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음 깨기 (WELCOME)특별 새벽기도회 출석 100%를 위한 셀 별 프로젝트 세우기 | 경배와 찬양 (WORSHOP) ● 큰 죄에 빠진 나를 (찬송가 295장) ● 하나님은 너를 만드신 분 (복음성가)
| 말씀읽기와 적용 (WORD)● 본문 : 사사기 8:18-21 ● 제목 : 한결 같은 그리스도인 1) 기드온이 하나님의 은혜를 상실한 뒤에 행한 영적 불감증의 행위들을 설교를 중심으로 설명해 보자 ● 숙곳과 브누엘에서의 행위 (사사기 8:16-17 참고) ● 세바와 살문나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행한 일 (사사기 8:20-21 참고) |
2) 기드온이 다볼산에서의 일을 두 명의 왕들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끄집어 낸 것을 통해 알 수 있는 사실은? ● 두 명의 왕을 죽이는 것은 공동체를 위한 것이 아니라 의 차원이었다. ● 하나님의 일과는 전혀 과 없는 일이었다. |
3) 이번 주일 설교를 통하여 받아야 할 영적인 교훈 찾아내기 1) 기드온이 이렇게 변질된 가장 큰 원인은? (지난 주와 이번 주 설교의 공통분모를 감안하여) 2) 이번 주일 설교의 교훈은? (설교 테마를 중심으로) 3) 고 이민아 목사의 고백, 이지선 자매의 간증, 청파 교회 표어의 공통점을 통해 주시는 은혜는? | 사역하기 (WORK)1. 교회 중보기도 1) 제 5차 특별새벽기도회의 승리와 온전한 출석을 위해서 2) 가을 사역을 위하여 기도하기 (가을 열린 모임, 셀별 심방, 3차 치유수양회, 2차 리더수양회 등등) 3) 대학입시 준비 중에 있는 수험생들을 위한 중보 사역 4) 양육 반과 리더 반의 승리를 위하여 5) 담임목사의 목양 사역을 위하여 2. 간증으로 은혜 나누기 3. 셀 그룹의 지체들을 위한 치유기도 (환우들을 위한 집중기도) 4. 헌금 기도 5. 광고 및 교제 6. 폐회: 주기도문 7. 파스타 - 준비된 대로 | 설교요약 (SUMMARY)2013년 9월 22일 주일 낮 예배 설교 요약본문 : 사사기 8:18-21 / 제목 : 한결같은 그리스도인 오늘 본문은 인간의 내적인 죄성의 분출로 인해 무자비한 영적인 실패를 경험한 한 사람을 알려줍니다. 기드온은 요단 강 동편에서 벌어진 두 번째 미디안과의 전투에서 마지막 대승을 거두었습니다. 물론 이 전투는 기드온의 탁월한 전투력에 의한 승리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승리에 대한 성취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드온은 개선장군의 위세를 갖고 숙곳과 브누엘을 차례대로 경유하여 자신을 홀대한 동족들을 힘으로 무차별적인 보복의 살해를 저질렀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잊은 기드온에게는 하나님의 뜻, 섭리, 그 동안에 자기와 함께 하셨던 영적인 교통 이런 것들은 이미 그의 사전에서 사라진 지는 오래되었습니다. 숙곳과 브누엘에서 동족을 향한 보복도 쾌재를 부르며 끝냈습니다. 오늘 본문의 장면은 붙잡아 온 세바와 살문나로 향합니다. 본문 18절에 전혀 생소한 질문을 기드온이 두 명의 왕들에게 던지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그것은 소위 말하는 다볼 사건이었습니다. 본문 18절 전반절에 “이에 그가 세바와 살문나에게 말하되 너희가 다볼에서 죽인 자들은 어떠한 사람들이더냐 하니”말씀합니다. 사사기 역사에 기록하고 있지 않는 다볼 사건은 지난 7년이라는 긴 세월동안 이스라엘 신앙공동체를 유린하던 미디안의 침략 시절 즉 기드온이 사사로 부름을 받기 이전에 바로 이들 (혹은 그들의 부하들)에게 살해를 당한 기드온의 형제들에 대한 쓰라린 추억을 기드온은 절치부심하고 있다가 그것을 끄집어 냈습니다. 다시 말해 기드온이 개인적인 보복을 위하여 칼을 뽑았다고 보면 좋은 이해가 될 것입니다. 기드온의 질문에 두 왕은 18절 하반절에 “대답하되 그들이 너와 같아서 하나 같이 왕자들의 모습과 같더라 하니라” 대답을 했습니다. 두 왕의 대답을 두 가지의 의미로 해석하면 ① 사로잡힌 왕들이 자신들의 생명을 부지하기 위해 왕으로서의 정체성을 갖지 못하고 있는 기드온을 왕자라는 호칭으로 불렀다는 해석과 ② 기드온을 향해 하는 비아냥으로 보는 해석입니다. 아무리 왕처럼 폼을 잡고 있지만 당신의 왕자정도의 신분을 벗어나지 못하는 풋내기라는 비아냥으로 보는 이해입니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이 두 가지 모두는 기드온을 왕으로 인정하지 않고 무시하는 그래서 그의 감정을 건드리는 발언이라는 점입니다. 이에 격분한 기드온은 두 명의 왕의 목을 치기로 결정합니다. 그런데 바로 여기에서 경악할 만한 일을 기드온이 저지릅니다. 20절에서 사사기 기자는 “그의 맏아들 여델에게 이르되 일어나 그들을 죽이라 하였으나 그 소년이 그의 칼을 빼지 못하였으니 이는 아직 어려서 두려워함이었더라”말합니다. 기드온은 이 두 명의 왕의 목을 베는 것을 그의 어린 큰 아들 여델에게 하라고 명합니다. 긍정적으로 본문을 해석하려는 사람들은 아들에게 큰 용사의 아들로서 담대함을 키우기 위한 배려라고 말하지만 동의할 수 없는 이유는 왕으로 인정하지 않는 두 명에게 자존심이 상한 기드온은 자신의 입지를 분명히 하기 위해 그의 큰아들에게 왕과 같은 강력한 리더십을 위임하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아직 칼을 칼집에서 빼지도 못하는 아들에게 사람을 죽이라는 명령을 내린 것입니다. 마태복음 7:9-11절 전반절에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는데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 하는데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말씀합니다. 이것이 아비의 마음입니다. 그런데도 본문에서 기드온은 아들에게 참담한 명령을 내리고 있습니다. 사람 둘의 목을 치라는 것입니다. 아들이 어려서 뜻을 이루지 못하자 드디어 기드온은 개인적인 복수의 칼을 뽑았습니다. 본문 마지막 하반절에 “기드온이 일어나 세바와 살문나를 죽이고 그들의 낙타 목에 있던 초승달 장식들을 떼어서 가지니라”말씀합니다. 이상의 본문을 해석하던 구약학자 Younger은 이 장면을 “어느새 기드온은 피에 굶주린 늑대로 변해 있었다.”표현했습니다. 백석대학교 신학대학 구약학 교수로 재직 중인 송병현 교수는 이 부분을 “기드온은 이 두 명의 왕들을 여호와를 위해 처형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개인적 복수심에 불타 죽인 것이다.”고 자신의 주석서에서 갈파했습니다. 이상의 본문 강해를 통해 함께 나눌 이번 주일의 영적인 도전과 교훈은 * 그리스도인은 변질이 아니라 한결 같아야 한다는 교훈입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기드온은 이미 사사가 가져야할 최소한의 영적인 자세마저도 완전히 저버린 세상 사람보다도 못한 철저한 세속적 가치의 사람으로 변질되었습니다. 19절에 “그가 이르되 그들은 내 형제들이며 내 어머니의 아들들이니라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너희가 만일 그들을 살렸더라면 나도 너희를 죽이지 아니하였으리라 하고”말합니다. 그는 분명히 세바와 살문나를 향하여 “여호와께서 살아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외쳤습니다. 기드온이 걸고 맹세한 대상이 여호와 하나님이었습니다. 이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욕되게 하는 것이기에 부끄럽습니다. 여러 번 강조하지만 7:24절 이하부터 하나님의 이름은 등장하지 않습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께서 기드온과는 단절하셨다는 말입니다. 19절에서 기드온이 하나님의 이름을 들먹였지만 그것은 그가 임의로 사용한 아무런 관계가 없는 하나님의 이름이지 이전에 기드온에게 오셔서 그를 설득하시고 그와 함께 말씀하시던 인격적인 하나님은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히브리어 원문을 보면 분명히‘하이 예호바’라고 기록되어 있는 것을 볼 때 하나님의 이름을 사용한 것이 분명합니다. ‘하이 예호바’는‘내가 여호와의 사심으로’라고 해석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이에 대해 가톨릭 학자들과 선교 100주년을 맞이하여 번역한 공동 번역의 번역은 여타 다른 한글 번역과는 전혀 다른 의미심장한 번역을 해 놓았습니다. 사사기 8:19절의 공동 번역에서는 “기드온이 말하였다. 그들은 한 어머니에게서 난 내 형제들이다. 너희가 그들을 죽이지 않았더라면, 나 또한 절대로 너희의 목숨을 건드리지 않을 것이다.”말합니다. 차이는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생략한 채로 영적인 차원에서 아주 잘된 번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는 기드온에게 하나님의 이름을 거론할 자격이 없음을 시사한 번역이기 때문입니다. 적어도 하나님의 이름을 드높이는 현장은 사람을 살리는 역사가 나타나야 합니다. 적어도 하나님의 이름으로 어쩔 수 없는 전쟁을 감당했다면 어린 아들에게 사람의 목을 치게 하는 잔인한 살해를 명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드온은 이 모든 일을 물리적인 힘으로 시행합니다. 사사 기드온이 이렇게까지 잔인한 늑대로 변한 이유는 하나님의 배제된 삶을 살다보니 이렇게 변질되었습니다. 그래서 신앙이 변질되면 비극적인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한 전 경험한 사람이 타락하면 그것은 도리어 하나님의 은혜를 전혀 경험하지 못한 자보다도 영적으로 더 심각한 사탄의 자식으로 전락될 수 있음을 히브리 기자는 경고합니다. 히브리서 10:26-27절“우리가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 죄를 범한즉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고 오직 무서운 마음으로 심판을 기다리는 것과 대적하는 자를 태울 맹렬한 불만 있으리라”말씀합니다. 히브리 기자는 앞선 구절의 선언처럼 영적 변질을 경고하였기에 히브리서 2:1-4절에서 “그러므로 우리는 들은 것에 더욱 유념함으로 우리가 흘러 떠내려가지 않도록 함이 마땅하니라 천사들을 통하여 하신 말씀이 견고하게 되어 모든 범죄함과 순종하지 아니함이 공정한 보응을 받았거든 우리가 이같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어찌 그 보응을 피하리요 이 구원은 처음에 주로 말씀하신 바요 들은 자들이 우리에게 확증한 바니 하나님도 표적들과 기사들과 여러 가지 능력과 및 자기의 뜻을 따라 성령이 나누어 주신 것으로써 그들과 함께 증언하셨느니라”갈파합니다. 눈에 띄는 구절은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구원의 은혜를 잊어버리면’입니다. 이어령 박사의 장녀인 고 이민아 목사의‘땅에서 하늘처럼’에서 “나는 사랑하시는 능력의 아버지 하나님이 그 동안 저의 질병을 여러 번 고쳐주셨기 때문에 또 고쳐주시리라 믿습니다. 그러나 어떤 이유에서든지 이 땅에서 그 치유를 온전하게 다 받아 누리지 못하고 내 몸이 죽는다하더라도 저는 예수님을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살아서 그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않는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습니다.” 고백합니다. 공중파 방송의 모 프로그램에 나온 이지선씨에게 진행자가 과거로 돌아가고 싶지 않느냐는 질문에 “이 시간을 지내오면서 정말로 중요한 것은 영원한 것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진리를 깨달았습니다. 때로는 전부를 잃었다고 좌절한 적도 있었지만 돌아보니 정말로 많은 것을 얻었습니다. 사고 이전의 삶보다 더 행복한 삶을 누리고 있습니다. 이 마음을 갖고 예전의 얼굴로 사는 것을 굳이 마다할 이유는 없지만 그 얼굴을 갖겠다고 보이지 않는 가치를 버리지는 않겠습니다.” 말했습니다. 청파교회 김기석 목사께서 지난 번에 우리 교회에서 진행한 세미나에서 던진 “우리 교회 2013년 표어는 언제 어디서나 그리스도인입니다.”말 한 마디가 깊게 새겨져 있습니다. 어떤 환경에서 절대로 변질되지 않는 한결 같은 그리스도인로 살아갈 것에 대한 기막힌 도전이요 통찰입니다. 마태복음 5:12-13절에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말씀합니다. 주님은 우리들에게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라고 말씀하셨고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미 빛이고 소금입니다. 변질되지 말아야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은 하루에도 12번씩 하나님의 은혜를 망각한 상태에서 기드온과 같이 영적인 상태가 빛과 소금에서 변질되는 삶을 살 때가 많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잊으면 변질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들은 변질이 아니라 한결같은 영적인 삶을 살아야 합니다. 관건은 하나님의 은혜를 지금도 받으며 잊지 않고 사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변질이 아닌 한결 같은 그리스도인이 되는 세인지체가 되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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