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 사역

제목2012.03.25 셀 사역2024-04-22 11:43
작성자 Level 10


얼음 깨기 (WELCOME)
그리스도인으로서 사회와 교회에 팽배한 양극화를 극복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를 나누어 봅니다.  

 
경배와 찬양 (WORSHOP)
● 누가 주를 따라 섬기려는가 (459장)
● 뜻 없이 무릎 꿇는 (460장)
  

 
말씀읽기와 적용 (WORD)
● 마가복음 13:1-2    성전을 나가실 때에
1) 본문에서 예수님이 움직이셨던 동선을 나누어 보자.
본문 1,3절 과 설교를 참고하세요.  

2) 예수께서 성전을 나가시기로 한 결정적인 이유가 무엇일까요?
본문과 요한복음 2장 13절 이하를 참고합니다.  

3) 예수님이 떠나가신 길을 다시 돌이키기 위해 우리들이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요?
* 설교의 두 번째 테마를 중심으로  

 
사역하기 (WORK)
1) 중보기도
1. 서부동의 새 시대를 통해 하나님의 교회가 승리하도록.
① 매 주일마다 새신자가 등록하는 교회가 되게 하옵소서.
② 서부동 엘 벧엘 교회는 사도행전적인 교회가 되게 하옵소서.

2. 사순절 기간 동안 주님의 은혜에 깊이 잠길 수 있도록.
① 가장 말을 적게 하는 기간이 되게 하옵소서.
② 기름부음이 충만한 나날이 되게 하옵소서.
③ 주어진 말씀의 일과대로 성서와 가까이 하는 기간이 되게 하옵소서.

3. 하나님 나라의 가치에 붙들릴 수 있는 제천지역의 잠재적 그리스도인들을 일군으로 보내 주옵소서.
① 하나님의 교회에서 담임목사와 같은 말, 같은 뜻, 같은 생각, 같은 행동으로 같은 비전을 꿈꿀 수 있는
  일군을 보내주옵소서.
② 하나님의 교회에서 예수 십자가만으로 만족할 수 있는  일군이 양육되게 하옵소서.
③ 하나님의 교회로 제천지역의 젊은 일군들이 몰려오도록 (주일학생, 중고등부 학생, 청년 대학생)

4. 엘 벧엘 교회에 성령의 바람이 휘몰아치게 하옵소서.
① 성령보다 앞서지 않게 하옵소서.
② 성령보다 뒤쳐지지 않게 하옵소서.
③ 성령과 동행하게 하옵소서.
④ 사도행전적인 성령의 은사가 나타나 사역하게 하옵소서.
⑤ 그 결과 성령의 열매를 맺게 하옵소서.

5. 우리 교회 두 날개 양육 시스템으로 통한 재생산 사역자들이 양성되게 하옵소서.
① 양육 1기 A,B 반의 은혜로운 과정을 위해
② 양육 2기 개강을 위해 (매주 목요일 사역)
③ 제 2회 전인적 치유 수양회를 위해 (4월 중에 개강 예정)
④ 4월에 실시될 열린 모임을 위해
⑤ 제자대학 1학기를 위해 (5월 중에 개강 예정)

6. 우리 교회 전인적 소그룹의 12진(陣)을 위하여
① 셀이 영적 재생산 사역의 캠프가 되게 하옵소서.
② 친교 단체가 아닌 공중 권세 잡은 자들과 대적하는 보루가 되게 하옵소서.
③ 12월에 번식을 향해 달려가는 진(陣)되게 하옵소서.

7. 우리 교회 예배당 건축 후의 앞으로의 여정을 지켜주옵소서
① 4월 입당예배가 잘 준비되게 하옵소서. ( 조경공사, 기도실 공사 등등)
② 2015년에 하나님의 교회를 헌당하게 하옵소서.
③ 손동만 집사를 끝까지 축복하옵소서.

2) 헌금 / 광고
3) 주기도문
4) 목원들의 기도제목 나누기  

 
설교요약 (SUMMARY)
2012년 3월 25일 주일 낮 예배 설교 (마가복음 111번째 강해)
제목 : 성전에서 나가실 때에  /  본문 : 마가복음 13:1-2마가복음 13장은 마태복음 24장과 누가복음 21장과 더불어, 함께 내용들을 공유하고 있는 소위 종말장이라고 불리는 기사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고난주간의 화요일 해당하는 날 주님은 그 동안 행하셨던 제 3성전 소위 헤롯 성전에서의 치열한 영적 담론들을 마치시고 그 성전을 떠나십니다. 본문 1절 전반절은 오늘 설교의 가장 중요한 구절입니다. “예수께서 성전에서 나가실 때에”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드디어 당신이 강도의 굴혈로 변질되어 있는 것을 보고 안타까워하시며 청결하게 하신 헤롯 성전을 나가시기로 결심하셨습니다. 기득권에 사로잡혀 하나님의 율법을 포장삼아 부를 일삼고 하나님의 나라와는 전혀 상반되는 세속적인 이익을 추구하고 있던 종교 지도자들인 바리새인, 사두개인, 서기관들과의 치열한 영적 싸움에서 한판승을 거두신 주님은 성전을 떠나시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드디어 발걸음을 옮기셨습니다. 주님은 헤롯 성전을 떠나 동쪽에 있는 문을 통과하셔서 비탈길을 따라 내려가셔서 기드론 시내를 건너 주님이 영적으로 항상 승리하셨던 감람산(올리브산)으로 거처를 옮기셨습니다. 본문 1절은 바로 예수께서 그 성전을 나가실 때 있었던 일을 아주 간단하게 설명하지만 마가가 놓치지 않고 기록한 내용입니다. 주님께서 이 때 성전을 나가셔서 다시는 성전으로 들어가시지 않습니다. 바로 그 때 제자 중에 한 명이 예수님께 부러운 모습으로 1절 하반절에서 “제자 중 하나가 이르되 선생님이여 보소서 이 돌들이 어떠하며 이 건물들이 어떠하니이까”와 같이 질문했습니다. 마가의 기록에는 아주 단순하게 기록되어 있지만 병행구절인 누가복음에서 누가는 제자가 이 질문을 한 의도를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누가복음 21:5절에서 “어떤 사람들이 성전을 가리켜 그 아름다운 돌과 헌물로 꾸민 것을 말하매 예수께서 이르시되”라고 말씀합니다. 지금 익명의 제자가 예수께서 헤롯 성전 밖으로 나가고 있는 바로 그 때 어떤 의미로 보면 너무나 주님의 생각과는 동떨어진 동상이몽의 상태로 주님께 “이렇게 엄청나고 아름다운 성전 건물로 볼 때 헤롯 성전의 영광은 영원하겠지요?”라고 질문을 던집니다. 제자들이 이렇게 외형적인 건물의 아름다움을 보면서 찬사를 아끼지 않았던 것은 제 3성전인 헤롯 성전은 정치적인 모략에 의해 지어진 성전이었습니다. 에돔 출신이었던 분봉 왕 헤롯이 유대인들에게 왕으로서의 명분과 호감을 얻기 위해 철저히 계획되어져 세워진 성전이 헤롯 성전이었습니다. BC 19년에 건축이 시작되어 82년 만인 AD 63년에야 완공된 어마어마한 이 성전의 위용은 지금도 남아 있는 돌 하나의 크기를 통해 짐작이 가능합니다. 1세기 이스라엘 역사가인 요세푸스의 기록에 의하면“성전 돌 하나의 길이가 12M, 너비가 3,6M, 높이가 6M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김규항씨가 쓴‘예수전’에 헤롯 성전의 위용이 “성전은 가로 300M, 세로 480M의 크기로 모두 하얀 대리석으로 쌓아 올렸고 외면의 상당 부분은 황금으로 칠해졌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께 “선생님, 보세요. 정말로 아름다운 돌들과 아름다운 건물들이지요!” 질문한 뒤, 예수께서 대답하실 답은 항상 상식을 뛰어넘는 명쾌함이 있습니다. 본문 2절에서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이 큰 건물들을 보느냐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 하시니라”라고 말씀합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던진 답은 “헤롯 성전을 세우고 있는 모든 돌들이 무너지게 될 것이다. 이윽고 이 성전은 초토화될 것이다.”는 말씀이었습니다. 지금 제자들의 눈에 너무나도 엄청나고 아름다워 영원히 지속될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는 이 성전이 돌 위에 돌 하나도 놓이지 않고 초토화될 것이라는 주님의 이 저주 같은 선포에 제자들은 당혹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분명한 어조로 이 성전은 반드시 무너지게 될 것이라고 선포하셨습니다. 주님의 이 경고는 경고로 끝나지 않고 그렇게도 휘황찬란한 헤롯 성전은 AD 70년 로마의 황제인 베스파시안의 아들인 티투스가 이끄는 로마 군에 의해 예수님의 예언대로 초토화됩니다. 그 때의 초토화는 온 도성과 성소를 겨냥한 것이었기 때문에 수개월 혹은 수년이 걸렸을 것이라고 학자들이 동의하는 것을 보면 당시 예루살렘의 유린사가 얼마나 잔혹했는가를 충분히 짐작합니다. 당시의 로마군의 초토화 작전으로 헤롯 성전은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절대로 무너질 것 같지 않은 그 성전은 돌 위에 돌 하나도 남지 않고 사라졌습니다. 다만 서쪽의 한 벽이 발굴 중에 발견되어 오늘날 예루살렘에 통곡의 벽으로 남아 애잔한 이스라엘의 아픈 역사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 말씀에 대한 영적인 조명과 교훈은 왜 주님께서 성전을 떠나셨는가? 의 문제입니다. 주님은 분명히 성전을 아버지의 집이라고 선포하시면서 성전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셨습니다. 내 아버지의 집을 장사하는 자들의 굴혈로 만들지 말라고 격노하시면서 성전에 대한 애틋함을 드러내셨습니다. 그런데 그토록 애착을 가졌던 예루살렘 성전을 떠나신 이유가 있습니다.
1. 하나님이 성전에 계시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성전에 계시지 않았다는 말은 두 가지를 전제합니다. ① 하나님이 성전에 계시고 싶었지만 제 삼자가 그곳에 하나님을 계시게 못하게 물리적으로 쫓아낸 경우와 ② 자발적으로 그곳이 싫어 하나님 당신께서 스스로 그곳을 떠나신 경우입니다. 하나님이 헤롯 성전에 계시지 않았다는 의미는 하나님은 헤롯 성전에 이미 하나님을 무시하는 자들이 진을 치고 앉아 있었기에 더 이상 그곳에 계실 이유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강도의 굴혈로 만들고 있는 그들에 의해 물리적으로 쫓겨나신 것이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그곳에서 살고 싶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스스로가 그곳을 나오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곳을 나오신 것은 “예수께서 성전에서 나가실 때에”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성전을 떠나셨습니다. 가톨릭 신학의 대부라고 할 수 있는 칼 라너는 예수님의 죽음을 “예수님의 죽음으로 인해 우리들은 불멸의 은혜를 얻었기에 예수님의 죽음은 곧 하나님 자신의 죽음이었다.”로 해석했습니다. 예수님이 성전에서 나가신 것은 곧 하나님 당신이 나가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헤롯 성전에서 계실 수 없었습니다. 이미 하나님의 자리가 세속적인 종교와 교권에 의해 빼앗겨 버렸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2장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공생애를 시작하신 지 약 일주일 만에 예루살렘에 위치해 있는 헤롯 성전으로 가셔서 유월절을 지키셨습니다. 처음으로 절기를 지키시기 위해 헤롯 성전에 올라가신 주님은 성전 안에서 소와 양과 비둘기를 팔며 성전세를 바꾸어주기 위해 환전을 하며 유익을 추구하던 사람들을 보시고 노끈으로 채찍을 만드셔서 그들을 내쫓으시고 돈 바꾸는 자들의 상을 뒤집어엎으시며 내 아버지의 집을 장사하는 자의 집으로 만들지 말라고 격노하셨던 사건을 우리는 기억합니다. 그 때 주님이 세속적인 이익을 추구하는 자들에게 선포하신 말씀은 요한복음 2:16절이었습니다. “비둘기파는 사람들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여기서 가져가라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 하시니”라고 말씀합니다. ‘내 아버지의 집’이라고 번역된 구절은 헬라어 원어성경을 보면 정관사가 강조되어 있습니다.
정확한 번역은‘내 아버지의 그 집’입니다. 예수님께서 아버지의 그 집에 애착을 갖고 계셨습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 바로 그 아버지의 집에서 아버지로서 대우 받기를 주님은 원하셨습니다. 그러나 아버지의 집은 강도의 굴혈로 변질되었습니다. 이렇게 모욕을 당하고 있는 바로 그 집에서 하나님은 거하실 수 없었습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하나님은 그 집을 떠나시게 된 것입니다. 독일의 진보적인 신학자들인 에른스트(ERNST)와 그룬트만(GRUNDMANN)은 예수님이 성전을 나가실 때라는 마가의 표현을‘성전과 최후로 결별하시는 예수’라는 표현으로 해석했습니다.
하나님의 집에 하나님이 계시지 않고 떠난다면 그것은 비극입니다. 하나님의 집에 하나님이 떠나시는 일이 벌어진다면 그것은 이미 교회의 존재 자체를 상실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 한국교회가 다시 한 번 집중해야 하는 은혜가 있습니다.
2. 성전을 교회로 만들어 하나님이 돌아오시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하나님을 교회로 돌아오시게 하라’입니다. 주님이 다시 돌아오려면 주님이 돌아오실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 드려야 합니다. 그 자리가 바로 교회입니다.
주님은 마태복음 16장에서 우리 믿음의 자녀들에게 아주 귀하고 귀한 진주 같은 말씀을 남겨주셨습니다. 그것은 주님이 세우시려는 교회의 근거요 기초이기도 합니다. 우리들이 너무나 익숙하게 잘 알고 있는 것처럼 베드로가 위대한 신앙고백을 드렸습니다. ‘주님은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라’고 말입니다. 이 고백을 받으신 주님께서 마태복음 16:17-18절에서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라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감격과 은혜는 바로 이단 교회가 아닌 이 땅에 세워진 교회는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신앙고백 위에 세워진 것과 적어도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이 땅의 모든 교회는 절대로 사탄의 권세가 이기지 못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교회에 베푸신 하나님의 절대적인 은혜입니다.
교회가 세속적인 가치로 함몰되어 하나님의 자리를 빼앗고, 교회가 정치적인 자리를 넘보는 세상보다도 못한 헤롯 성전과도 같은 이익 집단이 될 때 그 교회는 아무리 휘황찬란한 외형적인 건물을 갖고 있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이 결코 계시지 않는 회칠한 무덤이요 하나님이 떠나셔야만 하는 성전 그 이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세상이 교회를 향하여 복음을 도외시한 채로 세속적인 잣대로 세속의 규격에 맞추어 세상에 요구에 따르라는 일체의 모든 요구를 더욱 경계해야 합니다.
우리 세인교회는 이념에 색깔에 따라 치우치는 그런 못난 종교 단체가 아니라 음부의 권세가 절대로 이기지 못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선혈이 뚝뚝 떨어져 복음의 능력으로 성도들이 삶의 현장에서 매일 승리하는 살아 있는 주님의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조국의 교회가 이 원색적인 십자가의 복음으로 다시 세워질 수만 있다면 성전을 나가신 주님께서는 다시 아버지의 바로 그 집인 교회로 돌아오실 것입니다. 교회 존재 목적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세우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46년 동안을 세웠던 헤롯 성전을 헐라고 강력하게 선포하신 내용은 요한복음 2:19절에서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라고 말씀합니다. 주님의 선포의 클라이맥스는‘이 성전을 헐라’가 아닙니다. 주님의 선포의 가장 큰 핵심은‘일으키리라’입니다. 그러나 세상의 잣대는 성전을 헐라는 것에 맞추어져 있습니다. 세상의 가치가 숨기고 있는 주님께서 성전을 헐면 다시 교회를 세우겠다는 것을 경계해야 합니다.
우리 세인교회는 주님이 떠나시는 성전이 아니라 주님이 머무시는 주님의 교회가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