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다카’와 ‘미쉬파트’ 가 흐르는 나라 되게 하소서.
작가 유시민은 ‘국가란 무엇인가?(돌베개 간)에서 이렇게 썼습니다. “피히테는 단순한 애국자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교육 또는 세뇌를 통해 온 국민의 삶을 획일적 국가 목표에 종속시키려 했던 전체주의자였다. 애국심과 국가주의, 애국주의와 전체주의 사이에는 쉽게 오갈 수 없는 넓은 길이 있다. 피히테는 그 길을 주저 없이 걸어갔다.”(p,127) ‘독일국민에게 고함’ 이라는 피히테의 대단히 유명한 글은 독일 민족의 위대한 민족주의를 불러 일으켜 훗날 전 세계를 전쟁과 죽음의 공포로 몰고 갔던 나치즘과 뭇솔리니의 파시즘의 원형적 기초를 세워준 꼴이 된 대단히 유감스러운 글입니다. 전체주의자였던 피히테에 대한 비판적 성찰을 가한 작가의 글을 나는 한 가지 이유 때문에 동의했습니다. _ism(주의)에 대한 경종 말입니다. 노벨 평화상 수상자인 엘리위젤은 고전과도 같은 책 ‘팔티엘의 비망록’ (원제: The Testament)에서 아들 그리샤가 아버지 팔티엘 거쇼노비치에게 어려서 배운 일을 독백하는 내용을 싣고 있습니다. “나는 그들에게서(공산주의자들) 볼세비즘, 멘세비즘, 사회주의, 무정부주의란 세 단어를 배웠습니다. 나는 아버지에게 ‘주의(_ism)’라는 것이 정확하게 무엇이냐고 여쭈어 보았습니다. 그러자 아버지께서 이렇게 답해 주셨습니다. 그건 혼인할 준비를 하고 있는 변덕스러운 여자 같은 거란다. 앞의 단어에 따라가는 거야”(,p,63) 1970년대 후반에 고등학교를 다녔던 나는 박정희 대통령 사망 소식을 듣고 제일 먼저 생각난 것이 이것이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적화통일이 되는구나!” 국가교육에 충실히 길들여짐으로 있기에 너무나도 당연히 반공주의자로 굳건히 세워져 있었던 평범한 고등학생의 당시 자화상이었습니다.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를 외우지 못하면 선생님에게 매를 맞는 것을 보며 자랐습니다. “10,17 유신은 김유신과 같아서 삼국통일 되듯이 남북통일 되지요.”를 밥 먹기 전에 불렀습니다. 왜냐하면 이 노래는 식전 찬송가와 같은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국가주의라는 애국심 하나 때문에 너무나도 당연하게 여겼던 쓰라린 기억입니다. “기회는 평등할 것입니다. 과정은 공정할 것입니다.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 (중략) 소통하는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낮은 사람, 겸손한 권력이 돼 가장 강력한 나라를 만들겠습니다. 군림하고 통치하는 대통령이 아니라 대화하고 소통하는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소위 말하는 촛불 혁명으로 취임한 지금의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말했던 것을 기억합니다. 평창 동계 올림픽에서 여자 아이스하키 팀의 남북 단일팀 구성을 지금의 정부가 제의하여 가동 직전입니다. 정치역학적인 구도에 따른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것을 한편으로 이해한다손 치더라도 못내 섭섭하고 유감천만인 것은 기회가 평등하지 않은 일, 과정이 공정하지 않은 일, 결과가 정의롭지 않은 일, 소통이 아닌 불통의 일로 밀어 붙인 국가주의적인 폭력이 나름 심정적으로 지지한 지금 정권에서 자행되었다는 점 때문입니다. 주전 8세기, 최초의 문서 예언자였던 아모스는 가장 불공평하게 있는 자의 폭력이 하늘에 닿았던 북쪽 땅에서 이렇게 비수를 던졌습니다.
“오직 정의(체다카)를 물 같이, 공의(미쉬파트)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흐르게 할지어다”(암 5: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