이 아니라, 의무가 된 시대를 살아가는 아슬아슬함이 보인다. 아슬아슬함이라고 표현한 이유는 신성을 취득하게 된 인간이 갖고 있는 죗성 때문이다. 하나님이 없는 세상에는 모든 것이 허용된다는 소설의 글을 굳이 인용하지 않더라도 작금, 우리는 이미 모든 것이 허용된 랜덤의 비극들을 여기저기에서 목도하고 있기에 아슬아슬함을 체험하기에 충분하다. 제왕시의 대표 주자인 시편 2편은 다윗 왕조의 멸망이라는 충격적 사건을 현실로 경험한 이스라엘 신앙공동체가 대체할 메시아적인 왕의 등극을 확신하면 쓴 시다. 저자의 확신은 빈틈이 없어 보인다. 다윗 왕국이 무너질 수밖에 없었던 불완전성은 보이지 않는다. 도리어 이 땅에 존재하는 이방 나라들의 ‘신성 획득’과 같은 무모함에 대해 단발마적인 표현으로 급소를 때린다. 표현은 영적 카타르시스를 느낄 정도의 카운터펀치다. 나는 한 단어에서 이것을 느낀다. ‘라아그’ (비웃다)와 ‘싸하크’(웃다)의 언어유희가 이것을 돋보일 정도의 카운터펀치를 먹인다. 인간이 신성을 획득하려는 시도에 대해 창조주는 비웃는다. 그리고 웃는다. 시인은 인간의 무모함을 단 한 방에 일소하면서 마지막을 이렇게 마감했다. “그의 아들에게 입 맞추라 그렇지 아니하면 진노하심으로 너희가 길에서 망하리니 그의 진노가 급하심이라 여호와께 피하는 모든 사람은 다 복이 있도다” 신 사사시대에 쌓고 있는 신 바벨탑이 아슬아슬하다. 하나님만이 주시는 ‘복(아쉬레)’을 발로 걷어차고 있는 형국이기에 그렇다. 그래서 그런지 어거스틴이 남긴 고백이 더 크게 다가오는 아침이다. “오, 하나님께서 당신을 향하여 있도록 우리를 지으셨기에 우리 마음은 당신 안에서 안식할 때까지 쉴 수 없습니다.” 두레박 (질문) 주님이 비웃는 일을 하고 있는가? 민감하게 성찰하자. 손 우물 (한 줄 기도) 하나님, 교만하지 않게 하시옵소서. 내가 얼마나 작은 자이고, 불완전한 자인지를 분명히 고백하게 하옵소서. 어떤 상황이 닥쳐도 우쭐대지 않게 하소서.
나비물 (말씀의 실천) 신성에 도전하고 있는 일체의 쓴 뿌리들을 집요하게 추적하고 찾아내자. 그리고 그것들을 버리도록 성령께 의탁하자. 나는 충분히 넘어질 수 있는 자다. 고집 부리지 말자.
하늘바라기 (중보기도) 친구가 육체적으로 소진해 있습니다. 보어아웃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그를 보듬어 주시고 본인의 힘이 아닌 주님의 은혜로 잘 극복하게 하옵소서. 친구의 어깨뼈에 발견된 낭종이 녹아지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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