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7일(화요일) 묵상 – 사순절 열세 번째 날 희망사항인가? 물러설 수 없는 믿음의 마지노선인가? 오늘의 성서일과 시편 128편, 이사야 65:17-25, 로마서 4:6-13 꽃물 (말씀 새기기) 이사야 65:19, 25 내가 예루살렘을 즐거워하며 나의 백성을 기뻐하리니 우는 소리와 부르짖는 소리가 그 가운데에서 다시는 들리지 아니할 것이며(19) 이리와 어린 양이 함께 먹을 것이며 사자가 소처럼 짚을 먹을 것이며 뱀은 흙을 양식으로 삼을 것이니 나의 성산에서는 해함도 없겠고 상함도 없으리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니라(25) 마중물 (말씀 묵상) 젊은 날에 복음성가로 많이 부른 곡의 성서적 출처다. 이리와 어린양이 함께 먹는 날, 사자가 소처럼 짚을 먹는 날, 뱀이 흙으로 양식을 삼는 날이 올 것이라고 예언자는 소리친다. 아마도 예언자는 그날이 하나님의 날이라고 확신했기 때문이리라. 그런데 씁쓸한 것은 오늘 그날이 요원해 보여 아쉽고 아프다. 아니, 아예 보이지 않는 것 같아 더 쓰리다. 제 2 이사야의 노래가 희망을 노래한 것은 충분히 공감한다. 그래야 했으니까. 하지만 제 3 이사야는 예언을 선포할 당시 유다의 영적 상태가 포로 이전의 영적 상태로 회귀하는 것은 아닐까 할 정도로 녹록한 상황이 아니었기에 예언자의 마음속에 양가감정이 다시 일고 있었을 것이 분명하다. 그러기에 나는 19절이 먹먹하게 다가온다. “내가 예루살렘을 즐거워하며 나의 백성을 기뻐하리니 우는 소리와 부르짖는 소리가 그 가운데에서 다시는 들리지 아니할 것이며(19)” 진짜 물음 하나, 확신인가? 희망사항인가? 포로기 이후 예루살렘 백성들은 대단히 실망했을 것이 자명하다. 성전 건축 이후 에스라, 느헤미야, 학개, 스가랴가 공히 선포했던 유다 예루살렘의 완전한 회복 약속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은 것에 대한 자괴감, 분노, 실망감이 극에 달했다는 것은 실로 역사적 사실이었으니까. 사정이 이러다보니 말라기 시대에 살았던 포로 귀환 3세대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선지자와 지도자들의 약속에 대한 실망감이 폭증하여 폭발한 것은 정서적으로 동의하지 않을 수 없는 현실이었다. 신앙의 잣대로 윽박지르고, 종교적 언어로 덮는다고 될 일이 아니었다. 나는 21세기, 성경을 보고 있는 그로 인해 이스라엘의 역사적 흐름이 흘렀는지를 알고 있는 사람으로 포로 귀환이 막 시작되고 있는 즈음에 기록되었던 것으로 인정되는 제 3 이사야의 오늘 노래가 믿음의 확신인지, 아니면 희망사항이었는지가 궁금해진다. 만에 하나, 희망사항이라면 21세기를 살고 있는 나에게도 그냥 희망사항이니까 그 끈을 이어가는 것이 정신적 건강에 도움이 되는 것이니까 암묵적으로 동의할 수 있겠지만, 확신에 찬 믿음이라면 또 집요하게 나 역시 질문할 수밖에 없다. 도대체 언제죠? 19절의 그날이. 두레박 (질문) 이사야 65:19, 25절이 이루어질 날이 언제죠? 손 우물 (한 줄 기도) 약속을 단 한 번도 변개하시지 않으신 하나님이라고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고백합니다. 하나님, 그날이 언제일까요? 라고 질문하는 자들을 타박하지 않으실 줄 알지만, 어느 때에는 그날이 빨리 오기를 기대합니다. 식상한 기도가 아닌 것 아시죠? 주님.
나비물 (말씀의 실천) 교우들이 지적 수준이 목사보다 높다. 그러기에 교우들 역시 설득당해야 믿는다. 이 아이러니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어떻게 공부를 해야 하는 지 하나님께 지혜를 구해보자.
하늘바라기 (중보기도) 하나님, 위안부 할머니, 강제 징용 피해자들에게 머리를 들 수 없을 정도로 부끄럽고 또 죄송스럽습니다. 어떻게 해야 하지요? 저들의 한 맺힌 억울함을 어떻게 위로해야 하지요? 목사로서 중립을 지키기가 너무 어렵습니다. 하나님, 약한 자들이 미친 권력의 괴물들로 인해 많이 아플 텐데 저들이 울지 않게 해주십시오. 제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