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3일 고난 주간 월요일 성서일과 나 때문에 오늘의 성서일과 이사야 42:1-9, 시편 36:5-11, 히브리서 9:11-15, 요한복음 12:1-11 꽃물 (말씀 새기기) 요한복음 12:10-11 대제사장들이 나사로까지 죽이려고 모의하니 나사로 때문에 많은 유대인이 가서 예수를 믿음이러라 마중물 (말씀 묵상)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기 전에 베다니를 다시 경유하셨다. 친구였던 나사로를 보기 위해서였다. 요한복음 기자는 단순히 친구였던 나사로를 보기 위함이라고 기록하지 않고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이라는 문구를 삽입하심으로 나사로의 일이 초자연적인 기적이자 하나님의 아들로서 갖고 있었던 신적 능력으로 인한 일임을 분명히 한 셈이다. 중요한 것은 그렇게 살아난 나사로의 이후 행적을 가늠하게 해 주는 구절이 오늘 설서일과의 한 챕터다. 나사로 때문에 많은 유대인들이 예수를 믿었다고 기자는 증언한다. 이로 인하여 제사장 일당은 나사로까지 죽이려고 모의했다고 기술했다. 나사로는 졸지에 예수를 죽이려는 모의에 함께 살해대상으로 떠오른 것이다. 고난주간 첫날을 드리며 이런 소회가 들었다. 세인(世人)들이 나를 어떻게 평가하고 있을까? ‘나사로 때문에’ 베다니는 사달이 났다. 그냥 그로 인하여 예수 그리스도인이 된 자가 많아졌다는 보고는 그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다는 초자연적인 현상으로 인한 자연적 현상일 가능성이 많지만, 적어도 또 다른 한 가지의 이유를 제시하라고 한다면 나사로의 삶이지 않았을까 하는 격동의 감정에 내게 스며든다. 나를 다시 살려주신 그분은 이제 친구의 관계가 아닌 주군으로 설정하여 그분을 위한 삶의 내용이 보였기에 그는 예수와 함께 살해 대상으로 지목되었을 것이 분명하다. 고난주간 첫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에 동참하고 있는 나사로를 확증할 수 있는 한 가지는 분명, 이 문구다. 나사로 때문에. 두레박 (질문) 나는 세인들에게 어떤 목사로 평가되고 있으며, 어떤 사람으로 인정되고 있을까? 손 우물 (한 줄 기도) 세인교회를 섬기는 세인교회 목사가 세인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제시할 수 있도록 힘을 주옵소서. 나비물 (말씀의 실천) ‘나 때문에 행복해!’라고 표현할 수 있는 이타적인 삶을 살아내는 고난주간 첫 날을 만들어보자.
하늘바라기 (중보기도) 요양원에서 생의 마지막을 보내고 있는 지체들을 위로하여 주소서. 저들의 인생이 참 아프지만 끝까지 분투하게 하옵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