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2일(목요일) 묵상 지금 여기 오늘의 성서일과 시편 112:1-9, 신명기 4:1-14, 요한일서 5:1-5 꽃물 (말씀 새기기) 요한일서 5:4 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마중물 (말씀 묵상) 샤를 드 푸코의 말대로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가장 어려운 것이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믿는 것’이라는 성찰이 크게 다가오는 아침이다. 요한 장로가 말한 ‘하나님께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긴다’는 토로는 아무에게나 주어진 권면이 아닌 게 분명하다.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믿는 자에게만 해당되는 일이기에 그렇다. 기실,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믿는다는 명제가 어찌 단순하겠나 싶다. 토마스 머튼의 실례를 인용한다면 로마 대성당에서 경험했던 ‘그리스도의 영광’, 쿠바 아바나의 성 프란체스코 성당에서 느꼈던 ‘하늘 체험’, 그리고 루이빌의 거리 모퉁이에서 오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보통 사람들 사이에서 경험했던 ‘성육신 하나님의 현현’ 등등의 다양한 내적 체험을 경험한 자만이 고백할 수 있는 신앙적 고백일 것이다. 나는 적어도 머튼의 체험 중에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다고 말하는 것에 동의한다. 하지만 굳이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믿는 가장 강력한 동기 부여를 뽑으라고 한다면 내 삶의 현장에서 목도하는 성육신 하신 하나님과 날마다 만나는 엔카운터라고 말하고 싶다. 그러기에 내 현장이 루이스 빌에서 머튼이 만났던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현장이기를 기대하고 사모한다. 나는 현장에서 주님과 만나는 ‘지금 여기에’서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는 믿음의 사람이 되고 싶다. 하비 콕스가 말한 대로 ‘종교적인 담론은 인간 실존의 결정적 차원을 가리키고 있는 현장에서 만들어진다’는 정론을 수용하기에 인간 실존의 현장이 언제나 ‘지금 여기’라는 것을 주목한다. 나는 목사로 살면서 유토피아적인 초현실적인 현장이 아닌 지금 내가 만나고 부대끼고 있는 삶의 정황 안에서 성육신 하신 하나님과 만날 때만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코스모스’를 뛰어넘는 이김의 삶을 구가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 그러므로 ‘지금 여기’는 하나님과 만나는 지성소다. 동시에 내 삶의 목표이기도 하다. 손 우물 (한 줄 기도) 하나님, 겉멋 든 종교인 되지 않게 하옵소서. 아베 피에르처럼 지금 여기에서 ‘홀로 족한 자’가 아닌 ‘공감하는 자’로 매일 주님과 만나게 하옵소서. 나비물 (말씀의 실천) ‘지금 여기’에서 하나님이 나에게 무엇을 말씀하고 있는지 민감하게 귀를 기울이는 하루를 만들자. 하늘바라기 (중보기도) 오늘도 환우들을 기억해 주시고, 저들의 현장에 머물러 주십시오. 저들의 고통을 안아 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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