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 사역

제목2013.02.10 셀 사역2024-04-22 11:48
작성자 Level 10


얼음 깨기 (WELCOME)
설 명절에 가족들에게 들었거나 혹은 전해 준 덕담 한 마디씩 나누기  

 
경배와 찬양 (WORSHOP)
● 값비싼 향유를 주께 드린 (찬송가 211장)
●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만남을 (복음성가)

  

 
말씀읽기와 적용 (WORD)
● 본문 : 마가복음 15:40-41
● 제목 : 여자, 여자, 여자
1) 예수께서 숨을 거두셨을 때 임종을 지켜보았던 본문에 등장하는 여인들의 이름을 모두 말해보자.
● 본문 40절-41절 전체를 세밀하게 읽어보세요.
  

2) 본문에 등장하는 여인들과 제자들과의 결정적인 차이를 말해 보십시다.
● 선포된 설교를 중심으로 말해보자.
  

3) 이번 주간 설교를 통하여 재삼 다짐해야 할 영적인 교훈은 무엇인가?
* 진정한 제자의 길을 가기 위하여 육비에 새겨야 할 내용을 말해보자.
‘예수님에 관하여 모르는 것이 없어도 그 분을 개인적으로 알지 못한다.’ (아이들먼 목사의 설교 중에)

  

 
사역하기 (WORK)
1. 교회 중보기도
1. 2월 한 달 동안 교회와 가정의 승리를 위하여
2. 2월 24일(주일) - 27일(수)까지 실시될 향기가 있는 춘계 말씀 축제의 승리를 위하여
3. 2013년 한 해 청장년 출석 지체 200명을 주옵소서.
4. 피선교지를 위하여 기도합시다.
5. 하나님 교회에서 진행되는 두 날개 사역이 2013년 더 아름답게 하옵소서.6. 긍정의 일군을 보내주시고 긍정의 일군이 양육되어 파송되게 하옵소서.
7. 2015년의 비전 공유가 우리 모두 지체들의 비전이 되게 하옵소서.
8. 담임목사와 열방 제천을 변화시킬 영적인 뵈뵈, 브리스길라, 아굴라가 많아지게 하옵소서.
9. 한국교회의 회복과 승리를 위하여
10. 성령과 말씀이 균형 있게 함께 움직이는 우리 교회 되게 하옵소서.11. 십자가 위에서 이루신 예수 그리스도의 승리인 복음만을 자랑하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2. 치유기도 (환우들을 위한 집중기도)
3. 간증으로 은혜 나누기
4. 헌금 기도
5. 광고 및 교제
6. 폐회: 주기도문
7. 파스타 - 준비된 대로
  

 
설교요약 (SUMMARY)
2013년 2월 10일 주일 낮 예배 설교 요약(마가복음 149번째 강해)
제목: 여자, 여자, 여자 / 본문: 마가복음 15:40-41

주님이 오후 3시 즈음 운명하시고 인류 구원의 엄청난 승리를 거두시고 돌아가신 그 때 곧 주님의 임종을 지켜 본 자들은 마땅히 주님의 죽으심을 지켜야 할 베드로, 야고보와 요한, 빌립, 마태 등등의 제자들이 아닌 주전 1세기 유대인들의 사회적인 평상적 관례로 일개 소유물로 치부되던 여자들이었습니다.
마가는 주님의 임종을 지켜본 여자들의 이름을 “① 막달라 마리아, ② 작은 야고보와 요세의 어머니 마리아, ③ 살로메, ④ 예수와 함께 예루살렘에 같이 올라온 익명의 여자”라고 기록하고 있는데 이 4명의 여자들 가운데

첫째로, 막달라 마리아에 대하여 갖고 있는 고정관념이“죄 많은 여인이라는 것, 간음을 일삼던 창녀였다는 것, 일곱 귀신들린 여인”이라는 이해입니다.
성경 어느 곳에서도 막달라 마리아가 창녀라고 말한 구절이 없으며 동시에 죄 많은 여인이라고 정의하고 있는 구절도 없습니다. 이 여인이 그렇게 인식되고 있는 이유는 복음서 기자들이 여성을 천대하던 글쓰기로 인함입니다. 주님을 향한 믿음과 헌신의 열정이 상대적으로 여인들보다 적었던 제자들이 의도적으로 막달라 마리아를 비롯한 예수님을 도왔던 여인들에 대하여 평가절하를 하였기에 막달라 마리아도 그렇게 호도된 것이며 그 단적인 예가 막달라 마리아가 일곱 귀신 들린 여인(누가복음 8:2)이었다는 평가입니다.
복음서 기자들은 막달라 마리아가 창녀의 노릇을 하면서 죄를 많이 지었기 때문에 7마리의 귀신이 들어갔다는 쪽으로 해석하려고 했으나 일곱 귀신이라는 단어의 의미는 그런 말이 아니라 막달라 마리아는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어떻게 할 수 없는 완전한 영적인 짓눌림에 빠져 있었던 상태였는데 예수님의 은혜로 극적인 고침을 경험했던 여인이라는 해석이 더욱 정확한 해석입니다.
막달라 마리아가 천대와 홀대를 받은 것은 제자들 중심의 가부장적인 기록인 복음서 기자들의 의도적인 깎아 내림 때문이었습니다. 제자들의 질투심이 막달라 마리아를 견제한 것이며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의 사역의 현장에서 최선을 다해 헌신했던 이른바 신실한 제자도를 실천한 여인이었습니다.

두 번째로, 작은 야고보와 요세의 어머니 마리아는 마태, 마가, 요한복음의 병행 구절을 동시에 살펴 볼 때(마태복음 27:56절, 마가복음 15:40절, 요한복음 19:25절) 이 세 구절을 한 장면으로 보면 십자가 밑 현장에서 예수님의 임종을 지켜보던 4명의 마리아라는 이름을 가진 각기 다른 여인들이 있었음을 알게 됩니다.
제일 먼저는 예수님의 육신의 어머니인 마리아, 둘째는 흉악한 귀신이 들렸다가 주님의 은혜로 고침 받은 막달라 마리아, 세 번째는 작은 야고보와 요세의 어머니 마리아입니다. 이 여인에 대해 요한은 ‘글로바의 아내’라고 소개합니다.
글로바는 엠마오 도상으로 예수의 부활을 믿지 못하고 내려가던 연약한 제자 중의 한 명입니다.
글로바의 아내였던 마리아는 주님의 임종을 보기 위해 끝까지 주님을 따라 골고다까지 올라왔으나 그의 남편인 글로바는 예수의 부활을 믿지 못하고 엠마오로 피신하고 있으니 남편과는 전혀 다른 위대한 신앙의 소유자가 바로 작은 야고보와 요세의 어머니 마리아였습니다.

마지막으로, 샬로메입니다. 이 샬로메는 세배대의 아내였고 야고보와 요한의 모친이었습니다.
세배대의 아들들인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인 샬로메에 대한 고정관념이 마태복음 20:20-21절의 기록 때문에 나쁘나 마가복음 10:35-37절을 보면 마태의 기록과는 분명한 차이가 마가복음의 병행구절에서 발견되는데 그 차이는 그의 어머니인 샬로메의 청탁이 아닌 아들들의 청탁으로 기록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마태가 복음서를 기록할 당시(AD90-95년) 야고보와 요한이 거듭나지 못하고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경험하지 못했을 당시의 수치를 기록에 남기기에는 너무나 큰 부담이었을 것이 자명합니다. 그러기에 마태는 별로 존재적 가치를 인정하지 않던 여인이 제자들의 권위를 흔들게 만들었던 신실했던 여인들 중 그들의 어머니를 총알받이로 역사의 한 무대에 서게 하였습니다. 그들의 어머니인 샬로메를 인위적으로 아들들의 입신양면의 청탁을 행했던 주범으로 가입시킨 것입니다.
마태의 말대로 야고보와 요한의 청탁이 아닌 그의 어머니 샬로메 개인의 청탁이라면 마태복음에서 청탁을 받으신 주님의 반응이 마태복음 20:22-23절과 같아야 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런데 주님의 힐책의 대상이 단수이어야 하는데 주님의 반응은 ‘너희는’복수였습니다. 이 말은 청탁의 대상이 샬로메가 개인이 아닌 야고보와 요한이라는 두 명의 복수임을 강력하게 시사하는 대목이며 마태의 어설픈 실수가 보이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본문에 나오는 여자들에게는 공통분모가 있습니다. ① 당시 주류였던 제자들에 의해서 의도적으로 냉대를 받거나 홀대를 받았다 것과 ②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여인들은 주님의 임종의 자리를 자기 살겠다고 포기하고 도망친 제자들과는 달리 끝까지 목숨의 위험을 무릅쓰고 지켰다는 공통분모가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 참된 제자의 도는 신실성임을 알려줍니다.

마가는 복음서 말미에 분명히 여인들의 승리의 행적을 소개하면서 이 여인들의 행적이 제자들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영적인 모습인 신실성을 인정했습니다. 제자들은 요한을 제외하고 주님의 임종의 장소에 단 한 명도 보이지를 않습니다. 모두가 신상의 위험을 알고 피신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반면 여인들은 갈릴리로부터 시작하여 이곳 예루살렘 골고다까지 변함없이 주님을 따랐습니다.

요한복음 6장의 오병이어의 기적 후 사람들은 예수를 옹립하여 로마의 치세에서 유대를 구원할 태세를 갖추지만 이것을 아신 주님은 그들을 다시 떠나 가버나움으로 가셨습니다. 그곳까지 따라온 자들에게 주님이 던진 촌철살인의 말씀이 요한복음 6:48-50절입니다.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라 너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어도 죽었거니와 이는 하늘에서 내려오는 떡이니 사람으로 하여금 먹고 죽지 아니하게 하는 것이니라”
이 말씀으로 가버나움까지 찾아온 무리들의 반응이 요한복음 6:66절입니다.
“그 때부터 그의 제자 중에서 많은 사람이 떠나가고 다시 그와 함께 다니지 아니하더라”

여기에서 얻는 교훈이 바로 주님을 따르는 제자는 상황에 따라는 변하는 자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주님을 섬기는 제자는 상황이 어떻든 상관없이 신실하게 주님을 따르는 자라는 배움을 가슴에 새겨야 합니다. 제자는 어떤 경우에도 주님께 신실해야 합니다. 그것이 제자입니다.
오늘 본문에 기록된 여자들의 분명한 공통분모는 끝까지 신실하게 주님을 따랐다는 점이며 끝까지 주님을 신실하게 섬겼다는 것입니다.
아이들먼의 영적인 혜안처럼 ‘예수님에 관하여 모르는 것이 없어도 그 분을 개인적으로 알지 못한다.’상황에 따라 좌우되며 신실하게 주님을 따르지 않으면 이런 비극의 주인공이 됩니다. 오늘 본문의 여자들처럼 신실한 제자로 서십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