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27일(금요일) 묵상 남겨두라 오늘의 성서일과 시편 15편, 신명기 24:17-25:4, 디모데전서 5:17-24 꽃물 (말씀 새기기) 신명기 24:19-21 네가 밭에서 곡식을 벨 때에 그 한 뭇을 밭에 잊어버렸거든 다시 가서 가져오지 말고 나그네와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남겨두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내리시리라 네가 네 감람나무를 떤 후에 그 가지를 다시 살피지 말고 그 남은 것은 객과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남겨두며 네가 네 포도원의 포도를 딴 후에 그 남은 것을 다시 따지 말고 객과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남겨두라 마중물 (말씀 묵상) 연이어 계속 나오는 단어 ‘남겨두라’에 가슴이 먹먹해 진다. 하나님의 명령은 객과 과부와 고아를 위하여 최소한의 먹을 것을 남겨두라는 마지노선을 그어 놓았다는 점이다. 왜였을까? 그게 하나님 나라의 참 모습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있지 아니하고 오직 의와 희락과 평강이라고 했다. 하지만 이 구절을 거꾸로 생각하면 하나님 나라는 먹는 것을 걱정하지 않는 나라다. 모두에게 공평한 나라이기 때문이다. 이 땅에 존재하는 나라가 부익부 빈익빈을 만들었다. 이 땅의 나라가 부자와 가난한 자를 편 갈라 놓았다. 이 땅의 나라가 내 편과 네 편으로 갈라치기 해 놓았다.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를 위한 몫을 남겨두라는 메시지는 박물관에 소장시켰다. 이틀 동안 JTBC에서 방영하는 ‘세 개의 전쟁’을 시청했다. 개인적으로 취침 시간이 오후 9시 전후이기에 내게는 이 프로그램을 보려면 내 시간을 포기해야 하는 부담감이 전제되기에 망설였지만, 용기를 냈다. 보면서 많은 생각이 스쳤다. 내가 살고 있는 땅, 바로 이 땅은 아비규환을 방불케 하는 지옥의 정글이다. 약자를 위한 남겨 둠은 존재하지 않는 비루함과 비정함의 땅이다. 조금의 물리적 힘을 갖추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게 만드는 무저갱이다. 그러기에 힘과 폭력의 갑각을 덧입으려고 한다. 더 참담한 내가 살고 있는 내 땅도 별반 다르지 않다는 점이다. 아니, 작금, 내 나라는 한 술 더 떠 무지, 편견, 힘의 논리를 통한 이에는 이, 눈에는 눈이라는 것 말고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땅이라는 점에 더 더욱 절망스럽다. 하나님 나라는 요원하다. 하나님의 정신은 없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상징적 대변인인 이반의 말대로 ‘모든 것이 허용되는 나라’다. 이런 나라에 ‘남겨두라’는 말은 ‘out of fashion’이다. 하지만 나는 ‘남겨두라’는 오늘 묵상의 메시지에 목이 멘다. 주님의 말씀이 너무 서글퍼져서. 두레박 (질문) 이 땅에 소망은 정말로 없는 것일까? 정녕 이 땅에서 ‘남겨두라’는 메시지는 갖지 말아야 하는 사치일까? 손 우물 (한 줄 기도) ‘인간은 인간에 대하여 늑대다.’(Homo Homini Lupus)라는 홉즈의 예고가 정확하게 맞아 떨어지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주여, 어찌해야 합니까?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갈 방법을 알려주십시오. 나비물 (말씀의 실천) 남겨두는 일을 조금 더 구체화하자. 할수만 있다면 지금까지 해 온 일보다 조금 더 이 일을 민감하게 실천해 보자. 하늘바라기 (중보기도) 전쟁의 소문이 무성하며, 진행되고 있는 이 땅, 전쟁의 소식을 압도하는 그리스도의 평강이 2023년에 전 지역을 점령하게 하옵소서. 주님, 저는 힘이 정의라면 사랑이 설 자리가 없음을 믿습니다. 주님, 힘드시겠지만 계속해서 일해 주십시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