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음 깨기 (WELCOME)추석 증후군 나누면서 서로 격려하고 이길 수 있도록 도와주기. | 경배와 찬양 (WORSHOP) ● 은혜로다 주와 함께 (복음성가) ● 나를 지으신 이가 하나님 (복음성가) | 말씀읽기와 적용 (WORD)● 본문 : 사사기 8:4-17 ● 제목 : 이것이 사람입니다. 1) 기드온이 마지막 미디안 잔병들을 추격하면서 경유했던 지역을 말해보고 그곳에서 있었던 일을 나누라. 2) 기드온이 잔병들을 격퇴하고 두 명의 왕들을 생포하고 개선하면서 경유했던 곳과 행한 일을 나누자. 3) 기드온의 최대의 비극이 무엇이었고 우리들이 기드온을 통해 얻어야 할 반면교사는 무엇인가? 1) 기드온의 비극 2) 반면교사를 삼아야 할 내용 3) 설교의 교훈 뒤에 내가 해야 할 실천적 삶을 함께 고백해 보자. | 사역하기 (WORK)1. 교회 중보기도 1) 하나님의 교회에 긍정의 일군을 보내주옵소서. 2) 가을 사역을 위하여 기도하기 (두 날개 양육반, 5차 특새, 가을 열린 모임, 5기 크로스웨이) 3) 대학입시 준비 중에 있는 수험생들의 승리를 위하여 4) 제 3차 전인적 치유 수양회, 제 2차 리더 수양회, 리더반 개강을 위하여 5) 담임목사의 목양 사역을 위하여 6) 추석 연휴 기간 동안 가정 복음화를 위하여 7) 9월 22일 주일을 잘 지키기 위하여 2. 간증으로 은혜 나누기 3. 셀 그룹의 지체들을 위한 치유기도 (환우들을 위한 집중기도) 4. 헌금 기도 5. 광고 및 교제 6. 폐회: 주기도문 7. 파스타 - 준비된 대로 | 설교요약 (SUMMARY)2013년 9월 15일 주일 낮 예배 설교 요약 본문 : 사사기 8:4-17 / 제목 : 이것이 사람입니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의 식으로 은혜를 받은 주인공이 이후 하나님의 식이 불편해 짐으로 인해 하나님을 무시하는 배은망덕한 불신앙의 사람으로 일탈하는 경우를 아주 잘 묘사해 주고 있습니다. 에브라임 사람들과의 갈등을 인간적인 계산과 술수로 잘 극복한 기드온은 이제는 요단 강을 건너 가나안 북쪽으로 도망가던 나머지 패잔병 15,000명을 끝까지 추격하기에 이릅니다. 이미 첫 번째 전투에서 하나님은 120,000명의 미디안과 아말렉과 북방의 연합군들을 직접 싸우게 하심으로 궤멸시키셨습니다. 기드온은 적들과의 싸움에서 손쉽게 이긴 것이 본인의 전략과 용맹으로 인함이라고 착각을 하고 이제 남은 15,000명의 잔병들을 궤멸시키기 위해 요단 강 동편에서의 두 번째 전쟁을 치르게 됩니다. 용기백배하고 사기가 충천한 기드온과 그의 300용사라 하더라도 전쟁은 힘이 든 것이 사실이고 이미 그들은 이겼지만 전쟁으로 인해 지쳐있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아직 남은 미디안의 잔병 수는 1:5에 해당되는 15,000명으로 쉽지 않는 전쟁이었습니다. 그리고 요단 강 서편 전쟁에서 미디안의 군사들을 이끌던 지도자들은 일개 장군들이었지만 오늘 미디안으로 퇴각하는 마지막 15,000명 군사의 수장은 그들이 섬기고 있는 두 명의 왕이었던 세바와 살문나라는 왕들이었습니다. 퇴각은 하지만 이들 군사력은 아마도 왕을 지키는 최후 결사대와 같은 최정예 병사로 결코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었습니다. 그만큼 더 긴장이 되고 위험한 전쟁이었을 것이 분명합니다. 기드온은 15,000여명의 잔병들을 추격하는 어간, 숙곳이라는 땅에 도착을 했습니다. 숙곳은 가나안 분배 시에 갓 지파에게 할당된 땅으로 이스라엘 동족이 기거하고 있는 땅이었습니다. 그곳에 도착한 기드온은 지친 병사들을 위해 숙곳의 사람들에게 먹을 수 있는 양식을 요청하기에 이릅니다. 그러자 숙곳의 사람들이 기드온의 청을 단호하게 거절합니다. 본문 6절 “숙곳의 방백들이 이르되 세바와 살문나의 손이 지금 네 손 안에 있다는거냐 어찌 우리가 네 군대에게 떡을 주겠느냐 하는지라” 말씀합니다. 현대인의 성경에서는 “그러나 숙곳 지도자들은 "당신이 아직 세바와 살문나를 잡지도 못했는데 어째서 우리가 당신의 부하들에게 음식을 주어야 합니까?" 하고 대답하였다.”입니다. 숙곳의 지도자들이 기드온의 청을 거절한 이유에 대하여 공통적인 의견은 보복이 두려웠기 때문이라는 해석입니다. 7년 동안이나 괴롭혔던 미디안의 왕들이 아직도 시퍼렇게 살아있는데 어떻게 우리가 그 위험한 일을 하겠느냐는 반문이 기드온의 청을 거절한 이유로 설명합니다. 아마도 숙곳 사람들은 기드온의 300 용사들이 요단 서편에서 대승한 소식을 자세히 듣지 못하고 보복이 두려운 그들은 그들의 생존을 위해서 기드온의 청을 거절한 것이 분명합니다. 기드온은 자신의 청을 거절하는 숙곳 사람들에게 에브라임을 설득했던 설득력으로 갓 지파의 숙곳 사람들을 설득하는 것이 지혜로운 일이었습니다. 같은 동족이니 불편하더라도 그들 역시 설득시키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런데 기드온의 반응은 본문 7절에서 “기드온이 이르되 그러면 여호와께서 세바와 살문나를 내 손에 넘겨주신 후에 내가 들가시와 찔레로 너희 살을 찢으리라 하고”말합니다. 분노한 기드온이 세바와 살문나와의 전쟁을 승리로 이끈 뒤에 반드시 너희에게로 돌아와 이렇게 박대한 너희들을 용서하지 않겠다고 으름장을 놓았습니다. 그리고 숙곳에서 거절당한 기드온은 이번에는 가는 길목에 있는 브누엘로 나아갔습니다. 기드온은 브누엘에서도 숙곳에서와 같이 똑같은 청을 브누엘 사람들에게 요청했으나 거절당합니다. 브누엘에서 거절당한 기드온의 반응은 본문 9절 “기드온이 또 브누엘 사람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가 평안히 돌아올 때에 이 망대를 헐리라 하니라”말합니다. 마찬가지로 동족인 그들을 설득하지 않고 승리하고 돌아와 브누엘의 망대를 반드시 헐어버릴 것이라고 경고하였습니다. 수모를 당한 기드온은 오기인지 아니면 독기인지는 모르지만 그의 뜻대로 나머지 15,000명의 미디안 군사들을 궤멸시키고 그들의 왕인 세바와 살문나를 생포하기 까지 합니다. 전쟁은 완전히 기드온의 승리로 끝이 났습니다. 이 전쟁은 하나님의 완벽한 개입하심으로 인한 하나님의 승리였습니다. 그런데 전쟁의 승리를 경험한 기드온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승리는 온 데 간 데 없이 사라졌습니다. 그가 전쟁을 마치고 돌아오면서 행한 일은 본문 13-17절“요아스의 아들 기드온이 헤레스 비탈 전장에서 돌아오다가 숙곳 사람 중 한 소년을 잡아 그를 심문하매 그가 숙곳의 방백들과 장로들 칠십칠 명을 그에게 적어 준지라 기드온이 숙곳 사람들에게 이르러 말하되 너희가 전에 나를 희롱하여 이르기를 세바와 살문나의 손이 지금 네 손 안에 있다는거냐 어찌 우리가 네 피곤한 사람들에게 떡을 주겠느냐 한 그 세바와 살문나를 보라 하고 그 성읍의 장로들을 붙잡아 들가시와 찔레로 숙곳 사람들을 징벌하고 브누엘 망대를 헐며 그 성읍 사람들을 죽이니라”입니다. 전쟁에서 승리하고 개선장군으로 돌아오는 기드온은 숙곳으로 가서 사로잡은 어린 아이에게 숙곳을 지도하는 장로와 방백 77명의 명단을 확보하였습니다. 이윽고 그들을 잔인하게 들 가시와 찔레로 응징합니다. 그 뿐 아니라 본문 9절에서 선언한 대로 이번에는 브누엘로 가서 망대를 헐고 성읍 사람들을 살해하기에 이릅니다. 하나님은 기드온을 미디안의 탄압으로 인해 고통 당하는 동족을 구원하라고 부르셨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의 기드온은 동족을 죽이는 사람으로 변질되었습니다. 이상의 본문을 통해 우리의 심비에 새겨야 할 중요한 한 가지의 도전은 * 하나님의 은혜를 잊으면 얼마든지 이런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교훈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잊은 기드온은 하나님에 대하여 전혀 생각하지 않습니다. 조금 더 리얼하게 이야기를 하면 하나님이 안중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않고 또 그 분의 은혜를 기억하며 사는 백성들이 하나님의 사람들입니다. 시편 77편은 아삽의 시라는 표제를 달고 있습니다. 학자들마다 시인이 노래한 이유에 대하여 명확하게 설명하지는 못하지만 요시야 시대에 임했던 위기의 상황을 보면서 시인이 하나님께 간구한 노래라고 보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입니다. 분명한 것은 시인에게 위기가 임했고 흔들렸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요동했습니다. 그는 이런 심정적인 고통을 시편 77:2-3절“나의 환난 날에 내가 주를 찾았으며 밤에는 내 손을 들고 거두지 아니하였나니 내 영혼이 위로 받기를 거절하였도다 내가 하나님을 기억하고 불안하여 근심하니 내 심령이 상하도다” 표현했습니다. 이런 위기에서 시인은 극도의 영적인 침체를 경험한 것을 시편 77:7-9절 “주께서 영원히 버리실까, 다시는 은혜를 베풀지 아니하실까, 그의 인자하심은 영원히 끝났는가, 그의 약속하심도 영구히 폐하였는가, 하나님이 그가 베푸실 은혜를 잊으셨는가, 노하심으로 그가 베푸실 긍휼을 그치셨는가 하였나이다” 고백합니다. 누구에게나 이런 영적인 침체를 경험하며 하나님의 은혜가 끝났는가를 의심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은 반드시 이런 위기를 나에게 이루신 은혜의 흔적들을 기억함으로 이깁니다. 시편 77편의 저자도 그렇게 이겼습니다. 은혜로 마감되는 시인의 노래 10-11절 “또 내가 말하기를 이는 나의 잘못이라 지존자의 오른손의 해 곧 여호와의 일들을 기억하며 주께서 옛적에 행하신 기이한 일을 기억하리이다”말씀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은혜를 기억하여 사는 사람들입니다. 지존자의 오른손으로 행하신 여호와 일들을 기억하며 사는 자들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오늘 본문의 기드온처럼 하나님의 은혜를 무시하고 자기의 식을 주장하며 사는 자들은 넘어집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성도들을 이롭게 하며 항상 낮은 마음으로 겸손한 자에게만 임하는 선물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다툼과 경쟁과 욕심이 있는 곳에는 임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말 그대로 충만하게 임합니다. 사정이 이렇기에 우리는 항상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기억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서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살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15:9-10절에서 “나는 사도 중에 가장 작은 자라 나는 하나님의 교회를 박해하였으므로 사도라 칭함 받기를 감당하지 못할 자니라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고백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잊은 자는 누구든지 오늘 본문의 기드온이 될 수 있습니다. 은혜 없이 살 수 있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잊은 기드온처럼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않고 기억하며 하나님의 은혜로 사는 세인의 지체들이 되십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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