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 사역

제목2012.04.08 셀 사역2024-04-22 11:44
작성자 Level 10


얼음 깨기 (WELCOME)
부활절 계란하면 생각나는 에피소드 나누기  

 
경배와 찬양 (WORSHOP)

● 무덤에 머물러 (찬송가 160장)
● 주님께 영광 (찬송가 165장)
  

 
말씀읽기와 적용 (WORD)
● 누가복음 24:32-35        돌아가고 있습니까?
1) 엠마오로 내려가던 두 제자가 급히 그렇게 여행길을 떠난 두 가지의 이유는 무엇입니까?
설교 중에

*  

2) 오늘 본문에서 두 제자가 엠마오로 내려가던 길에서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선 결정적인 이유는 무엇일까요?
본문을 중심으로 한 설교를 되새김질함으로 말해 보자.  

3) 엠마오의 길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오늘의 시대에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부활절과 관련하여 말해보자.  

 
사역하기 (WORK)
1) 중보기도
 
  1. 매 주일마다 새신자가 등록하는 교회가 되게 하옵소서.
  2. 하나님의 교회에서 담임목사와 같은 말, 같은 뜻, 같은 생각, 같은 행동으로
    같은 비전을 꿈꿀 수 있는 일군을 보내주옵소서.
  3. 성령을 춤추시게 하는 교회와 지체들이 되게 하옵소서.
  4. 이번 주부터 실시될 열린 모임 학교를 위해
  5. 제자대학 1학기를 위해 (5월 중에 개강 예정)
  6. 양육 2기를 위하여
  7. 12월에 번식을 향해 달려가는 12 진(陣)되게 하옵소서.
  8. 4월 29일 입당예배가 승리하게 하옵소서.
  9. 2015년에 하나님의 교회를 헌당하게 하옵소서.
 10. 손동만 집사를 끝까지 축복하옵소서.

 2) 헌금 / 광고
 3) 주기도문
 4) 목원들의 기도제목 나누기  

 
설교요약 (SUMMARY)
2012년 4월 8일 부활주일 예배 설교제목 : 누가복음 24:32-35  /  본문 : 돌아가고 있습니까?
부활절은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음의 권세를 깨뜨리고 다시 사심을 축하하고 기뻐하며 기념하는 날입니다.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께서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셔서 우리도 마지막 날에 다시 살 수 있는 소망을 주신 은혜를 기뻐하는 날입니다. 우리들에게 어김없이 돌아온 부활절은 신학적인 이해보다 더 중요한 영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이 실여 있는 누가복음 24장은 주님이 부활하신 후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일어난 사건들을 소개해 주고 있습니다.  1-11절에서는 먼저 주님의 무덤으로 향품을 가지고 장사하러 간 여인들이 무덤 문이 굴러져 있고 예수님의 시신이 보이지 않은 것을 보고 놀라 당황하고 있는 어간에 하나님의 천사들이 주님의 부활을 고지하고 주님은 여기 계시지 않으시고 약속하신 대로 갈릴리로 가셨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음을 누가는 보고합니다. 주님은 부활하셨는데 그 부활의 현장을 목격한 베드로는 도저히 못 믿을 일이라고 단정하고 무덤에서 기이히 여기며 떠났음을 누가는 고발하며 보고하고 있습니다. 당시의 분위기는 예수님의 부활에 대하여 그 누구도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였습니다. 이러한 대체적인 분위기는 누기복음 24:13절 이하에도 계속 연결이 됩니다. 지금 엠마오라는 촌으로 두 제자가 실의에 찬 발걸음으로 낙향하고 있습니다. 한 제자 이름은 본문 18절에 글로바라고 밝혔는데 다른 제자의 이름은 밝혀져 있지 않습니다. 두 사람은 절망한 상태로 소망 없는 걸음을 걷고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그토록 믿고 의지하던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신 것에 대한 절망과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라서 우리를 로마의 압제에서 구원해 줄 것이라는 소망이 있었는데 그 소망이 사라진 것입니다. 내가 따랐던 예수님이 보통 사람들처럼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비참하게 죽어버렸다는 참담함이 이 두 제자들에게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이제 아무런 소망이 없이 아니 어찌 보면 오히려 괜한 일을 했나보다 하는 자괴감으로 고향을 향하여 내려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절망스러운 모습으로 낙향하는 제자들에게 부활하신 주님이 오셔서 동행을 하십니다. 그러나 이 두 제자는 눈이 영적인 안목이 가려져서 자기들과 함께 동행 하고 있는 분이 부활하신 주님임을 알아보지 못합니다. 노정에서 주님은 이들에게 “지금 너희들이 하는 이야기가 무엇인가?” 물으셨습니다. 그러자 도리어 이 두 사람 중 한 사람이었던 글로바는 반색을 하며 질문하는 주님에게 나무라듯이 누가복음 24장 18~24절을 말했습니다. ① 예루살렘에서 일어난 일을 어찌 당신만 모른단 말인가? ② 나사렛 예수는 능한 선지자인데 대제사장들과 관리들이 사형 판도를 받도록 압력을 넣어 결국에 십자가에 달려 죽였다. ③ 우리들은 이 사람 예수가 우리들을 구원해 줄 자라고 믿었는데 아쉽다. ④ 오늘이 바로 이 일이 일어난 지가 사흘이 되는 날이다. ⑤ 우리들과 함께 한 여자들이 주님의 무덤에 갔다가 그의 시체를 보지 못했다고 전언해 주었다. ⑥ 천사들이 그 여자들에게 그 분이 살아났다고 말 해 주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우리들의 동료들이 그곳에 가보았지만 역시 시체를 보지 못했다. 이 말씀을 글로바라는 제자에게 들으신 주님께서는 속상함을 표하시면서 다시 제자들에게 누가복음 24:25-27절을 선포하십니다. “이르시되 미련하고 선지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 하시고 이에 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
이 정도로 주님이 말씀을 하셨는데도 엠마오로 내려가는 두 제자는 전혀 옆에 계신 분이 누구인지를 전혀 알지 못하는 영적인 둔함의 극치를 보여줍니다. 이들은 호기심으로 아직은 낯선 사람으로 여기던 주님에게 자신들과 함께 하루를 보낼 것을 부탁합니다. 주님은 제자들의 이 제안을 흔쾌히 받고 하루를 같이 동석하셨습니다. 동석하신 자리에서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드디어 제자들에게 떡을 떼어주시는 엠마오 성찬식을 나누셨습니다. 바로 그 순간 제자들은 눈이 밝아졌고 주님을 비로소 알아보았지만 주님은 그 자리를 떠나셨습니다. 주님의 놀라운 부활을 직접 경험한 엠마오로 내려가던 두 제자들은 그들의 신앙고백을 서로 나눕니다. 오늘 설교 본문의 가장 감동적인 누가복음 24:32절에서 “그들이 서로 말하되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하고”말씀합니다. 마음의 뜨거움을 경험한 두 제자는 엠마오로 내려가던 그 길을 돌이켜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갑니다. ‘터닝포인트’가 된 엠마오 도상에서 그들은 가던 길을 멈추고 다시 그들이 걸어왔던 예루살렘으로 회귀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행해주셨던 일들을 예루살렘에서 함께 증거 하는 사역을 감당하는 것으로 오늘 본문의 기사가 종료됩니다.
누가복음 24:33-35절에서 “곧 그 때로 일어나 예루살렘에 돌아가 보니 열한 제자 및 그들과 함께 한 자들이 모여 있어 말하기를 주께서 과연 살아나시고 시몬에게 보이셨다 하는지라 두 사람도 길에서 된 일과 예수께서 떡을 떼심으로 자기들에게 알려지신 것을 말하더라” 말씀합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엠마오로 낙향하던 두 제자에게 가셔서 행하신 사역을 소개하고 있는 본문의 기사를 통하여 오늘 정상적이지 않은 영적 짓눌림에 의해 공격을 받고 이 시대인 2012년 부활의 아침에 우리에게 주시는 메시지는 무엇입니까?
* 나는 지금 엠마오로 가는 길에 있는가? 아니면 예루살렘으로 다시 돌아가고 있는가? 입니다.
오늘 본문을 자세히 보면 두 제자는 그들이 있어야 하는 곳이었던 예루살렘을 떠났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이 예루살렘을 떠난 날은 바로 주님께서 부활하셨다는 소문이 퍼지고 있었던 날이었습니다. 그렇다면 그들은 더 더욱 예루살렘을 떠나서는 안 되었습니다. 주님은 무려 세 번에 걸쳐서 내가 십자가에서 죽을 것이지만 삼일 만에 다시 살 것임을 고지 하셨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예루살렘을 급하게 떠났습니다. 누가복음 24:13-14절에서 “그 날에 그들 중 둘이 예루살렘에서 이십오 리 되는 엠마오라 하는 마을로 가면서 이 모든 된 일을 서로 이야기하더라”말씀합니다. 그렇다면 본문의 제자들이 예루살렘을 조급하게 떠난 진짜 의도는 두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① 두려움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형을 당하고 난 뒤에 예루살렘 전역에서는 예수를 따르던 자들의 대대적인 숙청을 위한 색출 작전이 펼쳐졌습니다. 이로 인하여 제자들은 주님이 십자가에 달리신 그 현장에서 다 도망을 했지만 불안에 떨 수 밖에 없는 살얼음판을 걷고 있었습니다. 제자들은 함께 모여 있었던 회합 장소의 문을 굳게 잠가둘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들은 항상 초조함과 불안함으로 나날을 보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오죽하면 주님이 부활하셔서 제자들이 모여 있는 장소에 처음으로 현현하셨을 때‘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라고 선포하셨습니다. 이 불안한 형극을 극복할 수 있는 길을 예루살렘을 떠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엠마오로 낙향을 한 것입니다.
② 불신앙 때문이었습니다. 그 환경을 이길 수 있는 믿음의 부재 때문입니다. 엠마오로 내려가던 두 제자들에게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던 다시 살아나리라는 부활의 믿음이 없었습니다. 이들은 천사들이 예수는 여기에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다는 고지를 믿지 않았습니다. 그러기에 제자들은 그 동안에 주님이 행하셨던 모든 선포와 가르침을 망각하고 엠마오로 내려간 것입니다. 엠마오행의 가장 결정적인 동기는 불신앙 때문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에 불신앙이 팽배해진 이유는 부활의 신앙이 없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예수가 부활했다는 사실을 믿지 않는다면 그것은 곧바로 예수를 전혀 믿지 않는다는 말과 동의어입니다. 사람들이 예수의 부활을 믿지 못하는 것은 예수를 머리로 믿기 때문입니다. 누가복음 24:18-24절에서 “그 한 사람인 글로바라 하는 자가 대답하여 이르되 당신이 예루살렘에 체류하면서도 요즘 거기서 된 일을 혼자만 알지 못하느냐 이르시되 무슨 일이냐 이르되 나사렛 예수의 일이니 그는 하나님과 모든 백성 앞에서 말과 일에 능하신 선지자이거늘 우리 대제사장들과 관리들이 사형 판결에 넘겨주어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우리는 이 사람이 이스라엘을 속량할 자라고 바랐노라 이뿐 아니라 이 일이 일어난 지가 사흘째요 또한 우리 중에 어떤 여자들이 우리로 놀라게 하였으니 이는 그들이 새벽에 무덤에 갔다가 그의 시체는 보지 못하고 와서 그가 살아나셨다 하는 천사들의 나타남을 보았다 함이라 또 우리와 함께 한 자 중에 두어 사람이 무덤에 가 과연 여자들이 말한 바와 같음을 보았으나 예수는 보지 못하였느니라 하거늘”은 이론적 예수의 행적에 대한 이해였습니다.
그런데 이런 기막힌 이성적인 이해를 하고 있었던 두 제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낙향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들이 지금 절망 중에 고향을 향하여 내려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부활이 나와는 상관이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부활이 이론적으로 나에게 머물러 있을 때 세속적인 사람과 동일하게 주님의 부활로 인한 나의 삶의 현장은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주님의 은혜가 나에게 이성적인 테두리 안에 머물러 있어 주님과 나와의 관계가 인격적인 관계로 묶어지지 않는 한 나는 교회 공동체 안에 있어도 이방인일 수 밖에 없습니다.
주님의 고난이 나를 위한 고난임을 인격적으로 느끼고 받아들일 때만 나는 비로소 주님의 고난을 받아들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고난을 통해 주님의 부활하심이 나를 위한 부활하심이라고 인정하는 사람만이 하나님의 자녀요 또 그는 하나님께 헌신할 수 있는 것입니다. 동일한 이치로 주님의 부활하심이 나를 위한 부활임을 믿을 때 나도 역시 이 땅에서 영적인 부활로 승리하게 되는 것입니다. 부활의 승리는 세속적인 만족을 향하여 달려가는 나의 엠마오 행을 주님을 위한 헌신의 길인 예루살렘 행으로 발걸음을 돌리는 것입니다.
본문 32-35절은 오늘 설교의 주제절에서 “그들이 서로 말하되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하고 곧 그 때로 일어나 예루살렘에 돌아가 보니 열한 제자 및 그들과 함께 한 자들이 모여 있어 말하기를 주께서 과연 살아나시고 시몬에게 보이셨다 하는지라 두 사람도 길에서 된 일과 예수께서 떡을 떼심으로 자기들에게 알려지신 것을 말하더라”말씀합니다. 부활의 신앙을 믿는다는 것은 엠마오에서 예루살렘으로 ‘터닝’ 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마치 사울이 다메섹에서 예루살렘으로 ‘터닝’ 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우리가 부활의 주님을 만나기 위해서 예루살렘을 떠나서는 안 됩니다. 아니 떠났어도 예루살렘으로 다시 돌아가야 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성도는 달라져야 됩니다. 발걸음의 방향이 달라져야 하고 절망에서 소망 쪽으로 가야 합니다.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졌기 때문에 황혼에서 새벽을 향하여야 합니다. 마귀의 자녀가 아니고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는 구원 받아야 될 하나님의 신실한 백성들이기 때문입니다. 그 곳에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승리가 있었기 때문에 엠마오로 향하던 두 제자는 다시 예루살렘으로 갔습니다. 우리는 예루살렘으로 가야 합니다. 그곳이 바로 우리들이 가야 할 곳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