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음 깨기 (WELCOME)이단 사이비 종파의 방문을 받고 경험했던 사절 노하우 나누기. | 경배와 찬양 (WORSHOP) ● 나의 영혼이 잠잠히 (복음성가) ● 누가 주를 따라 (찬송가 459장) | 말씀읽기와 적용 (WORD)● 본문 : 사사기 7:24-8:3 ● 제목 : 사절합니다. 1) 에브라임 지파 사람들이 기드온에게 항의한 표면적인 이유와 내면적인 이유를 말해보자. 2) 에브라임 지파의 압박에 기드온이 대처했던 방법은 무엇이었는가? 3) 에브라임 지파 사람들과 기드온의 타협을 통해 얻는 도전과 교훈은 무엇인가? 1) 교훈 말해보기 : 테마를 중심으로 2) 내가 하나님을 탈락시키는 나의 무감각한 아픔을 들추어 내보자. 3) 이 아픔을 이기기 위한 영적인 싸움을 결단해 보자. | 사역하기 (WORK)1. 교회 중보기도 1) 하나님의 교회에 긍정의 일군을 보내주옵소서. 2) 가을 사역을 위하여 기도하기 (두 날개 양육 개학, 5차 특새, 가을 열린 모임, 5기 크로스웨이) 3) 대학입시 준비 중에 있는 수험생들의 승리를 위하여 4) 제 3차 전인적 치유 수양회, 제 2차 리더 수양회, 리더반 개강을 위하여 5) 담임목사의 목양 사역을 위하여 2. 간증으로 은혜 나누기 3. 셀 그룹의 지체들을 위한 치유기도 (환우들을 위한 집중기도) 4. 헌금 기도 5. 광고 및 교제 6. 폐회: 주기도문 7. 파스타 - 준비된 대로 | 설교요약 (SUMMARY)2013년 9월 8일 주일 낮 예배 설교 (사사기 45번째 강해) 본문 : 사사기 7:24-8:3 / 제목 : 사절합니다. 오늘 본문은 신앙의 선한 과정을 무시하고 결과의 승리만을 차지하려는 기형적 신앙인들의 범례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에브라임 지파는 미디안을 축출하는 전쟁에 뒤늦게 가세하여 벧 바라와 요단강으로 이어지는 요단 수로를 점령하여 퇴각하던 미디안과 아말렉의 패잔병들을 소탕하는 전과를 거두게 되었습니다. 퇴각하는 적들의 수장이었던 오렙과 스엡을 생포하고 그들의 목을 쳐서 보무도 당당하게 기드온에게 가져감으로서 그들의 전과를 과시하였습니다. 그런 뒤 8장 1절에 “에브라임 사람들이 기드온에게 이르되 네가 미디안과 싸우러 갈 때에 우리를 부르지 아니하였으니 우리를 이같이 대접함은 어찌 됨이냐 하고 그와 크게 다투는지라”말씀합니다. 오렙과 스엡을 사로잡아 그들의 목을 쳐 기드온에게 가져온 에브라임 지파 사람들은 기고만장하여 기드온을 압박합니다. 압박의 동기로 우리 지파를 왜 전쟁에서 누락시켰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를 누락시킨 것은 우리들을 무시한 일이라고 말합니다. ‘다투었다.’라고 번역된 히브리어 동사‘리브’는 문자적으로‘상자 안에 있는 물건을 뒤흔들다.’라는 의미로 정돈되어 있는 상태에 혼란을 준다는 말입니다. 물리력을 동원하여 폭력을 휘두르는 싸움은 아니지만 기존의 질서를 훼방하기 위해 흔들어 놓는 나쁜 방식의 설전을 말하는 단어입니다. 그래서 이 부분을 공동번역 성경에는 “기드온에게 엄중한 항의를 했다.”, 표준 새 번역에는 “그들이 기드온에게 거세게 항의하니”번역했습니다. 에브라임 지파가 기드온에게 보인 항의성 다툼은 상당히 강력한 불만을 토로했다는 공통분모가 보입니다. 기드온이 전쟁의 와중에 에브라임을 부르지 않은 것은 분명한 듯 보입니다. 사사기 6:35절에 “기드온이 또 사자들을 온 므낫세에 두루 보내매 그들도 모여서 그를 따르고 또 사자들을 아셀과 스불론과 납달리에 보내매 그 무리도 올라와 그를 영접하더라”말씀합니다. 여기서 주목할 문구는‘온 므낫세’입니다. 창세기 48:1-7절에 야곱이 나이가 들어 병들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요셉은 두 아들 즉 므낫세와 에브라임을 데리고 아버지 야곱에게 축복을 받기 위해 야곱에게 나아옵니다. 두 아들들을 데리고 온 요셉에게 네가 애굽에서 낳은 아들 둘의 호적을 나에게 올리겠다는 것입니다.(창세기 48:5) 야곱이 이런 무리수를 둔 것은 므낫세와 에브라임에게 장자의 복을 주기 위해서였습니다. 당시 장자의 반열에 선다는 것은 땅, 유산, 기업 등에서 다른 자식들에 비해 2배의 상속을 받게 되어 있었습니다. 특혜 중의 특혜를 받은 요셉의 두 아들 므낫세와 에브라임은 받은 특혜로 인해 더 많이 헌신하고 희생을 해야 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한 가지 더 좁혀서 에브라임과 므낫세의 복을 추적하면 앞선 손자들을 장자의 반열에 서게 할 것이라는 야곱의 약속 뒤에 이어지는 창세기 48:11-20절을 보면 야곱이 손자들에게 축복하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결론으로 말하면 야곱은 차자였던 에브라임을 오른쪽 손으로 안수를 하였고 장자였던 므낫세는 왼손으로 안수하며 축복을 하였습니다. 이 광경을 보던 요셉이 아버지의 강복이 맘에 들지를 않아 다시 축복할 것을 종용하는 장면은 애처롭기까지 합니다.(창세기 48:17-20) 학자들 사이에는 장자보다 차자를 우대한 일에 대하여 아주 많은 토론이 있어왔고 또 앞으로도 있을 것이지만 하나님의 일하심을 해석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하나님의 주권적 일하심이라고 인정하는 것이 가장 설득력이 있는 접근 방법입니다. 이렇듯 에브라임 지파는 역사적으로 하나님의 보너스를 받은 지파였습니다. 형이 받을 복의 기업보다 배를 더한 복을 받은 지파였습니다. 여호수아 16장을 참고한다면 그들은 가나안 정 중앙에서 동쪽으로는 요단강이 서쪽으로는 지중해가 연결되는 가장 비옥한 땅을 기업으로 차지하는 복, 유다 지파 다음으로 가장 큰 땅을 차지하는 복, 말 그대로 하나님이 배려하신 보너스의 복을 받은 지파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을 적용하여 볼 때 에브라임은 정말로 치사한 지파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들은 오늘 본문에서 기드온에게 미디안과의 전쟁에 늦게 자신들을 불렀기에 우리를 무시했다고 거칠게 항의하지만 그것은 오기요 투정이요 생색내기요 트집 잡기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 근거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7년이라는 세월동안 미디안의 괴롭힘을 당할 때 그들을 물리치기 위해 분연히 일어섰다는 보고가 없습니다. 외세의 침략에 맞서서 그들을 쫒아내기 위한 그 어떤 물리적인 항거를 했다는 증거는 성경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런 그들이 전세가 이미 기울어 이스라엘 신앙공동체의 승리가 굳어진 상태에서 뒤늦게 전쟁에 참여하여 우리들을 무시하여 전쟁에 부르지 않았다고 거칠게 항의하는 것은 변명이요 몽니 부리기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이렇게 생색을 내는 이유는 그들이 가지고 있는 기득권에 대한 상실을 염려했기 때문입니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기드온이 행한 전쟁에서 전면에 나선 것은‘온 므낫세’였습니다. 다시 말해 이 전쟁은 기드온과 그의 지파인 므낫세가 이룬 승리로 변질되고 있는 분위기 때문이었습니다. 에브라임은 장자의 기업을 받은 교만함이 팽배하여 항상 이스라엘 신앙공동체의 머리가 되려고 했지 꼬리가 되는 것을 원치 않았습니다. 므낫세에게 그동안 누려왔던 기득권을 넘겨주어야 할지 모르는 위기감이 그들에게 엄습했습니다. 야곱의 축복을 받은 우리 지파를 뛰어넘는 므낫세 지파의 리더십 획득을 바라만 볼 수 없었던 에브라임 지파 사람들은 뒤늦게 전쟁에 참여하여 우리들이 얻어야 할 분깃을 놓치게 되었다고 기드온에게 항의 섞인 몽니를 부리고 있음을 이야기해 주고 있습니다. 이런 분위기를 감지한 기드온이 에브라임 지파 사람들의 불만을 잠재웁니다. 본문 2-3절에 “기드온이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이제 행한 일이 너희가 한 것에 비교되겠느냐 에브라임의 끝물 포도가 아비에셀의 맏물 포도보다 낫지 아니하냐 하나님이 미디안의 방백 오렙과 스엡을 너희 손에 넘겨주셨으니 내가 한 일이 어찌 능히 너희가 한 것에 비교되겠느냐 하니라 기드온이 이 말을 하매 그 때에 그들의 노여움이 풀리니라”말씀합니다. 자칫 잘못하면 내란의 위기나 내홍에 휩싸일 수 있는 위기를 전쟁의 공로를 에브라임에게 돌리므로 해결합니다. 므낫세보다 에브라임이 훨씬 위대하다는 겉치레입니다. 결정적으로 기드온 본인은 이 전쟁에서 아무 것도 행한 것이 없다고 자신의 역할을 폄하하였습니다. 그러자 사사기 기자는 ‘그들의 노여움이 풀리니라’고 마무리를 했습니다. 기드온은 미디안과의 일전에서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대승을 했습니다. 그것도 완벽한 승리였습니다. 그리고 나서 서로 나눈 승리의 두 장본인인 기드온과 에브라임의 지파와의 대화인데 영적인 감동이 없는 이유는 1) 그들의 공방에 하나님이 탈락되었기 때문입니다. 즉 그들에게 임한 하나님의 부재 때문입니다. 미디안을 내쫒고 난 뒤에 에브라임은 자신들이 갖고 있었던 기득권을 상실할 것에 대한 반감으로 똘똘 뭉쳐 기드온에게 압박을 가했습니다. 기드온은 하나님이 이끄신 승리를 혹시 모를 내홍에 휩싸이기를 두려워한 나머지 그들에게 좋게 보이기 위하여 하나님에게 영광을 돌린 것이 아니라 에브라임에게 영광을 돌렸습니다. 결론이 찜찜한 이유는 하나님이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탈락되었기 때문입니다. 어제 새벽에 묵상한 마태복음 9:14-17절에서 주지해야 할 도전은 주님에게 금식을 하지 않는 주님의 제자들을 공격하고 있는 장본인들이 바리새인들이 아니라 세례요한의 제자들이라는 점에서 충격입니다. 세례 요한이라는 당시의 최고의 영성을 방점을 찍은 요한을 따르던 제자들이 이 정도의 수준 밖에는 안 되었던 것은 기득권 상실에 대한 불안감 때문입니다. 세례 요한의 가르침으로 점철된 본인들의 영적인 리더십이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에게 넘어가는 것을 절대로 눈뜨고 볼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에브라임은 본인들의 기득권이 므낫세에게 넘어가는 것을 용인하지 않았습니다. 지금의 상황이 너무나 좋았기 때문에 기득권을 놓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그들의 상황이 너무나 좋은 상태를 암시하는 여호수아 16:10절 “그들이 게셀에 거주하는 가나안 족속을 쫓아내지 아니하였으므로 가나안 족속이 오늘까지 에브라임 가운데에 거주하며 노역하는 종이 되니라”을 소개합니다. 여호수아 16장은 가나안에 들어가 이스라엘의 12지파에게 분배된 기업(땅 분배)을 소개하는 기사 중 에브라임 지파에게 임한 기업 분배 기사입니다. 에브라임은 팔레스타인의 지형 중에 가장 비옥한 땅을 하나님의 선물로 받았습니다. 비옥한 땅을 선물로 받았는데 그 땅을 경작하야 하는 것이 그들에게 임한 현실입니다. 농사를 어떻게 지어야 하는 지에 대하여 문외한이었던 에브라임 지파 사람들은 농사법에 대하여 기술자들인 좋은 노예요 자원을 쫒아낼 일이 만무입니다. 그들이 이런 기득권을 결코 빼앗기지 않으려고 했음은 재론의 여지가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작금, 지역 패권이 므낫세로 넘어갈 수 있는 위기가 임한 것입니다. 지역 패권이 므낫세로 넘어가는 순간 본인들이 누리고 있는 기득권이 보장되리라는 법이 없었습니다. 결국 그들은 본인들이 전쟁에서 이긴 마지막 승리를 담보로 우리들이 누리고 있는 기득권을 보장받고 싶었고 그 보장은 기드온의 타협으로 일단락되게 되었습니다. 여기에서 그리스도인이라면 또 하나 절대로 사절해야 할 도전을 받습니다. 2) 하나님이 내 삶에서 탈락되었어도 전혀 개의치 않는 무감각의 내적 테러입니다. 이것은 무서운 영적 암세포입니다. 무감각의 영적 테러를 당하는 자들에게 있어서 절대로 자라지 않는다는 공통분모가 있습니다. 조금 더 리얼하게 이야기를 하면 자라나는 것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런 자들에게 경성을 촉구합니다. 바울은 양아들 디모데에게 디모데전서 4:15절에서 “이 모든 일에 전심전력하여 너의 성숙함을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게 하라” 권고를 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라나야 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에베소 교회를 향해서 에베소서 4:15-16절에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받음으로 연결되고 결합되어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 갈파했습니다. 지금 우리들이 사수해야 하는 것은 하나님 탈락에 대한 무감각에 대하여 절대로 사절해야 하는 믿음과 또 하나 하나님이 탈락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요동하지 않도록 하는 사탄의 내적 테러에 대하여 사절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없음에 만족하게 하고 무감각하게 하는 일체의 시도와 싸우고, 조금도 빈틈을 보이지 않는 세인지체들이 됩시다. |
|