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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씀읽기와 적용 (WORD)● 본문 : 마가복음 15:42-47 ● 제목 : 무덤까지 1) 아리마태아 사람 요셉이 주님의 죽으심 이후에 행한 헌신의 5가지 동선을 말해보자. 2) 또 한 명의 은휘하던 제자였던 니고데모의 헌신의 내용을 말해보자. 3) 아리마태아 사람 요셉과 니고데모를 통해 얻어야 하는 오늘의 은혜는 무엇인가? 선포된 설교와 마태복음 6:24절을 겸하여 나누어 보자.
| 사역하기 (WORK)1. 교회 중보기도 1. 3월 한 달 동안 교회와 가정의 승리를 위하여 2. 2월 24일(주일) - 28일(목)까지 실시될 향기가 있는 춘계 말씀 축제의 승리를 위하여 3. 2013년 한 해 청장년 출석 지체 200명을 주옵소서. 4. 피선교지를 위하여 기도합시다. 5. 하나님 교회에서 진행되는 두 날개 사역이 2013년 더 아름답게 하옵소서.6. 긍정의 일군을 보내주시고 긍정의 일군이 양육되어 파송되게 하옵소서. 7. 2015년의 비전 공유가 우리 모두 지체들의 비전이 되게 하옵소서. 8. 담임목사와 열방 제천을 변화시킬 영적인 뵈뵈, 브리스길라, 아굴라 그리고 더디오가 많아지게 하옵소서. 9. 한국교회의 회복과 승리를 위하여 10. 성령과 말씀이 균형 있게 함께 움직이는 우리 교회 되게 하옵소서.11. 십자가 위에서 이루신 예수 그리스도의 승리인 복음만을 자랑하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2. 치유기도 (환우들을 위한 집중기도) 3. 간증으로 은혜 나누기 4. 헌금 기도 5. 광고 및 교제 6. 폐회: 주기도문 7. 파스타 - 준비된 대로 | 설교요약 (SUMMARY)2013년 2월 24일 주일 낮 예배 설교 요약 제목 : 무덤까지 / 본문 : 마가복음 15:42-47
예수 그리스도의 삶의 모습과 인격에 가장 가까웠던 바울이 자신의 양아들 디모데에게 정작 자신은 ‘죄인 중에 괴수(딤전 1:15)’이며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자(엡 3:8)’가 자신이라고 토로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의 자신의 실존의 문제를 보는 자는 결코 실패하지 않습니다. 아리마태아 사람 요셉이 회심 뒤에 그리스도인의 실천적 삶의 행동을 보여준 것은 예수의 팬에서 제자로 탈바꿈하는 신앙의 혁명이었습니다. 빌라도는 예수의 시신을 요구하는 요셉의 요청을 이상히 여기고, 주님의 사망을 십자가형의 책임을 맡은 백부장에게 재삼 확인했습니다(본문 44절). 빌라도가 주님이 너무 빨리 죽으신 것에 대하여 ‘이상히 여겼다(엑사우마센)’는 어원적인 의미의 속뜻이 초자연적이거나 이적을 나타냄으로 야기되는 감탄을 의미하는 단어로‘거룩함에 놀라다’라는 의미입니다. 통상적으로 십자가형에 달린 자들은 2-3일 정도의 고통을 당한 뒤에 사망을 하는데 예수님은 불과 6시간 만에 숨을 거두셨습니다. 빌라도는 예수님을 정치적인 논리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십자가에 죽이라고 내어주었지만 할 수만 있으면 그를 살리고 싶어 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죽음을 예사롭게 보지 않고 예수님의 십자가형의 일거수일투족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는데 예수의 이른 사망 소식은 그에게 충격이었으며‘엑사우마센’(거룩한 놀람) 한 것입니다. 이런 이유로 백부장을 불러 죽음을 재삼 확인했습니다. 빌라도의 또 다른 충격은 본문 43절에서 산헤드린 공회의 회원으로 존경 받던 사람인 아라마태아 사람 요셉이 느닷없이 예수의 시신을 요구한 것입니다. 빌라도는 정치 지도자로 그에게는 영적인 분별력은 없을지 몰라도 시국에 대한 혜안은 갖고 있는 정치인이었습니다. 무엇인지는 꼭 집어서 말할 수는 없지만 예수라는 인물에 대한 경외함 같은 감정(엑사우마센)을 느꼈고 이런 이유로 결단을 내려 유대 종교지도자들에게 비토를 당하는 정치적인 불이익을 김수하고서라도 예수의 시신을 요셉에게 내어주는 정치적인 결단을 행하여 예수님의 시신이 아리마태아 사람 요셉에게로 인계되었습니다. 죽음을 무릅쓰고 예수님의 시신을 인수받은 요셉은 ① 제일 먼저 목숨을 걸고 안토니오 요새로 추측되는 총독관저로 빌라도를 찾아가 예수님의 시신을 요구했고 ② 허락을 받은 뒤 다시 갈보리 언덕으로 올라가 십자가에 달려 죽어 있는 예수의 시신을 내려 ③ 이미 준비한 세마포로 예수의 시신을 싼 후 ④ 미리 준비된 자신이 준비한 무덤으로 옮겨 그 무덤 속으로 시신을 매장하고 ⑤ 무덤 문을 돌로 막아 시신의 훼손을 미연에 방지하였습니다(본문 46절).
예수님의 시신을 장사지낸 요셉을 통해 얻는 오늘의 교훈은 * 진정한 회심의 증거는 물질관의 선회라는 교훈입니다.
아리마태아 사람 요셉의 회심 분깃점은 예수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구속사를 완성하시던 상황이었습니다. 단순히 은휘하던 팬과 같은 존재성을 갖고 있었던 요셉이 이제는 자신의 전부를 버리고 온전히 주님께 올인한 제자가 되었던 중요한 분기점은 분명히 십자가 사건이었습니다. 이 사건이 있은 후 요셉은 앞서 설명한 동선으로 주님의 시신을 수습할 수 있었습니다. 요셉의 회심에 대한 증언은 무덤에 관한 기사를 통해 알 수 있습니다. 본문 46절에서 분명히 요셉은 아무렇게나 방치되어 있는 무덤에 예수님의 시신을 모신 것이 아니라 준비된 무덤에 모셨습니다. 그 근거를 타 복음서의 병행구절에서 증언하는데 마태복음 27:60절에서 “바위 속에 판 자기 새 무덤에 넣어 두고 큰 돌을 굴려 무덤 문에 놓고 가니” 마태는 주님의 시신을 모신 무덤이‘자기의 무덤’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자기의 죽음을 미리 대비하여 준비해 놓은 무덤이라는 말입니다. 요셉은 산헤드린 공회의 회원으로 막강한 재산을 가지고 있었던 부유층의 사람으로 자기의 죽음을 위해서 준비한 무덤이 허접할 이 없음은 재론의 여지가 없습니다. 또 누가복음 23:53절은 “이를 내려 세마포로 싸고 아직 사람을 장사한 일이 없는 바위에 판 무덤에 넣어 두니”, “아직 사람을 장사한 일이 없는 바위에 판 무덤”입니다. 이 정보는 요셉이 개인의 무덤으로 만든 무덤이 아닌 가족용으로 조성해 놓은 무덤임을 암시합니다. 가족 중에 먼저 세상을 떠난 사람을 위해 미리 준비한 무덤이라면 그 규모가 상당했을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합니다. 이상의 정보만으로도 가족을 위하여 미리 조성해 놓은 무덤에 가족이 아닌 자를 매장한다는 것은 이해불가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이해불가의 일을 감당했고 그것도 타의에 의해서 마지못해 행한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이 일을 실천했습니다. 장례의 절차에 따르려고 노력했으며 안식일이라는 시일의 긴박함 때문에 기름을 바르는 것은 행하지 못했지만 준비한 세마포로 벌거벗은 주님의 시신의 수치를 감추어 시신을 매장지까지 옮긴 요셉은 주님의 시신을 정성스럽게 닦았습니다. 요한복음의 증언에 의하면 밤중에 찾아와 거듭남의 비밀을 알려달라고 주님께 요청한 또 다른 은휘하던 제자인 니고데모가 예수님의 시신에 넣을 장례용품으로 가져온 백 리트의 향유는 상당한 양이었습니다(요한복음 19:39-40). 이 가치를 은휘하던 중 회심한 또 한 명의 제자인 니고데모는 주님을 위해 아낌없이 드렸습니다. 아리마태아 사람 요셉과 니고데모의 공통점은 회심의 증거는 물질관의 선회라는 것입니다. 아라마태아 사람 요셉의 무덤은 그가 가지고 있는 물질관에 대한 상징이나 마찬가지이며 그는 한 번도 사용해 본 적이 없는 가족묘를 주님을 위해 아낌없이 드렸습니다. 그가 준비한 무덤은 예수님의 죽음을 위해 미리 철저한 각본에 의해 구입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가족들을 위해 죽음 대비용이었던 소중한 재산적 가치를 주님을 위해 아낌없이 드렸습니다. 자신의 신분이 탄로날까봐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은휘하여 은밀하게 예수님을 찾아온 비겁한 자였던 니고데모가 오늘 주님의 장사를 위해 무려 향유 옥합으로 말해도 과언이 아닌 귀한 침향을 섞은 몰약 33kg(100리트)을 주님께 드리기 위해 가져 왔습니다. 이런 혁명적인 일들이 갑자기 일어난 것은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 그리고 결국은 그 위에서 돌아가신 주님을 목도하면서 그들은 진정한 회심을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회심의 결과 제일 첫 번째로 그들이 포기한 것은 그들이 소중히 여기고 있는 물질관의 변화였습니다. 마태복음 6:24절과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의 갈파는 결코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사람이 회심을 했다는 회심의 진정성은 분명히 세 가지를 담보한다. 첫째는 머리 의 회심이요 둘째는 가슴의 회심이요 셋째는 돈지갑의 회심이다. 나는 이 셋 중에서 회심했다는 자들 중에 세 번째의 회심에서 실패하는 자를 많이 본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세 번째의 회심이 이루러지지 않은 자는 회심한 자가 아니다.” 돈지갑의 회심을 주님이 요구하시는 것은 주님이 우리에게 어쩔 수 없이 적선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돈을 주님보다 사랑하는 그 사람의 회심은 명백한 거짓이기에 그것을 돌리기 위함입니다. 영생을 얻기 위해 주님을 찾아온 부자 청년에게 주님은 진정한 제자도를 알려 주셨습니다. “네 가진 것을 팔아 가난한 자에게 나누어 주고 난 뒤에 나를 따르라”고 하셨지만 청년은 “재물이 많으므로 이 말씀을 듣고 근심하며(마 19:22)”갔습니다. 이 청년은 영생을 얻을 절호의 기회를 놓쳤지만 그에게서 물질을 겸하여 포기하지 않고 어떻게 하든 주님을 따르려는 치사함이 없는 정직을 봅니다. 열왕기상 17장과 열왕기하 4장에 기록되어 있는 사르밧 과부, 또 다른 과부에 대한 기록의 공통점은 엘리야와 엘리사에 대한 지극한 수종 듦이었습니다. 자신들이 가지고 있었던 가장 최후의 물질들을 아낌없이 드렸던 여인들이었습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물질관을 하나님을 위한 물질관으로 생각을 바꿉시다. 그렇게 행한 후에 하나님이 나에게 물질의 축복을 배나 주시지 않았다고 투정부리지 마십시다. 하나님은 우리가 세속적 가치에 함몰되어 있다가 하나님 나라의 가치관으로 변화된다면 분명히 우리의 영적인 영역은 녹슬지 않는 하나님의 은혜로 채워질 것입니다. 본인이 죽어 들어가야 하는 공간인 무덤의 공간까지 주님께 내어드렸던 아리마태아 사람 요셉처럼 그런 존재 의식(being-consciousness)을 갖고 살아갑시다. 그리스도인의 삶으로 이 땅에서의 흔적을 납깁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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