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음 깨기 (WELCOME)내가 한 주간 만났던 사람들과 교제했던 일 나누기 | 경배와 찬양 (WORSHOP)말씀읽기와 적용 (WORD)● 본문 : 사사기 6:24 ● 제목 : 여호와 샬롬 1) 기드온이 단을 쌓은 ‘여호와 샬롬’의 은혜를 오늘 본문의 말씀을 중심으로 정리해 봅시다. 2) 오늘 설교를 통해 우리가 실천해야 할 ‘그리스도인의 샬롬의 삶’은 어떤 삶인지 나누어 봅시다. 3) 내게 주시는 여호와 샬롬의 은혜를 나누어 봅시다. 사역하기 (WORK)1. 교회 중보기도 1) 새 가족 섬김이 사역 1주차 사역이 성실히 진행되기를 2) 여름 사역의 전반을 위하여(성경학교, 학생회 수련회, 청년 해외 아웃리치) 3) 양육 3기와 4기의 두 날개 주간 사역이 승리하도록 4) 환우들을 위하여 5) 대학입시 준비 중에 있는 수험생들을 위하여 (곽보람, 신현오, 권용원, 김다인, 배성아) 2. 간증으로 은혜 나누기
3. 셀 그룹의 지체들을 위한 치유기도 (환우들을 위한 집중기도)
4. 헌금 기도
5. 광고 및 교제
6. 폐회: 주기도문
7. 파스타 - 준비된 대로 | 설교요약 (SUMMARY)2013년 6월 16일 주일 낮 예배 설교 요약본문 : 사사기 6:24 / 제목 : 여호와 샬롬 출애굽기 19장은 하나님의 시내산 강화(講話) 기록입니다. 430년 동안 계속해서 명령만을 받았던 이스라엘 신앙 공동체의 백성들은 명령을 듣는 것이 오히려 더 익숙한 노예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출애굽기 19:3-6절에서 하나님은 십계명을 제정하시기에 앞서 모세에게 “내 백성들이 내 말을 따라 주겠는가?” 전하라는 것입니다. 430년 동안 노예 근성으로 굳어져 있었던 당신의 백성들에게 동의를 구하시는 하나님의 감동입니다. 십계명을 제정하여 선포하시기에 앞서 하나님은 당신의 뜻을 무조건적으로 하향식 명령이 아닌 공동체에게 의견을 먼저 개진하셨다는 점에서 430년 동안 노예로 살고 있었던 이스라엘 선민 공동체에게는 영적 쇼크였을 것입니다. 우리들에게 의견을 개진하시고 우리들의 인격을 무시하지 않으시는 하나님께서 공동체성을 존중하신다는 신호탄이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공동체를 사랑하시고 존중히 여기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스라엘 신앙공동체와 교제를 하기 원하셨습니다. 기드온은 정말로 하나님의 사람으로는 깜도 안 되는 자였지만 하나님의 파격적인 은혜를 받게 되었습니다. 본인이 드린 제물을 올려놓은 곳에 불로 응답하신 하나님의 표징을 눈으로 직접 목격한 기드온은 바로 거기서 단을 쌓았음을 사사기 기자는 증언 합니다. 본문 24절 전반절에 “기드온이 여호와를 위하여 거기서 제단을 쌓고 그것을 여호와 샬롬이라 하였더라” 말씀합니다. 기드온이 쌓은 제단의 이름을‘예호바 샤롬’이라고 명명했습니다. 번역하면‘여호와는 평강이시다.’라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주목할 은혜는 본문 하반절입니다. “그것이 오늘까지 아비에셀 사람에게 속한 오브라에 있더라”말씀합니다. 주목할 단어는 ‘오늘까지’입니다. ‘오늘까지’의‘오늘’이 정확하게 언제인지를 밝히고 있지 못한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하나님이 기드온에게 주셨던 그 평강의 메시지에 대한 감동이 공동체 후손들에게도 고스란히 전달되었고 보관되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므낫세의 작은 지파에 속한 아비에셀의 오브라 지역에 살고 있었던 기드온의 계보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평강의 메시지는 아마도 그 후손들에게 적지 않은 감동과 자부심으로 여겨졌기에 여호와 샬롬의 제단이 소중히 보전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평강, 여호와 샬롬의 은혜는 므낫세 지파의 영광의 표징이었습니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한 작은 지파에게 임한 하나님의 평강은 거기에서만 머물러 있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그 때 이후로 이스라엘 신앙 공동체는 지금까지 서로가 만나면 “샬롬”하고 인사를 하는 것에서 증거를 댈 수 있습니다. 평강이 있기를 바란다는 인사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공동체를 중심으로 임합니다. 결코 개인의 이익에 국한되어 나타나지 않습니다. 공동체와 교제하고 싶어 하시는 하나님입니다. 중요한 것은 평강의 하나님 즉 여호와 샬롬의 하나님의 경우에도 예외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평강이 어떻게 임하는가? 의 답은 * 하나님이 주시는 평강은 이웃과의 관계 안에서 주어지는 것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샬롬의 하나님은 개인적 평안의 하나님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샬롬은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이웃을 사랑하며 살 때에만 가능하고 임하는 샬롬입니다. 개인이 평안할 때 나는 축복 받은 사람이라는 생각은 하나님께 반하며 비성서적인 생각입니다. 이 교훈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너무나 중요한 교훈을 주는 메시지입니다. 이웃의 샬롬은 무시한 채로 나만의 샬롬을 추구하는 자는 이미 샬롬에서 제외된 사람입니다. 교회 공동체의 샬롬은 무시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 가족만의 샬롬을 추구한다면 그 사람은 가장 비성서적인 사람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여호와 샬롬의 은혜가 너무나 커서 아비에셀 사람 요아스 그리고 그의 아들 기드온에 이어 그의 후손들은 그 평강의 하나님을 기념했습니다. 그러나 그 후손의 후손들인 작금의 이스라엘은 형제와 자매인 팔레스타인과의 단절을 통하여 선조에게 주었던 하나님의 평강의 은혜를 스스로 무너뜨리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통하여 다시 한 번 가슴에 뜨거운 은혜를 다짐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평강은 반드시 이웃과의 아름다운 관계 안에서만 존재하는 평강이며, 나 혼자만의 평강을 추구하는 자는 하나님의 사람일 수 없고, 내 가족만의 평화를 누리기를 소망하는 자는 크리스천이라는 이름의 사람이 아니고, 내 교회만의 평강과 안락함을 누리기를 원하는 목회자와 성도는 기독교의 가장 중요한 기본도 모르는 무지의 사람입니다. 주님이 주시는 샬롬은 이웃과의 관계를 통해서만 주어지는 평강임을 잊지 말고 그렇게 살도록 우리들의 신앙관을 다잡이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진정한 평화를 맛보고 싶으시다면 우리의 이웃과 나눌 때, 내 이웃과 지체들이 내 옆에서 힘이 되어주는 것에 감사할 때 비로소 여호와 샬롬의 진정한 평강을 얻게 될 것입니다. 세인 지체들 모두 이웃과의 아름다운 관계 안에서 주시는 하나님의 진정한 평강을 얻길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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