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3일 주일 성서일과 묵상 슬픈 빛 오늘의 성서일과 사도행전 2:14a, 36-41, 시편 116:1-4, 12-19, 베드로전서 1:17-23, 누가복음 24:13-35 꽃물 (말씀 새기기) 누가복음 24:17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길 가면서 서로 주고받고 하는 이야기가 무엇이냐 하시니 두 사람이 슬픈 빛을 띠고 머물러 서더라 마중물 (말씀 묵상) 글로바와 익명으로 나타난 또 한 명이 엠마오로 내려가던 중에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는 오늘 성서일과를 읽을 때마다 이 두 사람의 정체가 무엇이었을까 내심 고민한다. 24절에 기록된 대로 “또 우리와 함께 한 자 중에 두어 사람이 무덤에 가 과연 여자들이 말한 바와 같음을 보았으나 예수는 보지 못하였느니라 하거늘”이라고 그들이 말했던 두 어 사람 중에 한 명이 제 1제자 군에 속했던 베드로였던 것을 감안할 때 분명히 이들은 12명의 제자들과 대단히 가까이 교제했던 2 제자군에 속한 이들이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들 역시 예수님의 부활 소문을 들었다. 하지만 이들은 부활을 믿지 않았던 게 분명하다. 그러기에 예루살렘에서 서쪽으로 32km 지점에 위치해 있었던 둘 중에 한 명의 고향으로 짐작되는 엠마오로 낙향하였을 때, 누군가가 끼여 들어 이야기하고 있는 내용을 알고 싶어 하는 모습에 ‘슬픈 빛’을 띠었다고 누가는 보고한다. 성서일과를 묵상하다가 이런 소회가 임했다. 이들이 왜 슬펐지? 성서일과 정황을 보면 둘 중 하나다. 하나, 말머리에 끼여 든 사람이 묻는 질문이 너무 같잖아서. 둘, 자신들의 신세가 가련해서다. 전자라면 질문에 대해 설명하는 글로바의 대답이 너무 정확한데 왜 본인은 그 설명을 믿지 못했는가에 대한 유감이다. 하지만 후자라면 약간의 소망이 보인다. 본인들이 따랐고 믿었던 주군의 죽음, 그리고 부활에 대한 소문 때문에 나름 아파하고 있다는 가능성 때문에. 가만히 생각해 본다. 나는 주님에 대해 신뢰하지 못하고 있는 내 자아로 인해 슬퍼하고 있는 마음이 있나. 이것이 있으면 그래도 희망이 있다. 이것마저 없으면 절망이다. 그래서 그런지 나는 자위한다. 오늘, 나의 믿음 없음 때문에 적어도 아파하고 있으니 말이다. 이 민감함은 유지해야 할 내 영적 숨소리다. 두레박 (질문) 나는 지금 주님과의 거리가 어느 정도일까? 손 우물 (한 줄 기도) 부활하셔서 나를 또 내 삶의 영역에서 영적으로 부활한 자의 삶을 인도하시는 하나님, 조금 더 민감하게 하옵소서. 해서 주님과의 거리를 최대한 좁히게 하옵소서. 나비물 (말씀의 실천) 오늘 설교를 통해 주님을 향한 교우들의 신앙적인 거리가 좁혀지게 하옵소서.
하늘바라기 (중보기도) 세인 공동체의 주일 예배와 사역이 은혜가 넘치며, 기름 부음이 넘치게 하옵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