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21일(화요일) 묵상 세미한 소리로 오시는 하나님 오늘의 성서일과 시편 78:17-20, 52-55, 열왕기상 19:9-18, 로마서 11:1-6 꽃물 (말씀 새기기) 열왕기상 19:11-12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너는 나가서 여호와 앞에서 산에 서라 하시더니 여호와께서 지나가시는데 여호와 앞에 크고 강한 바람이 산을 가르고 바위를 부수나 바람 가운데에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며 바람 후에 지진이 있으나 지진 가운데에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며 또 지진 후에 불이 있으나 불 가운데에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더니 불후에 세미한 소리가 있는지라 마중물 (말씀 묵상) 제천에는 배론 성지라는 가톨릭 성지가 있다. 만추의 계절이 되기 전, 단풍이 물 들면 대한민국 단풍 절경 10경으로 항상 톱 랭크되는 정말 아름다운 곳이다. 하지만 내가 이곳을 찾는 이유는 또 다른 데에 있다. 이곳에 갈 때는 언제나 머리가 복잡할 때다. 배론 성당에 들어가 앉아 묵상하다가 나오면 정말 신기하게도 지끈거리던 두통이 사라지는 경험을 많이 있다. 목사가 성당에 들어가 앉는 게 정상이냐고 힐난하는 사람이 있겠지만 뭐 어쩔 수 없다. 사실이니까. 배론 성당에 들어가 앉으면 침묵과 고요함의 영성에 사로잡히도록 만든 성당 내부 구조 때문에 압도당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잠시 침묵하면 주님이 말씀하시는 소리가 들린다. 목회 현장은 전쟁터다. 이렇게 표현하면 어떤 이는 엄살 피운다고, 과장한다고 말하는 데 나는 그들의 지론에 동의하지 않는다. 목양의 현장은 전쟁터가 맞다. 피를 흘리기까지 싸우지 않으면 안 되는 곳이 목양 현장이다. 모교에서 교수로 사역하고 있는 후배가 학위수여식이 진행되었음을 SNS에 올려 알게 되었다. 금년에도 상당수 많은 후배들이 목회 현장으로 나아올 텐데 축하보다는 안쓰러움이 더 큰 이유는 현장이 전쟁터라 그렇다. 목양의 현장에서 30년이 넘게 사역하다보니 한 가지가 눈에 들어온다. 지극히 주관적인 별난 목사의 주절거림이라고 표현해도 뭐 어쩔 수 없다. 하나님은 시끄러운 곳에 계시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가공할만한 인위적으로 만든 감정적 소음의 현장에는 계시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호렙산에서 엘리야에게 오셔서 그에게 미션을 주시는 열왕기상 19장의 성서일과 텍스트를 충분히 이해하고 공감한다. 바람 가운데 계시지 않으신 하나님, 지진 가운데 계시지 않으신 하나님, 불 가운데에도 계시지 않으셨던 하나님은 역설적으로 세미한 소리가운데 엘리야에게 임재 하셨다. 세인교회는 개척 이후 상업적인 목적의 부흥회를 하지 않았다. 교우들이 이런 부흥회에 대해 손사래를 치기 때문이다. 감정을 자극해 열광의 도가니로 만드는 상업적인 부흥회,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한다. 자라난 고향교회에서 같이 신앙 생활하던 동기들이 약 50명 정도였다. 그들 중에 은사중심적인 성향의 친구들이 상당수였다. 당시는 그게 유행이었으니까. 방언, 방언통역, 입신 등등 오늘의 언어로 대체한다면 임파테이션 성향의 은사 제일주의로 치닫던 교회의 모양새로 인해 친구들도 상당수 그렇게 잠식당했다. 대단히 슬픈 것은 그렇게 신비주의적인 은사로 은혜를 말하던 친구들은 지금 교회에서 사라졌다는 점이다. 목사로 선지 30년이 넘었다. 사역의 증인으로 흔들리지 않으려는 것이 있다. 목사나, 성도나 결국 나를 크리스티아노스를 견인해 주는 것은 은사가 아니라 말씀이라는 사실에서 흔들리지 않는다. 말씀은 세미한 가운데 임한다. 인위적인 부흥회에서 임하지 않는다. 블로그에 달리는 댓글 중에 요한계시록의 신비, 비유의 진실, 말세의 경고음이 들리고 있음 등등 따위의 댓글들이 쏠쏠하게 올라온다. 스팸의 스팸이다. 나는 오늘도 나의 전인격으로 세미하게 다가오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위해 귀 기울인다.
두레박 (질문) 종교적인 소음이 아니라 전인격에 다가오셔서 세미하게 말씀하시는 주군의 조명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가? 손 우물 (한 줄 기도) 하나님, 호렙으로 엘리야를 찾아오신 것처럼, 제게도 날마다 시분초로 오십시오. 귀를 민감하게 기울이겠습니다. 주님과 말씀으로 교제하겠습니다. 나비물 (말씀의 실천) 큐티는 내게 있어서 목사로서 갖추어야 하는 영성을 공급받는 대단히 중요한 사역이다. 빈틈없이 주님과 말씀으로 교제하자.
하늘바라기 (중보기도) 지금 수술대에 올라간 지체가 있습니다. 수술실로 주님 함께 들어가 주십시오. 더불어 실 수 없는 수술 스케줄이 진행되게 해 주십시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